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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문명을 연 첫번째 연오랑, 신라신 스사노오[국학학술기획]일본으로 건너간 연오랑·세오녀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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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8.23  08:57:03
정경희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교수  |  k-spirit@naver.com
   
▲ 정경희 국제뇌교육대학원대학교 국학과 교수

일본의 양대 고대사서인 『고사기(古事記)』(712년)와 『일본서기(日本書紀)』(720년)의 첫머리에는 고대 일본인들의 세계관 및 일본사의 시작이 신화의 형태로 나타나 있다. 이를 ‘기(記)·기(紀) 신화’라고 한다. 
기기신화는 우주가 창조되는 과정에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이를 잘 분석해보면  한국 고대사상의 원류인 삼원오행론적 세계관, 또 삼원오행론의 하위 이론인 음양오행론적 세계관에 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사기』를 쓴 인물인 오노야스마로(太安萬侶,  660~723)가 도래인이었고 『일본서기』 역시 백제가 망한 후 일본열도로 쏟아져들어온 백제계 도래인들이 쓴 책이기에 한국의 삼원오행론적 세계관이 공유되고 있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삼원오행의 작용으로 드러난 우주 창조의 과정에서 마지막으로 한쌍의 부부신인 이자나기(伊耶那岐)・이자나미(伊耶那美)가 등장하여 일본 국토를 창조하게 된다.  그 다음 단계로 남신인 이자나기에 의해 실제 일본 국토를 다스리는 3명의 주요 신인 삼귀자(三貴子)신 아마테라스(天照大神), 츠쿠요미(月讀命), 스사노오(素戔鳴尊, 須佐之男命)가 탄생하여 일본 국토의 지배권을 둘러싸고 다투는 내용이 나온다.

 

 바다신 스사노오가 일본 국토 최초의 개척자로 나타나며 아마테라스가 스사노오의 후손을 물리치고 자신의 후손들로 하여금 일본 국토를 다스리게 한다는 것이 그 주된 흐름이다.  많은 학자들은 이 삼귀자 이야기가 한반도 도래인 사이의 권력 투쟁을 다룬 정치신화라는 점에 동의하고 있는데, 아마테라스나 츠쿠요미의 한반도계 출자는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 않은 반면 스사노오는 신라계라는 점이 명시되어 있다. 관련 내용을 간단하게 축약해보면 아래와 같다.

 

