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머리 안에 있습니다. 세상에 관한 모든 정보는 눈, 코, 귀, 혀, 피부 같은 감각 센서들을 통해서만 들어올 수 있고, 뇌는 그런 정보들을 기반으로 세상에 대한 답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뇌에는 뇌의 신경회로에 내장된 ‘추측 규칙’이 있어서 정보가 시각 피질에 의해 시상(視床·thalamus)으로 전달되면 시상은 ‘추측 규칙’과 눈에서 들어오는 정보와 비교하여 해석합니다.
〈그림1〉

<그림1>에서 윗면이 아랫면보다 어둡게 보입니다. 그러나 손가락으로 위면과 아랫면 사이를 가리면 윗면과 아랫면은 같은 색으로 보입니다. 윗면과 아랫면은 같은 색입니다. 그런데 윗면과 아랫면이 다른 색으로 보이는 것은 뇌가 있는 그대로 보지를 않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눈을 통해 이미지를 지각하는 방식은 카메라 렌즈로 사진을 찍는 것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망막(網膜)을 지나 뇌 시각피질에 도달한 빛 자극은 ‘해석’을 거쳐 최종 윤곽이 잡힙니다.
망막에는 윗면과 아랫면이 같은 색으로 비춥니다. 그러나 시각피질에서 뇌의 신경회로에 내장된 ‘추측 규칙’이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아랫면이 그늘져 있기때문에 어두워서 윗면과 같은 색으로 보이는 것일 거야, 그러므로 원래 색은 윗면보다는 밝은색이라고 해석해서 아랫면이 윗면보다 밝게 색 보정 작업을 합니다. 그래서 윗면보다 아랫면이 밝게 보입니다. 그런데 손가락으로 윗면과 아랫면 사이를 가리면 뇌는 윗면과 아랫면 구분이 없는 하나의 물체로 해석하게 되어 있는 그대로 같은 색으로 보이게 됩니다.
2015년 2월 26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텀블러(Tumblr)에 스코틀랜드의 가수인 케이틀린 맥네일(Caitlin McNeil)이 옷 사진을 올리면서 시작된 드레스 색깔 문제는 인터넷 상의 논쟁이 되었습니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드레스의 색깔에 대해 '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라는 의견과 '파란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라는 의견으로 갈리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하나의 사진을 두고 사람마다 색을 인식하는 데에 극명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 화제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전 세계의 웹사이트들에서 ‘흰금’(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파와 ‘파검’(파란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파로 갈려 서로 손가락질하며 지적하고 싸우는 일들이 아주 많이 발생했습니다.
<그림2>

드레스의 원래 색은 '파란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가 맞습니다. 파란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로 보는 사람은 빛이 순광(順光)으로 드레스에 비추고 있다고 뇌가 해석한 것입니다. 그런데 '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로 보는 사람이 생기는 것은 빛이 역광(逆光)으로 드레스에 비추고 있다고 뇌가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뇌가 이렇게 해석을 사람은 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 드레스로 보입니다.
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 드레스로 보이는 과정을 설명하면 망막에는 파란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 드레스로 비춥니다. 그런데 망막에 비춘 것을 보고 뇌가 해석할 때 사진을 보면 역광처럼 드레스 뒤에서 밝은 빛이 비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뇌는 빛이 역광이라고 해석합니다. 실제로 저 빛은 드레스 앞쪽에서 비치는 밝은 빛이 거울에 반사된 것이지만 뇌가 역광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뇌가 역광으로 해석하면 빛이 역광이므로 드레스에 그늘이 져서 '파란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로 보인다고 뇌가 해석하게 됩니다. 그래서 뇌에서 자동으로 색 보정 작업이 일어납니다. 역광이 아니어서 드레스에 그늘이 생기지 않으면 원래 색은 '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 일 것이라고 뇌가 자동으로 해석해서 '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로 보이게 됩니다.
인터넷을 자주 사용하는 현대인은 대부분 카메라의 역광 현상에 익숙하여 드레스를 '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로 보는 비율이 60~70퍼센트이고 '파란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로 보는 비율이 30~40퍼센트라고 합니다.
