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오컬트 미스테리 드라마 '악귀'. 사진 SBS 드라마 '악귀' 방송 갈무리.
한국형 오컬트 미스테리 드라마 '악귀'. 사진 SBS 드라마 '악귀' 방송 갈무리.

매년 여름철 더위를 잊게 할 납량특집으로 ‘악귀’를 다루는 드라마, 영화, 웹툰 등 다양한 콘텐츠가 있다. 올해는 높은 관심 속에 지난 7월 30일 막을 내린 SBS 드라마 ‘악귀’에 이어 7월 29일 시작한 tvN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2’도 악귀를 퇴치하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그중 드라마 ‘악귀’는 악귀에 씌인 여주인공(김태리 분)과 귀신鬼神을 보는 민속학자(오정세 분)가 의문의 죽음들을 파헤치며 악귀의 실체에 접근해가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테리 드라마로, 매회 예상을 뒤엎는 전개를 펼쳤다.

김은희 작가 특유의 치밀한 관계설정과 반전 속에 긴박한 호흡으로 인간의 깊고 어두운 내면, 돈에 매몰된 현실의 잔인함,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하게 되는 실낱같은 희망을 말했다.

미스테리한 악귀를 다룬 콘텐츠가 끊임없이 재생산되는 것은 왜 일까? 인간으로서 용납하기 어려운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범죄와 폭력, 전혀 모르는 타인에게 저지르는 묻지마 범죄, 권력에 의해 무마되는 범죄들이 일어나는 현실 탓일 수도 있겠다.

이번 드라마 ‘악귀’에서는 그동안 깊이 조명하지 않던 민속학과 민중의 삶 속에 함께해온 존재, 귀신鬼神을 주목했다.

본래 귀신은 귀물과 신물을 함께 이르는 말이다. 과거 꺼림칙하고 궂은 일을 일으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존재를 ‘굿(귓)것’이라고 불렀고 한자어로는 귀물이라 했다. 반면,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존재를 신물이라 했다. 귀鬼는 헛것이고 신神은 성스러운 것으로 서로 대립적인 관계이다.

고려 말 대학자 이규보는 장편서사시 《동명왕편》 서문에서 〈동명왕본기〉를 읽고 동명왕 주몽의 신화를 처음에는 헛것으로 여겼는데, 세 번 거듭 읽으며 근원을 따져보니 신령한 일이었다는 자신의 깨달음을 적었다.

명을 다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모에게 직간접적으로 살해된 '태자귀' 이향이와 무당 최만월. 사진 SBS드라마 '악귀' 방송 갈무리.
명을 다하지 못하고 자신의 부모에게 직간접적으로 살해된 '태자귀' 이향이와 무당 최만월. 사진 SBS드라마 '악귀' 방송 갈무리.

드라마 ‘악귀’에서 다룬 악귀 중 핵심은 ‘태자귀’였다. 어린아이를 제물로 삼아 탐욕을 채우려는 어른과 굶주림과 가난을 벗어나고자 끔찍한 일을 모른 척 방조하는 어른들에 의해 만들어진 악귀이다.

원혼은 평범하지 않은 죽음에서 시작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도 귀신의 출생이 충족되지 못한 마음에서 생겨난다고 했다.

민속학에서 나이를 채우지 못하고 자신의 부모에게 직간접적으로 살해된 ‘한恨’을 품은 원귀를 ‘새타니’ 또는 ‘태자귀’라고 했다. 결국, 친족살해로 인한 원귀인 셈이다.

새타니는 어미에게 버림받아 굶어 죽은 남자아이의 원귀, 또는 그 혼령이 깃든 무당을 뜻했다. 이때 여자아이가 굶어 죽으면 ‘태자귀’ 또는 ‘기귀’라고 했다. 이렇듯 구분했지만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이 쓴 《성호사설》에서는 ‘어린아이 귀신’을 통틀어 ‘태자귀’라 부르기도 했다.

《성호사설》 중에는 ‘기귀(鬼)’에 대한 설명도 있는데, 역시 어린아이 귀신으로 늘 나타나 어미젖을 빠는데, 어미가 다시 임신하면 아이 귀신이 질투해서 태어난 아이가 병이 든다고 했다.

한편, 새타니가 원한이 강하거나 경험이 많아지면 ‘새우니’가 된다고도 전한다. ‘새우니’는 원래 무당이 사역하는 귀신이 영적 능력을 쌓아 진화된 악귀이다.

tvN드라마 ‘구미호뎐 1938’에서는 무당이 쇠퇴한 신통력을 되찾고자 여자아이를 부모에게 돈을 주고 사서 뒤주에 넣어 굶어 죽게 하여 ‘새타니’를 만든 내용이 나온다.