 이자나기는 불을 신을 낳다가 타죽은 아내를 그리워하여 저승 요모쓰쿠니(黃泉國)으로 이자나미를 찾으러 갔다가 실패하고 이승으로 돌아왔다. 이어 이자나기는 목욕을 하던 중 왼쪽 눈에서  ‘아마테라스(天照大神)’가, 오른쪽 눈에서 ‘츠쿠요미(月讀命)’가, 마지막으로 코에서 ‘스사노오(須佐之男命, 素戔鳴尊)’가 태어났다.  이자나기가 세 자녀에게 각각 낮과 밤과 바다를 다스리게 하자, 낮과 밤을 맡은 두 자녀는 명에 따랐으나 스사노오만은 자기 나라로 가지 않고 울기만 했다. 이자나기가 그 연유를 물으니 스사노오는 "돌아가신 어머니나라 네노쿠니(根國)에 가고 싶어서 운다"고 답하였다. 분노한 이자나기는 스사노오를 다카마가하라(高天原)에서 추방하고 하늘의 지배권을 아마테라스에게 넘겨주었다. 부친 이자나기에게 추방당한 스사노오는 어머니가 있는 네노쿠니로 떠나기 전날 누이인 아마테라스를 찾아갔다. 동생의 악행을 무서워한 아마테라스는 만나주지 않았고 스사노오는 네노쿠니로 떠나지 않고 여러 가지 악행을 저질렀다. 스사노오의 거듭된 악행에 분노한 아마테라스는 아메노이하야(天岩戶)라는 동굴 속으로 숨어 버렸다. 태양의 신이 사라져 버리자 다카마가하라에는 낮이 사라지고 밤만 계속되었다. 난감해진 신들이 궁리 끝에 떠들썩한 연회를 열어 무슨 일인가 궁금해진 아마테라스가 밖을 내다보는 순간 그를 동굴 밖으로 끌어내었다.  이렇게 해서 세상이 다시 밝아졌다.
다카마가하라에서 지상으로 추방된 스사노오는 이즈모(出雲) 지역(현재의 시마네島根縣) 히(肥)강 상류 현재 도리카미(鳥上) 근처로 내려왔다. 여기에서 머리와 꼬리가 각각 여덟 개 달린 뱀 야마타노오로치(八岐大蛇)에게 제물로 받쳐질 딸 구시나다히메(櫛名田比賣)를 사이에 두고  울고 있는 두 노부부를 만났다. 스사노오는 뱀을 처단하고 뱀의 꼬리에서 진기한 칼 한 자루를 얻었다. 스사노오는 이 칼을 아마테라스에게 헌상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천황가의 3종신기중 하나인 구사나기노쓰루기(草薙劍)이다.  뱀을 물리친 스사노오는 이즈모 스가(須賀) 지역에 궁을 세우고 쿠시나다히메와 결혼하여 여러 신들을 낳았는데, 그 6세손이 바로 이즈모를 본거지로 하여 아시하라노나카스쿠니(葦原中國) 전체의 통치자가 된 오쿠니누시(大國主神)이다.
한편 스사노오는 다카마노하라에서 추방되었을 때 아들 이타케루(五十猛尊)을 데리고 신라의 소시모리(曾尸茂梨)라는 곳에 강림하여 살았다. 그러다가 ‘이 나라에서는 살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흙으로 배를 만들어 동쪽으로 가 이즈모 지방 히강 상류 도리카미봉에 이르렀다. 이때 사람을 죽이는 큰 뱀을 죽였다. 이타케루는 많은 나무 종자를 가지고 천강하여 이를 한국땅에는 심지 않고 큐슈를 비롯한 일본 전역에 뿌려 푸른 산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그는 ‘공적 많은 신’으로 숭배되었다. 또한 스사노오는 ‘한국에는 금은이 풍부하다. 만일 내 아들이 다스리는 땅에 배가 없다면 좋지 않다’고 하며 몸에 난 털을 뽑아서 삼나무, 회나무, 피나무, 녹나무 등 각종 나무를 만들어 이들을 베어 배를 만들고 궁전을 짓는 등 용도를 정하였다. 과실나무 종자도 많이 심었다. 또한 아들 이타케루와 딸 오야쓰히메(大屋津姬命) 및 쓰마쓰히메(梢津姬命) 3신을 기이(紀伊) 지방에 보내 수목 종자를 널리 뿌리게 했다. 그런 후 스사노오는 구마나리(熊成) 봉우리에 거하다가 네노쿠니로 들어갔다.
오쿠니누시가 이즈모에 나라를 세운 것을 천상에서 바라보던 아마테라스는 돌연 "이 땅은 마땅히 나의 아들이 통치할 나라이다"고 하면서 손자 니니기(瓊瓊杵尊)에게 3종신기인 동경·동검·구옥(句玉)을 주어 지상의 지배를 명하였다. 이에 니니기가 히무카日向(현 큐슈 미야자키宮崎현 일대)로 내려왔다. 이를 ‘천손강림(天孫降臨)’이라 한다. 지상에 내려 온 니니기는 오쿠니누시로부터 국토를 이양받아(國讓) 지상의 지배자가 된다.  그 후 니니기의 자손들이 일본을 지배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의 천황가이며, 니니기의 4세손이 바로 최초의 천황인 진무천황(神武天皇)이다.(축역)

 

