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가 올해 77살, 내과 전문의다. (배꼽힐링을 체험하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좋아지리라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배꼽힐링은 기적이다. 몇 분만 해도 누구나 금방 자기 몸의 변화, 이전과의 차이를 느낄 수 있다. 요즘 매일 한다."내과 및 가정의학 전문의인 에드워드 장(Edward Jang, 77) 선생은 배꼽힐링을 ‘기적’이라고 했다. 여든을 앞둔 베테랑 내과 전문의가 소장을 비롯해 내장기관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배꼽힐링을 한 체험담도 놀랍다.장 선생은 “어깨 움직임이 무척 편해졌고 왼쪽 좌골 통증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다리
'벨리버튼힐링(Belly Button Healing)''헤소히링구(へそヒーリング)'‘뚜치랴오바(肚脐疗法)'미국, 일본, 중국 모두 말은 다르지만, 배꼽힐링을 통해 자신의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은 이들의 찬사는 한결같다. 지난 4월 국내에서 《내 몸과 마음을 살리는 5분 배꼽힐링》(일지 이승헌 지음, 한문화 펴냄) 출간과 함께 출시된 일지 힐링라이프(일명 배꼽힐링기)가 2016년 여름 지구촌 곳곳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배꼽 주변에는 소화· 순환·면역기관 등 생명을 유지하는 주요 기관이 모여 있
"단학의 원리 중 하나가 수승화강(水昇火降)이다. 신장의 수(水) 기운은 등을 타고 머리로 올라가고 심장의 화(火) 기운은 아랫배로 내려간다. 인체 건강을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원리다. 아랫배 단전에 따뜻한 열감을 느끼면 선계(仙界)에 반 발짝 들여놓은 경지라고도 한다."이갑성 전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가 단학의 3대 원리 중 하나인
한민족 역사문화공원을 올라가다 보면 천손교(다리)를 약 100m 앞두고 오른쪽으로 붉은색을 칠한 ‘홍살문’이 나타난다. 홍살문이 대개 그렇듯이 하나의 문이 아니라, 중앙의 큰 문이 있고 양쪽에 작은 문이 덧달려 웅장한 세 개의 문이다. 각각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한다.홍살문은 신라 시대에 처음 만들어져서 불교 국가인 고려를 거쳐 유교 국가인 근세조선시대에서
한민족역사문화공원에는 소나무가 많이 있다. 이 소나무 한 그루 한 그루는 오랜 기간 선별하여 전국에서 그야말로 귀빈처럼 모셔와 지금의 자리에 안착하였다.소나무는 무궁화와 함께 ‘한민족의 나무’라고 해도 틀림없을 만큼 삼천리금수강산과 우리의 심성에 대대로 아로새겨져 있다. 흰 눈이 쌓여 있는 깊은 산 속, 보는 이 없어도 홀로 푸르게 솟아 있는 ‘낙락장송’은
제주도에 가면 곳곳에 검은색 현무암으로 깎아 세운 ‘돌하르방’이 있다. ‘하르방’은 ‘할아버지’라는 제주도의 토속어이다. 육지와 달라 낯선 제주 풍광에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하르방’을 만나면 왠지 정겹고 반갑다. 돌하르방의 기원은 육지기원설, 남방기원설, 제주 자생설 외에 몽골의 ‘훈춘로’라는 석인상과 비슷하다 하여 몽골기원설도 있다. ‘몽골기원설’을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의 설립 정신을 가장 밝게 드러내는 곳이 바로 성인, 성자 지구평화기원상 터이다. 이곳에는 지구 상에 사상과 종교에 따른 분쟁과 갈등이 사라지고 인류평화와 건강한 지구촌 시대가 실현되기를 바랐던 성인들의 거룩하고 숭고한 뜻과 에너지가 담겨 있다.국학원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의 설립자인 일지 이승헌 총장(글로벌사이버대)은 뉴밀레니엄의 시작인 20
홍암 나철 선생(弘巖 羅喆, 1863년~1916년)의 본명은 ‘나두영’ 또는 ‘나인영’이다. 근세조선이 기울어 가는 서기 1863(단기 4196)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나 29세 때 문과에 급제한다. 이후 선생은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승문원권지부정자를 역임하였다.1894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다음, 미국, 영국 등 열강들과 침략 상호 묵인체제를 구축
묘청(妙淸, ?년~1135년)은 고려 인종 때의 스님이다. 인종은14세의 어린 나이에 왕이 되어 안으로는 이자겸과 척준경의 난을 당하며 대신들과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밖으로는 북방의 요나라가 멸망하더니 북송마저 몰락하면서 여진족의 금(金)나라가 자리를 잡고 압박해 오기 시작하였다.이때 고려의 큰 학자인 정지상의 추천으로 홀연히 나타난 ‘스님 묘청’은
대야발(大野勃, ?~742년)은 대진국(大辰國), 일명 발해의 시조인 성무고황제 대조영(大祚榮)의 아우이다.서기 668년, 고구려가 당나라에 멸망하자 대조영은 아버지 대중상과 아우들, 처남들과 함께 고구려를 재건하기 위하여 떨쳐 일어난다. 그들은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흑수말갈, 월희말갈, 속말말갈) 등 3만5천 명을 모아서 끈질기게 당에 대항한다.30여 년
신라 후기, 최치원(崔致遠 857~?)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홀로 당나라로 유학을 떠난다. 아버지 ‘견일’은 “10년 안에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강력하게 독려한다.서기 874년, 18세의 나이에 최치원 선생은 당나라 조정이 실시한 외국인 대상 과거 '빈공과'에서 당당하게 장원급제를 함으로써 아버지의 독려에 화답한다. 이후 17
‘사람’은 ‘살’과 ‘앎’의 합성어이다. 살은 육체이고 앎은 정신이다. 사람이란 존재는 육신과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오묘한 우리말이다.어떤 사람도 혼자서는 살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人間)’이란 말을 풀면, 사람은 관계가 중요한 사회적 존재라는 뜻이다. 좋은 사람이란 관계가 조화로운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란 나만 알 뿐인 사람으로 사이가 조화롭지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