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해주는 사자(使者)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 이야기할 기회마저 빼앗겨 애통한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 ‘사자’를 찾지 않을까?

츠지무라 미즈키의《사자 츠나구》(오정화 옮김, 리드리드출판, 2023, 399쪽)는  저마다 사연을 품고 ‘사자’를 만나는 이야기 다섯 편을 묶은 연작소설이다. ‘츠나구’가 바로 ‘사자’이다. 즉 죽은 자와 산 자를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과 직접적인 만남을 주선하는 만남 중개인 ‘츠나구’. 무당이나 영적 능력이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으로 빙의하거나 그들이 보내는메시지를 받아 전하는 형식이 아니다. 그런데 죽은 사람과 산 사람 모두 단 한번의 기회밖에 없다. 망자 한 사람이 만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한 명뿐이다. 산 사람도 평생 망자와 만난 기회가 단 한번밖에 없다. 만남을 의뢰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 사람, 살아 있는 사람뿐이다. ‘저 세상’의 망자는 ‘이 세상’의 사람에게 소식도 전할 수 없다.  

츠지무라 미즈키 장편소설 "사자 츠나구" 표지. 이미지 정유철 기자
츠지무라 미즈키 장편소설 "사자 츠나구" 표지. 이미지 정유철 기자

 

이런 조건에서 돌연사한 아이돌은 직장여성 팬의 만남 요청에 응해줄까? 만난다면 거의 생명부지의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할까.  <그녀가 아니었을지라도>의 이야기이다.  

어머니는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병은 나와 아내 그리 남동생 부부밖에 모른다. 네 명이 상의한 끝에 어머니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 병을 알리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일까? 어머니는 자신의 병이 암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그래서 완고한 아들은 사자 츠나구를 찾았다. 아들을 만난 어머니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내가 말할 수는 없었습니다>의 이야기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 만난 미소노와 아라시는 절친이 되어 사이 좋은 자매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친해진 이후 둘은 항상 정해진 시간에 만나 함께 자전거를 타고 등교했다. 2학년 가을, 새해 공연의 배역을 정했다. 아라시는 주인공 역은 당연히 자신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데 결과는 미소노. 주인공을 하고 싶다고 미소노가 손을 들때부터 아라시는 ‘배신자’라고 생각했다. ‘미소노만 없었다면 주인공은 나였을 텐데.’ 

그런데 미소노가 교통사고 사망했다. 마음에 가책을 느낀 아라시는 사자 츠나구를 찾는다. 자신이 틀어놓은 수돗물이 얼어 그곳을 자전거를 타고 지나던 미소노가 미끌어져 사고가 났다고 괴로워한다. 그런 아라시에게 미소노는 무슨 이야기를 할까. <먼저 나를 배신했으니>는 이렇게 전개된다. 

<기다리는 자는 시간의 흐름을 모릅니다>는 실종된 약혼자를 기다리는 회사원 이야기이다. 친구와 여행을 다녀오겠다고 집을 나선 약혼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약혼녀를 찾아 헤매던 회사원은 7년이 지나 사자 츠나구를 찾는다. 비로소 약혼녀가 죽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회사원은 두려움에 약혼녀와 만나지 않으려 한다. 두 사람은 만났을까? 약혼녀는 왜 돌아오지 않았을까? 

<죽음 이후의 만남을 주선해 드립니다>는 사자 츠나구의 가족이야기이다. 대를 이어 은밀하게 전수되는 츠나구 역할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앞에서 망자와 만난 이들의 후일담도 들어있다. 

산 사람에게 죽은 사람은 어떤 의미일까? 죽은 사람에게 산 사람은 또 어떤 의미일까? 만약 소설처럼 죽은 사람과 단 한 번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누구를 만날까? 그게 가능하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인가? 소설은 끊없는 상상 속으로 이끌며 큰 재미를 안긴다. 

작가 츠지무라 미즈키는 1980년 일본 야마나시 현에서 태어나 지바대학 교육학부를 졸업했다.

 2004년 《차가운 학교의 시간은 멈춘다》로 제31회 메피스토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2011년 《사자 츠나구》로 제32회 요시가와 에이지 문학 신인상, 2012년 《열쇠 없는 꿈을 꾸다》로 제147회 나오키상, 2018년 《거울 속 외딴 성》으로 제15회 서점대상을 수상했다. 미스터리를 중심으로 성장소설, 가족소설, 호러소설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창작력을 선보이며 일본에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 차세대 대표 작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