위의 내용에서 가장 분명한 점은 일본 건국에 참여한 많은 신들이 아마테라스를 중심으로 하는 다카마노하라계(‘天津神’ 계통)와 스사노오를 중심으로 하는 이즈모계(‘國津神’ 계통)로 분류된다는 것이다.  천진신은 천신 계통, 국진신은 그보다 등급이 낮은 지신 계통으로 기·기 편찬자들의 후대적 시각에 다름아니다.  곧 ‘이즈모-스사노오-국진신계’와 ‘다카마노하라(큐슈)-아마테라스-천진신계’로 양대 구분되는 것이다.  처음에 일본 국토를 개척한 계통은 이즈모-스사노오계인데, 이들을 밀어내고 국토를 차지한 다카마노하라(큐슈)-아마테라스계가 스스로를 천진신계, 이즈모-스사노오계를 국진신계로 등급지웠음을 알게 된다.  양 계통 모두 같은 한반도 도래세력으로 한반도의 선도문화(선도 제천문화)를 기반으로 하였다면 실제로는 모두 천신계인데, 권력 투쟁에서 승리한 편은 천신계, 패배한 편은 지신계로 편제된 것이다.  

 

이러할 때 이즈모계의 대표신인 스사노오가 거칠고 나쁜 신의 이미지로 표현된 이유가 분명해진다. 곧 기기신화에서 스사노오는 이즈모 지역을 개척하여 문명을 일군 선신인 동시에 거칠고 난폭한 악신의 양면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즈모 지역의 향토지인 『출운국풍토기(出雲國風土記)』에서 스사노오는 이즈모 전역에 위세를 떨친 소박하고 평화로운 향토신의 이미지로 등장할 뿐이다. 그 후손인 오쿠니누시와 그 권속신들 또한 국토를 개간하는 농경신이자 개척신의 이미지로 그려져 있다. 

 

학자들은 이러한 기록을 원형으로 바라본다. 후에 이즈모를 통치하던 스사노오-오오쿠누시(大國主神)의 후손이 기나이 지방으로 진출하였음은 야마토정권에 이르기까지 기나이 일대에서 가장 숭앙되었던 신이 스사노오-오오쿠누시(大國主神)의 후손이었던 오오모노누시(大物主神)였던 점에서 잘 알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오오모노누시는 기나이에서 가장 오래된 제천산(삼신산)이자 일본신도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는 미와산(三輪山, 미모로산(御諸山)) 아래에 자리한 오미와신사(大神神社)의 주신으로 야마토왕조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변함없는 지위를 누려왔던 최고의 신격이었다. 

 

이처럼 이즈모세력은 기나이 일대에 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는데, 진무천황의 동정을 계기로 큐슈계에 밀려났고 큐슈계의 주도하에 큐슈계와 이즈모계의 통합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큐슈계 진무천황은 동정(東征)에 성공한 이후 스사노오-오오쿠누시-오오모노누시의 후손인 코토시로누시(事大主神) (『일본서기』, 『고사기』에는 오오모노누시로 되어 있음)과 다마쿠시히메(玉櫛媛)의 사이에 태어난 장녀 히메타타라이스즈히메(媛蹈鞴五十鈴媛命)과 결혼하였다고 한다.  또한 차녀 이스즈요리히메(五十鈴依媛命)는 2대 천황인 스이제이천황(綏靖天皇)과 혼인하였다고 했다.


정리하자면, ‘스사노오→오오쿠니누시(대국주신)→오오모노누시(대물주신)→코토시로누시(사대주신)’로 이어지는 이즈모 세력은 어느 시점에서 큐슈 아마테라스계 진무천황에게 굴강해들게 되었다.  이처럼 기기신화에 나타난 스사노오와 아마테라스의 대립 구도는 실제로 일본 고대 기나이 지방을 둘러싼 이즈모세력 대 큐슈세력간의 전쟁 및 큐슈 세력의 승리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상 기기신화에 나타난 기록들을 통해, 일본 야요이문명의 최초 개척자가 이즈모 지역을 개척한 신라신 스사노오임을 알 수 있었다.  스사노오계는 이즈모 지역을 넘어 기나이까지 진출, 명실상부한 일본 야요이문명의 주도세력으로 역할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후발 도래세력인 큐슈 지역 아마테라스계가 기나이 지역을 장악하였지만 스사노오계가 이미 닦아놓은 문명 기반 속으로 아마테라스계가 편입되어가는 모습이었다. 이러한 면모는 아마테라스계의 기나이 장악 이후에도 이즈모계 신인 대물주신이 야마토정권의 주신으로 여전한 지위를 누렸던 데서 단적으로 알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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