‘구미호뎐 1938’이나 ‘악귀’의 태자귀, 새타니의 공통적인 특징은 계속 자신의 진짜 이름을 묻는다. 굶어서 죽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숨이 멎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에게 생명을 준 부모에게 버려졌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곱씹었을 아이에게 이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처절한 절규였을 것이다.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경국사 감로도 속 아귀. 제단에 무릎꿇은 두 아귀 하단에 밥그릇을 들고 아우성치는 아귀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사진 한국문화재단 '월간 문화재' 갈무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경국사 감로도 속 아귀. 제단에 무릎꿇은 두 아귀 하단에 밥그릇을 들고 아우성치는 아귀들의 모습이 생생하다. 사진 한국문화재단 '월간 문화재' 갈무리.

또 다른 악귀로는 ‘아귀’가 등장했다. 아귀 역시 굶어 죽은 귀신인데 그 결핍을 과한 행위로 해소하려는 귀신이다. 불교에서 나타난 귀신으로, 아귀의 모습은 입에 먹을 것을 가져가면 먹을 것이 불로 변해 입과 목구멍을 데게 해서 먹을 수 없는 괴로움을 받는다.

굶어 죽은 아귀는 원귀가 되어서도 끊임없이 먹어야만 하는 반복행위에 갇혀 있으며, 아무리 채우려 해도 채워지지 않는 결핍을 충족하기 위해 몸부림친다. 서울시 유형문화재인 경국사 감로도에는 제단의 하단에 아귀가 밥그릇을 들고 아우성치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

드라마 ‘악귀’에서는 6화와 7화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결혼식, 인스타그램에 자랑할만한 명품 백과 명품시계 등 가져도 가져도 풀리지 않는 욕망에 자신의 영혼을 내주고 아귀가 되어버린 고교 동창 윤정이 나온다. 주인공 구산영(김태리 분)도 현실과 이상의 괴리감, 상대적 박탈감 속에 아귀의 유혹에 잠시 정신을 잃는다. 힘든 삶에 지친 나약한 마음을 교묘하게 파고든 것이다.

어둑시니, 마음 속 어둠에 점점 먹혀 들어가는 염해상 교수와 그를 지키려는 구산영. 사진 SBS 드라마 '악귀' 방송 갈무리
어둑시니, 마음 속 어둠에 점점 먹혀 들어가는 염해상 교수와 그를 지키려는 구산영. 사진 SBS 드라마 '악귀' 방송 갈무리

그리고, 등장하는 또다른 악귀 ‘어둑시니’. 우리 민담에도 자주 등장하는 어둠의 존재로 사람이 계속 어둠을 바라보거나 올려다 볼수록 더욱 더 커져서 마침내 사람이 그 어둠에 깔리게 된다. 역으로 내려다보면 점점 작아져 마침내 사라지는데 시선을 돌려버리고 무시하면 아무런 위협도 되지 못하고 물리칠 수 있는 존재이다. 마치 '구미호뎐 1938'에 등장하는 일본요괴 뉴도와 똑같다.

드라마 ‘구미호뎐’에서 등장했던 어둑시니는 사람의 내면에 존재하는 어둠에 대한 공포심, 지나친 자책감, 어두운 생각을 먹고 자라는 악귀이다.

드라마 ‘악귀’ 8화에서는 선대에 저지른 악행의 고리를 끊으려는 민속학자 염해상(오정세 분) 교수가 어린 시절 자신이 문을 열어준 행위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자책감을 파고드는 어둑시니에 사로잡혀 위기를 겪는다. 필사적으로 해가 가장 먼저 비추는 곳, 귀신이 싫어하는 곳으로 끌고 간 구산영에 의해 어둑시니를 물리친다.

드라마 ‘악귀’에 등장한 어둠의 존재들은 피할 수 없는 재앙이 아니라 인간의 비틀린 탐욕과 그리고 스스로 한 선택이 불러온 재앙이다. 그리고 그들은 악귀에게 자신의 본체, 정신을 내주고 그림자로 살아간다.

드라마 '악귀'는 음력 7월 보름날 불꽃을 통해 악귀를 물리치는 안동 하회마을의 선유 줄불놀이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진 SBS 드라마 '악귀' 방송 갈무리.
드라마 '악귀'는 음력 7월 보름날 불꽃을 통해 악귀를 물리치는 안동 하회마을의 선유 줄불놀이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사진 SBS 드라마 '악귀' 방송 갈무리.

최종화는 안동 하회마을의 선유 줄불놀이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선유 줄불놀이는 음력 7월 보름날밤 질병과 재액을 막고 경사를 부르는 벽사의 의미가 담긴 민속놀이이다. 줄불은 숯가루와 소금을 섞어 넣은 봉지를 새끼줄에 주렁주렁 매달아 그 줄을 강물 위 공중에 길게 드리워지도록 걸어 놓은 후 불을 붙이면 불꽃이 튀면서 마치 폭죽이 터지는 것과 같은 장관이 펼쳐진다. 

결국, 어둠의 존재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은 빛, 사람 안의 굳건한 밝은 마음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