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미다스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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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괜찮다는 말은 안심하게 하는 말이 아니라 더욱 위태롭게 만드는 말이었다.
괜찮다는 말은 그 누구의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자신을 드러냈다.
날기 시작한 말이 어디서 어떻게 부유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채로.
한참을 울던 그 손님은 내가 쥐여 준 휴지를 들고 카페를 떠났다.

『두잇 커피, 마음을 내립니다』中

‘괜찮다’는 말은 누군가의 아픔에 위로처럼 얹히지만, 때로는 그 무심한 선의가 오히려 더 큰 무게가 된다. 이 장면은 주인공 이윤이 고객의 눈물을 마주하며 느낀 무력감, 그리고 말이라는 것이 지닌 양면성을 절묘하게 포착한다. 누군가를 다독이는 말이 되기 위해선,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사전 이해와 조심스러운 접근이 먼저 필요하다는 사실. 이 문단은 커피숍이라는 공간에서 오가는 ‘작은 언어들’이 얼마나 조심스럽고, 또 얼마나 깊이 있는 교감이 될 수 있는지를 상기시킨다.

『두잇커피, 마음을 내립니다』는 커피숍이라는 일상적 공간에서 비일상의 감정들이 차오르는 순간을 포착한다. ‘두잇커피’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주인공 이윤은 하루에도 수십 명의 손님을 맞이한다. 그들이 남기는 한마디, 한숨, 말없는 눈빛 속에는 저마다의 삶이 스며 있다. 이윤은 커피를 내리는 손보다, 그 커피를 건네받는 손님의 표정에 더 오래 머문다. 그렇게 이 소설은, 말보다 말 없는 순간에서 더 많은 것을 감지하는 사람의 이야기다.

작품은 다섯 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으며, 각 장마다 하나의 작은 삶의 파편이 담겨 있다. “루비쿠키의 정체”, “12시 55분 레모네이드 걸”, “설경은 휘핑크림 맛” 등 에피소드의 제목들은 감정의 스냅샷처럼 다채롭고 정감 있다. 이야기를 이끄는 구조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결은 결코 가볍지 않다. 주인공 이윤은 손님들의 사연을 경청하면서 자신의 내면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타인의 이야기에 공명하며 스스로를 회복해나가는 그의 여정은, 독자로 하여금 '관계'라는 주제를 감각적으로 되묻도록 만든다.

책의 감수성은 곽현주 작가의 삶과 맞닿아 있다. 휠체어를 타고 살아가는 그녀는, 세상과의 관계 맺기에 남다른 감도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두잇커피, 마음을 내립니다』는 비장애인이 쉽게 건너뛰는 ‘작은 기척들’에 오래 머문다. 말보다 태도, 질문보다 응시, 해답보다 경청이 우선시된다. 물리적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작가가 상상 속에서 자유롭게 관계의 다리를 놓았듯, 이 소설은 감정의 접근 방식에 있어 누구보다 깊고 느린 걸음을 택한다.

읽고 나면 마음에 은은한 커피 향이 남는다. 그것은 단지 서사의 여운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놓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반성, 그리고 다시 관계를 시작해보려는 조심스러운 다짐에 가깝다. 『두잇커피, 마음을 내립니다』는 삶이 조금은 느슨해졌을 때, 그 빈틈을 다정히 채워줄 수 있는 이야기다. 위로란 말이 아니라 태도이며, 관계는 해답이 아니라 반응이라는 것을 이 책은 아주 조용하고도 명확하게 알려준다.

거창한 사건이나 반전 없이, 그저 고요히 사람을 관찰하고 마음을 헤아리는 이야기의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삶의 표면 아래 숨어 있던 감정들이 평면성을 탈피해, 커피 향처럼 천천히 스며들며 독자의 마음을 적신다. 이윤이라는 인물은 말 없는 고백들을 알아보는 사람이고, 그가 만들어내는 관계의 방식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얼마나 무심히 지나치는지를 되돌아보게 한다. 그리고 독자는 비로소 안다. 위로란 반드시 말을 통해야만 전달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말하지 않는 태도 속에서 더 깊은 울림이 생겨날 수 있다는 것을.

곽현주 작가는 삶을 온몸으로 견디며, 동시에 그것을 언어로 품어낸다. 그녀의 문장은 작지만 단단하고, 유약해 보이지만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두잇커피, 마음을 내립니다』는 누군가에게는 소소한 이야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가리키는 방향은 분명하다. 관계를 잃어버린 시대,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어야 한다는 것. 살아가는 일이란, 때때로 말없이 마주 앉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진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조용히 전하고 있다.

진심은 말보다 태도로, 위로는 위안보다 방향으로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