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도문화연구원은 모악산 천일암의 창건주인 김양순 할머니의 기일을 맞이하여 4월 18일 “어려운 시절에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염원하며 홍익을 실천하신 위대한 선각자”라는 주제로 제37주년 김양순 할머니 추모행사와 전주·완주 거주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홍익사랑 경로잔치를 일지 브레인아트 갤러리에서 개최하였다.

전북 완주군의회 이주갑 의원이 제37주년 김양순 할머니 추모행사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선도문화연구원
전북 완주군의회 이주갑 의원이 제37주년 김양순 할머니 추모행사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선도문화연구원

이날 전북 완주군의회 이주갑 자치행정위원, 구이면 주민자치위원회 박인철 위원장, 수왕사 벽암 주지스님, 곽용안·김귀덕 김양순 선덕비 설립위원과 완주·전주 주민 120여 명이 참석하였다.

완주군의회 이주갑 자치행정위원은 추모사에서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고자 하는 뜻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는 건 더 어렵고 힘들 것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행사에서 김양순 할머니께서 살아오신 인생을 살펴보면서 매우 뜻깊고 다시 한번 숭고한 뜻을 새겨보는 자리가 되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주민들을 위해 열심히 살아보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함께한 모든 분이 홍익의 뜻을 펼쳐주셨던 김양순 할머니의 뜻을 기리고 함께 할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건강하고 맑은 정신으로 홍익인간 뜻을 함께 실천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선도문화연구원 김세화 원장이 제37주년 김양순 할머니 추모행사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선도문화연구원
선도문화연구원 김세화 원장이 제37주년 김양순 할머니 추모행사에서 추모사를 하고 있다. 사진 선도문화연구원

선도문화연구원 김세화 원장은 “김양순 할머니의 이타주의 정신은 많은 사람에게 큰 위로와 힘이 되었고 우리 모두에게 깊은 감동을 줍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는 국가간, 이념간, 종교간, 세대간 대립과 분열, 그리고 지구환경 오염으로 많은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지 한 사람이나 단체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번 행사로 김양순 할머니를 기리며, 우리도 할머니처럼 인성과 양심을 회복하여 모든 생명이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홍익정신, 공생정신을 실천하여 조화를 이룬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라고 밝혔다.

이어 많은 참석자가 김양순 할머니의 영정 앞에 헌화하며 할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존경을 표했다.

제37주년 김양순 할머니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선도문화연구원
제37주년 김양순 할머니 추모제에서 참가자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사진 선도문화연구원

 

곽용안(남, 83) 선덕비 설립위원은 “예전에 김양순 할머니가 동곡사에 계실 때 누룩도 지어 올리고, 소금도 올리고 했었습니다. 동곡사에서 일하고, 당시에는 방이 없어서 할머니 방에서 모두 다 같이 지내기도 했습니다. 할머니 추모행사를 이렇게 개최해 주셔서 많은 사람이 참석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라고 감사를 표했다.

김말순 씨(여·70대, 전주시 중화산동)는 “김양순 할머니 생애 이야기를 들으니 너무 배울 게 많았고, 마음이 즐거우며 좋았습니다. 할머니 같은 분이 계셔서 우리가 지금 편안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선도문화연구원은 전주·완주 거주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홍익사랑 경로잔치를 열어 마음의 건강을 되찾는 브레인스포츠와 웃음명상, 노래 부르기, 점식식사 등을 진행하였다. 어르신들은 몸을 풀고 마음을 열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선도문화연구원은 어르신들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하고 집에서 먹을 수 있게 음식을 포장하여 제공하여 김양순 할머니의 공생 정신을 이어 실천하였다.

선도문화연구원은 제37주년 김양순 할머니 추모행사 후 전주·완주 거주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홍익사랑 경로잔치를 개최했다. 사진 선도문화연구원
선도문화연구원은 제37주년 김양순 할머니 추모행사 후 전주·완주 거주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홍익사랑 경로잔치를 개최했다. 사진 선도문화연구원

천일암의 창건주인 김양순 할머니는 대일항쟁기와 6·25 동란으로 참담하고 어려웠던 시절, 평생을 “이 세상 모든 사람이 잘 살게 해달라”는 염원과 기도 속에 홍익정신을 실천하며 살았던 선각자이다. 1896년 음력 11월 24일에 전북 순창 쌍치면의 김해 김씨 가문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에 집을 나와 백두산부터 제주도까지 두 번을 수행할 곳을 찾아다닌 끝에 전라북도 모악산의 동곡사(현 천일암) 터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이곳에서 평생을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고 수행하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 힘썼다. 시주로 받은 곡식으로 밥을 지어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주었다. 병든 사람들도 많이 고쳐주었는데 병을 잘 고치기로 유명하여 동곡사에 수행과 기도를 하러 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대일항쟁기 독립운동을 하다가 숨어 다니는 사람들, 6·25동란 중 생명의 위협을 느껴 산으로 피신한 사람들을 숨겨주고 음식을 제공하여 살려주기도 하였다. 할머니는 모든 생명을 품어주는 모악산의 사랑처럼 자신의 목숨이 위험한 상황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외면하지 않고 도움을 주고 평생 이타행을 실행하였다. 김양순 할머니는 서기 1987(단기 4320)년 음력 2월 28일 91세로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