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을 국민의 발아래에 둔다는 개념의 시초는 ‘호주 국회의사당Australian Parliament House’이다. ‘호주 국회의사당’ 건물 주변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그 잔디밭 공원이 그대로 국회의사당의 지붕으로 연결되면서 그 안의 의원들은 국민의 발아래에 있는 공간 구조가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의 주요 개념은 ‘호주 국회의사당’처럼 지붕과 공원을 연결해 시민들이 그 위를 산책할 수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국정원에서 보안상의 이유로 옥상정원 등 극히 일부만 개방했다. 여기서 호주, 독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독일이나 호주는 국가 안보를 신경 쓰지 않아서 그렇게 개방했을까? 나 같은 외국인조차도 미리 신청만 하면 독일 국회 회의장 위에 올라가서 내려다볼 수 있게 하는 것이 독일의 민주주의다. 우리나라는 아직 멀었다."

유현준 지음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표지. 이미지 을유문화사
유현준 지음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 표지. 이미지 을유문화사

 

유현준 지음 《유현준의 인문건축기행》(을유문화사, 2023, 492쪽)은 이렇게 정부 공공건물로도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읽어낸다. 건축물 외관이나 설계에 감탄하고 만다면 진면목을 보지 못한 것이다. 《인문건축기행》은 저자가 건축을 공부하면서 감명받은 서른 개의 근현대 건축물을 소개한다. 세계 곳곳에 숨겨져 있는 보물 같은 건축물이다. 이 건축물을 통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각을 만드는 데 도움을 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

세상에 많고 많은 건축물 가운데 서른 개를 어떻게 골랐나. 저자의 기준은 ‘새로운 생각’을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지?’라는 충격을 주는 건축물이다. 저자에 따르면 “새로운 생각이 들어간 건축물은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고, 크게는 사회를 변화시킨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기발한 생각’이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건축물들은 기존에 사람들이 생각지 못했던 발상의 전환에 성공한 건축물들이다. 하나같이 생각의 대전환을 보여주는 작품들이다. 이전에 당연하게 받아들이던 것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이제는 없던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 사람의 흔적이다. 별생각 없이 조상이 하던 대로 따라 짓던 건축가가 아닌, 수백 년 된 전통을 뒤집거나 비트는 혁명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이다. 그러니 《인문건축기행》는 단순히 건축이야기가 아니라 건축으로 세상을 바꾼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새로운 공간을 꿈꾸고 만든 1퍼센트의 영감을 가졌던 천재들의 이야기이다. 저자의 표현대로 이 건축가들은 벽, 창문, 문, 계단을 이용해 세상을 바꾼 혁명가들이고 대중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준 철학자들이다.

아울러 ‘기발한 생각’으로 탄생한 건축물이 모두 처음부터 환영받고 찬사만 쏟아진 것이 아니라는 점도 기억하자. 루브르 박물관 중정에 있는 유리 피라미드는 처음에 너무 파격적이어서 반대가 심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루브르 궁’ 마당에 ‘유리 피라미드’를 짓는 일은 ‘경복궁’ 마당에 ‘유리 피라미드’를 짓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우리나라에서 이 같은 일을 진행했다면 어떤 소동이 일어날지 짐작이 간다. 프랑스도 마찬가지여서 국민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당시 미테랑 대통령이 이 계획안을 너무 좋아해서 반대를 무릅쓰고 밀어붙였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프랑스를 문화 대국으로 만든 중요한 건축 프로젝트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지금은 ‘유리 피라미드’를 뺀 ‘루브르 박물관’은 상상할 수 없다. 이처럼 외국 건축물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의 상황도 녹여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외국 건축물 이야기이지만, 결국은 우리 건축물, 우리 사회를 이야기하는 셈이다.

책은 지역별로 묶어 소개하여 독자들이 여행할 때 찾아가기 편하게 했다. 유럽, 북아메리카, 아시아 등 지역별로 목차를 구성했다. 외국에 가서 책에서 소개하는 건축물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건축물을 한층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또한 독자들 이 책 속 건축물 근처를 여행하게 되면 시간을 내서 꼭 한번 들러보도록 당부했다. 서른 개의 건축물 속에 담긴 세상을 바라보며 독특한 생각들을 보면서 저자가 느꼈던 즐거움과 행복을 독자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사회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1퍼센트의 사람 되기 바란다.

건축물에 관심이 없더라도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원한다면 꼭 읽어볼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