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고목; 연습 사진. 이미지 극단 돌파구
2024 '고목; 연습 사진. 이미지 극단 돌파구

〈고목〉은 한국 근대연극사에 큰 족적을 남긴 월북 작가 함세덕(1915~1950)의 희곡이다. 1944년 일제강점기에 《국민문학》에 발표한 단막극 ‘마을은 쾌청’을 개작해 광복 후 1947년 4월 《문학》에 3막극으로 재발표한 작품이다. 극단 돌파구(대표 전인철)가 함세덕 극작 <고목>을 오는 3월 26일부터 31일까지 6일간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극단 돌파구는 오늘날 한국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으로 고전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 사회의 이념·경제·세대 갈등의 연원을 찾는 과정을 거치지 않고서 현재를 무대 위에 올리기는 역부족이라는 결론에 다다랐다. 과거를 통해 현재를 점검하고 미래를 꿈꾼다는 의미로 ‘고전의 미래’라는 시리즈를 준비하였다. 그 첫 작업이 함세덕 작가의 <고목>이다. 이 작품은 해방 직후 극심한 혼란과 첨예한 갈등 현장을 연극으로 기록한 르포르타주와 같다. 당시를 직접 겪지 않은 오늘날에도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문제인 서로를 반목하게 만드는 해묵은 이념적, 사회적 갈등의 밑 뿌리를 보여준다. 1940년대와 2020년대, 시대는 다르지만 갈등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격변기의 사회 상황 속에서 활동했던 함세덕은 대일항쟁기 말기에는 친일 작가로 활동했고, 광복 이후에는 남한에서 좌익연극 활동이 불가능해지자 월북을 선택했다. 과거 연극사에 배제되었다가 1988년 월북작가 해금 조치 이후 재평가되었다. 일관되게 설명하기 어려운 그의 행보와 희곡 세계는 당시 우리나라가 처한 역사적 상황과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오늘의 역사적 관점에서 쉽게 상상하기 힘든 ‘항일, 친일, 좌익’이라는 양극단의 관점을 오간다.

2024 '고목' 연습 사진. 이미지 극단 돌파구
2024 '고목' 연습 사진. 이미지 극단 돌파구

 

작품은 마을 지주인 박거복의 고목을 둘러싼 갈등을 통해 해방 직후 미군정기에서 벌어지는 계급 갈등, 지주와 정치 세력의 결탁을 형상화했다. 희곡은 고목이 상징하는 바를 명료하게 드러내면서도, 당시의 정치적 이념과 경제, 세대 간 긴장과 대립이 거복을 둘러싸고 치밀하게 전개된다. “낭만주의적 정서에 기반을 둔 사실주의적 집필가”라는 함세덕에 대한 일반적인 평가와 달리, 극단 돌파구가 만난 <고목>은 낭만주의적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 극의 시간적 배경은 광복 직후이자 6·25가 발발하기 직전으로, 당대 한반도에 대한 민중의 의견과 입장 차이를 토론의 형식으로 장면화하여 생생하게 옮겨 놓았다.

<고목>의 배경이자 발표 시기인 1947년부터 2024년까지, 80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자본주의의 끝에 와 있는 2024년, 우리는 함세덕의 텍스트에서 무엇을 찾아낼 수 있을까?

전인철 연출가는 이번 연극을 “세대의 갈등과 교체, 함께 나누는 삶, 손상된 몸, 전염병 이후의 세계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2019년 김상열 연극상, 2017년 제54회 동아연극상 연출상 등을 수상한 극단 돌파구의 전인철 대표가 <고목> 연출을 맡았다. 전 연출은 <XXL레오타드 안나수이 손거울>, <지상의 여자들>, <키리에> 등에서 ‘재현하기와 재현하지 않기’라는 두 개의 질서가 공존하는 무대 구성과 연출 방법론을 시도했다. 이번 <고목>에서는 함세덕 극작술의 특징인 ‘눈에 보이는 공간과 보이지 않는 공간 구성’을 효과적으로 구축하면서 재현과 비재현 문제를 탐구한다.

또한 연극과 방송 등에서 활약해 온 김정호, 조영규를 비롯하여 김영노, 김은희, 김민하, 안병식, 이진경, 윤미경, 조어진, 황성현까지 10명의 배우가 출연해 대극장 무대를 가득 채운다. 여기에 30여 명의 코러스 배우들이 사전에 녹음한 군중의 만세 소리와 환호성이 극장 전체에 울려 퍼지면서 극의 몰입을 높인다.

3월 30일 오후 7시 공연 이후 함세덕의 <고목>에서 드러나는 여성, 전쟁 난민, 장애를 동시대의 관점에서 다시 읽어내는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