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력은 단순히 소리를 듣는 능력에 그치지 않는다. 타인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위급한 상황을 감지해 안전을 지켜주는 역할도 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이 청력 저하를 방치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난청은 초기 증상이 뚜렷하지 않아, 본인이 인지했을 땐 이미 상태가 많이 진행돼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청력은 달팽이관 속 유모세포와 청신경이 소리를 감지하고 전달하면서 유지된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유모세포가 손상되고, 청신경도 점차 퇴화하게 된다. 이 과정은 자연스러운 노화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사람에 따라 훨씬 이른 시기에 청력 저하가 시작되기도 한다. 말소리가 또렷하지 않게 들리거나, 소리의 방향을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자주 반복된다면 난청의 시작일 수 있다. 간혹 갑작스럽게 이명이 생기는 것도 신호일 수 있다.
난청은 단순히 소리를 듣기 불편한 수준에 머무르지 않는다. 대화에 끼기 어려워지면서 사회적 고립이나 우울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심할 경우 인지 기능 저하까지 동반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조기 진단과 대응이 중요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는 자각이 어려워 병원을 찾을 때쯤이면 증상이 꽤 심해진 상태다. 일반적으로는 25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들어야 인지할 수 있을 때 난청으로 진단된다. 치료 시점을 놓치면 회복이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조기 진단에 힘써야 한다.
난청 치료에는 보청기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그런데 보청기를 단순히 소리의 크기를 키워주는 ‘증폭기’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된다. 제대로 된 청력 개선 효과를 얻고 싶다면 청력의 상태, 귀의 모양, 귀 내부 건강 상태, 직업이나 생활 환경까지 모두 고려해 개인에게 꼭 맞는 기종과 세기로 정밀하게 조정해야 한다. 따라서 이비인후과에서 청력 검사와 함께 귀 상태에 대한 진단을 받은 후, 이를 바탕으로 내게 맞는 보청기를 찾아야 한다.
예를 들어, 귓바퀴가 유난히 돌출된 사람은 귓속형 보청기를 착용하는 것이 좋다. 귀걸이형 보청기는 귓바퀴에 걸쳐 착용하기 때문에 돌출 귀의 경우 제대로 고정되지 않고 빠질 수 있다. 반면, 일반적인 귀 형태에는 귀걸이형 보청기도 안정적으로 착용이 가능하다.
귀의 상태에 따라 보청기 선택이 달라져야 하는 경우도 있다. 중이염이나 외이도염을 앓은 이력이 있거나 현재 진행 중인 염증이 있는 사람은 통풍이 잘되지 않는 귓속형 보청기를 착용하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다. 이 경우 귓구멍을 막지 않고 환기를 도울 수 있는 귀걸이형 보청기가 더 적합하다. 귀지를 많이 생성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귀지가 과도하면 귓속형 보청기에 끼여 기기 고장이 생기거나, 피드백 현상으로 인한 소음이 생길 수 있다. 보청기 내부가 막히거나 귀 안이 자극되면서 귀 가려움이나 이구전색 증상도 심해질 수 있다.
이비인후과에서는 이처럼 귀의 구조나 질환 유무, 귀지 양 등을 종합적으로 진단해 가장 적합한 보청기를 추천하고, 착용 이후에도 주기적인 점검을 통해 기기 상태와 귀 건강을 함께 관리할 수 있다. 보청기를 착용한다고 해서 손상된 청력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지만, 특정 주파수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청각 적응 훈련을 병행하면 도움이 된다.
초기에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리거나 주변 소음이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2~3주의 적응 기간을 거치며 차츰 익숙해진다. 이 시기에는 보청기의 세기를 자주 조정하게 되며, 이후에도 6개월 또는 1년에 한 번 정도 정기 점검을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보청기는 단순히 소리를 키우는 장비가 아니라, 개인에게 꼭 맞는 조건으로 정밀하게 맞춰야 하는 의료기기다. 이비인후과에서 청력과 귀 상태를 모두 확인하고, 그에 맞게 처방받아야 일상 속 불편을 줄이고 장기간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글: 동탄 코즈이비인후과 김효연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