<그림1>에서는 모든 사람이 아랫면이 윗면보다 밝게 보이므로 뇌 해석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림2>에서는 사람에 따라서 뇌 해석이 다르게 되므로 '흰 바탕에 금빛 줄무늬'로 보이는 사람과 '파란 바탕에 검은색 줄무늬'로 보이는 사람이 서로 논쟁하는 일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뇌 해석의 차이로 다르게 보인 것이라는 뇌과학자들의 설명이 나오고 나서야 논쟁이 멈추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같은 대상을 보고 다르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뇌는 단지 감지되는 감각 센서의 정보를 기반으로 최대한 자신의 경험과 믿음을 정당화할 수 있는 해석들을 만들어낼 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석된 결과를 우리에게 인식시킵니다.
심리학자 프로닌(E. Pronin)에 의하면 사람들은 자신의 선입견을 알아보지 못하는 맹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편견은 무의식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자신의 편견을 스스로 인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합니다.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85퍼센트 이상이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편견이 덜하다고 생각했으며, 단 한 명의 참가자만이 자신이 평균적인 사람들보다 더 편향되어 있다고 답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인지적 편향이 매우 심한 상황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확신을 되도록 고수하고자 하며, 확신에 위배되는 정보를 맞닥뜨리더라도 기존 확신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확증편향으로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주목하고, 반대 증거는 무시하는 편향성이 강합니다.
통계청이 금년 3월 26일 발표한 ‘2023 한국의 사회지표’에 따르면, 보수·진보 간의 이념 갈등 82.9%, 빈부갈등 76.1%, 노사갈등 68.9%, 개발과 환경보존 갈등 61.4%, 수도권과 지방 갈등 56.8%, 세대 갈등 55.2%, 종교 갈등 42.3%, 남녀 갈등 42.2%로 발표되어서 우리 사회가 보수·진보 간의 이념 갈등을 비롯하여 사회갈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사회갈등을 해소하려면 우선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들이 뇌가 해석한 결과임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것을 인정하면 각자가 서로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있는 그대로를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뇌가 해석한 것임을 뇌과학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수용하면 각자의 확신이 모두 해석에 불과하고 각자 자기가 하는 생각이 틀릴 수도 있다는 점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절대적으로 확실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 다른 관점에 열린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2024년 1월 6일에 국가보훈처 산하 재단법인 대한국인 연구팀은 조사 결과 국민들이 지난 대통령 선거때보다 현재 사회갈등을 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선거기간에는 사회갈등이 커지고 선거가 끝나면 각 진영의 승복이 이뤄지며 갈등이 잠잠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대선이 끝난 뒤에도 사회갈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지금 우리나라는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로 사회갈등이 증폭되고 있습니다.
사회갈등을 해소하는 데 정치인들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정치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치인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입니다. 스페인 아이나 갈레고 바로셀로나 국제학연구소 교수 등이 2020년 9월 스페인의 시장 816명을 조사한 결과, 거짓을 회피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이 재선에서 떨어지는 비율이 높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스페인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정직과 진실함은 정치인의 가장 큰 덕목이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유권자에게 외면받고, 거짓과 선동에 능한 정치인이 유권자에게 선택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권력의 유혹에 빠져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에 빠진 정치인의 거짓말하는 입을 규제할 수 없다면 유권자는 적어도 진실을 외면하고 거짓말하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선택을 해서는 안 됩니다.
뇌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해석된 결과를 보여주기 때문에 신경생물학자 로저스페리(Roger Sperry)는 “뇌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알아보는 기계가 아니고 나의 선택을 정당화하는 기계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뇌는 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을 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는 인지적 편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도 인지적 편향이 있기에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특히 선거철에는 나에게 어떤 인지적 편향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인지적 편향에 따라 후보를 선택하고 있는지 성찰해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지적 편향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사실을 보고 평가하는 자세로 유권자가 투표한다면 사익(私益)과 정당의 이익보다 국익을 우선하는 정직하고 진실한 좋은 정치인들이 많이 당선될 것이고 따라서 우리나라는 갈등과 대립의 정치가 아닌 화합과 공생(共生)의 정치 문화로 국민통합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