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조은에서 9월 21일 개막한 권민호의 개인전《Calibration Page : 보정 면》은 작가의 10년 작업을 되돌아보고 작업 과정과 방식을 조명한다.

권민호 작가는 “한국 근현대 풍경화”를 작업한다. 우리가 지금 누리는 문화의 기틀이 산업화라고 생각한 작가는 한국 산업화 시대 역사와 미학을 건축 도면 형태로 압축하여 표현한다. 공장, 기계, 거리 간판, 콘크리트, 기름때 묻은 쇳덩이 같은 산업화 시대 이미지가 여러 겹의 레이어로 중첩된다. 완성된 드로잉 작업은 색과 움직임이 더해지며 영상작업의 형태로 표현되기도 한다.

일반적인 핸드 드로잉과 다르게 권민호의 작업은 복잡하고 기계적인 과정을 거친다. 크로키 용지, 켄트지, 트레이싱지와 같은 다양한 종이 위에 연필, 목탄, 펜 또는 흑연 가루를 이용해 자로 선을 그으며 흑백 드로잉을 완성한다. 그 후 기계식 복사기를 이용해 트레이싱지 위에 이미지를 인쇄한다. 1차로 인쇄된 트레이싱지 위에 다시 그림을 그리고 복사하는데 이 과정을 수십 번 반복하며 구조물을 구축하듯 선들을 쌓아 올린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을 국립현대미술관 현오아 학예사는 권민호 작가가 “드로잉과 더불어 ‘대량생산’이 가능한 인쇄(판화)라는 제작 방식을 통해 작품의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도 ‘산업화’라는 주제에 일치시키고자 노력해 왔다”고 평한다.

권민호는 영국 센트럴세인트마틴스예술대학을 졸업하고 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후 현재의 작업 방식을 고수하며 한국의 ‘기계 미학’ 작가로 명성을 쌓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업의 프로세스(과정)을 처음으로 조명한다. 지난 10년 동안 진행한 작업 과정을 분해하여 펼치고 각각의 요소를 확대하여 펼쳐낸다. 작업 후 지워내야 했던 보조선들, 떼어내야 했던 마스킹 테이프, 작업 과정에서만 볼 수 있었던 중첩된 이미지들을 나열하듯 전시한다.

이번 작업은 10년이라는 작가의 작업 시간을 정리하는 작업이자 앞으로 새롭게 탄생한 작업을 위한 작가만의 재정렬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마치 프린터 작업을 새롭게 시작하기 전 뽑아보는 ‘보정 면Calibration Page’와 같다.

이 전시를 통해 작가는 평소 사용하는 건축용 드로잉 보드 인스톨레이션에서부터 드로잉 작업 과정을 그대로 보여주는 트레이싱지 설치 작업, 그리고 3미터에 육박하는 철판 실크스크린 작품까지 다채로운 매체를 통해 자신만의 작업 과정과 방식을 조명한다.

권민호 작가는 2017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야외프로젝트: 빛 소리 풍경” 전시를 비롯해 2019년 문화비축기지탱크4 개인전, 2020년 청주 국립현대미술관 개인전에 이어, 2021년 베니스비엔날레 건축 전시까지 국내외 주요 미술 기관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올해 10월에는 런던에서 개최되는 Woolwhich Contemporary Print Fair를 통해 총 4점의 에디션 신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는 영국 유학 시절 저우드 드로잉 프라이즈, 빅토리아앨버트박물관(V&A) 일러스트레이션 어워드, 서스테인RCA 런던 디자인 페스티벌과 같은 유수의 어워드를 수상했다.

권민호 작가 개인전 《Calibration Page : 보정 면》은 갤러리조은(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55가길 3)에서 10월 21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