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불교유산에 대한 국보 지정이 잇따라 예고됐다. 국가유산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된 공주 마곡사에 있는 보물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을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했다. 또 조선 후기 후불도인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와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아울러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했다.
‘탑 위에 탑’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

국가유산청은 보물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을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승격 지정 예고했다. 이 오층석탑은 유네스코 세계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등재된 사찰 중 하나이자,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공주 마곡사에 있다.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은 고려후기에 조성된 5층 석탑. ‘풍마동(風磨銅)’이라고도 불리는 길이 1.8m의 금동보탑을 옥개석 위에 올려 이른바 ‘탑 위에 탑’을 쌓은 매우 특수한 양식을 갖췄다. 특히, 금동보탑은 원나라 등에서 유행했던 불탑양식을 재현하고, 제작기법이 정교하고 기술적, 예술적 완성도가 뛰어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석탑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당시 불교문화의 국제적인 교류 양상을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매우 크다.
조성시기에 관한 기록은 없으나, 세부 표현기법으로 미루어보아 고려후기(14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후기 충청과 호남 지역에 성행한 백제계 석탑 양식을 보인다는 점, 2층 탑신에 조각한 사방불의 머리 위 장식이 고려후기의 불상에서만 등장하는 동그란 모양이라는 점, 사방불 중에서도 동쪽에 새겨진 약사불이 든 약함이 뚜껑이 없이 위가 볼록한 형태로 ‘장곡사 금동약사여래좌상’(고려 1346년)에서 보이는 것과 동일하다는 점 등이 그 근거다.
또한, 2중으로 조성한 석탑의 기단은 고려시대에 성행했던 백제계 석탑 양식을 보이인다. 석탑 지대석에는 게의 눈과 같은 형상의 곡선 모양을 일컫는 해목형 안상(蟹目形 眼象)을 새겼는데, 이는 현존하는 석탑에서 최초로 발견된 사례로 학술적, 예술적 가치가 크다.
조선 후기 후불도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

국가유산청은 조선 후기 후불도인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와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를 국가지정문화유산 국보로 지정 예고했다. 아울러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했다.
지난 1997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된 ’합천 해인사 영산회상도‘는 화면 하단의 화기를 통해 1729년(조선 영조 5)이라는 제작 연대와 의겸을 비롯, 여성, 행종, 민희, 말인 등 화승들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다.
전체적으로 조선 후기 불화의 색채를 유지하면서도 제자들의 얼굴 표현, 그리고 세부 문양에서는 조선 전기 불화의 전통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불·보살의 얼굴과 신체를 금으로 칠하고 불·보살을 포함해 모든 존상의 복식 문양을 가는 금선으로 세밀하게 표현해 화려함을 더하는 등 뛰어난 예술성을 지녔다.
‘김천 직지사 석가여래삼불회도’는 지난 1980년 보물로 지정됐다가 이번에 국보로 지정 예고된 조선 후기 후불도이다. 중앙의 영산회상도, 좌측의 약사여래설법도, 우측의 아미타여래설법도 3폭으로 구성돼 있다. 현존 삼불회도 중 3폭이 온전하게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규모가 큰 작품. 세관을 비롯, 신각, 밀기 등의 화승들이 1744년(조선 영조 20) 완성해 직지사 대웅전에 봉안했다.
일본서 환수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나전국화넝쿨무늬상자’는 지난 2023년 국가유산청이 일본에서 환수한 유물이다. 뚜껑과 몸체, 안쪽에 공간을 분리하는 속상자로 구성돼 있다. 침엽수 계통의 나무로 만든 백골 위에 천을 바르고 그 위에 골회를 입혀 자개를 붙인 다음 여러 번 옻칠해 마감하는 전형적인 고려 나전칠기 제작 방식인 목심저피법으로 제작됐다.

보존상태가 뛰어나고 나전 고유의 빛깔이 잘 남아 있으며 문양의 정교함이 돋보인다는 점에서도 높은 학술적·예술적·기술적 가치를 지녔다.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는 화기를 통해 1790년(조선 정조 14)이라는 제작 연대와 상겸, 홍민, 성윤, 유홍, 법성 등 제작 화승을 명확히 알 수 있는 불화다.
정조는 1789년 아버지 장헌세자(1735-1762)의 무덤을 화성으로 옮겨 현륭원으로 조성하였다. 명복을 빌기 위해 건립하는 사찰인 원찰로 용주사를 창건한 뒤 이곳에서 수륙재를 개최했다. 이 수륙재에 사용할 목적으로 제작한 것이 바로 이 작품이다.
화성 용주사 감로왕도는 화면의 안정된 구도나 세부 표현 기법에서 완성도가 높ㄷ. 18세기 후반 불화에 수용된 일반 회화의 양상만이 아니라 불교의 구제신앙과 유교의 효사상이 결합하는 양상을 보여주는 정조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양양 선림원지 출토 금동보살입상’은 지난 2015년 강원도 양양군 선림원지의 승방터로 추정되는 곳에서 발굴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이례적으로 광배와 대좌까지 온전히 갖춘 희귀한 사례이며, 광배를 포함한 높이가 66.7cm로, 정확한 출토지를 알 수 있는 발굴품 중에는 가장 큰 보살상이다. 엎어진 채로 발견됐는데 도금 상태로 볼 때 제작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매몰된 후 1천100여 년이 지나 원래 봉안 장소에서 그대로 발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광배와 대좌 장식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이지만 전체적으로 도금이 거의 벗겨지지 않아 상태가 양호하다.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은 여러 경전에 들어 있는 참회의 방법과 내용 등을 일정한 체계로 엮은 ‘자비도량참법’을 후대에 다시 교정하고 정리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책이 중국에서 전래된 고려 때부터 여러 차례 간행되어 조선시대까지 많이 전파됐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된 상교정본자비도량참법에는 조선의 문신인 김수온이 쓴 발문이 남아 있어 이 책을 찍기 위한 목판을 1474년(조선 성종 5) 세조 비 정희왕후가 돌아가신 세종과 소헌왕후, 세조와 아들 의경왕, 예종, 성종 비 공혜왕후 등의 극락천도를 기원하며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조선 왕실이 발원해 제작을 주도한 왕실판본으로, 간행과 인출 시기 및 목적까지 명확해서 가치가 있다. 현재 이 판본의 다른 불완전본이 보물로 이미 지정된 바 있는데, 이번 지정 예고 대상은 10권 5책의 완질본이고 보존상태가 우수한 선본이므로 자료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