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밀수'에서 주인공 진숙(염정아 분)과 춘자(김혜수 분)가 깊은 바다에서 밀수품을 가지고 올라와 가쁨 숨비소리를 토하는 장면. 사진 영화 '밀수' 메인예고 영상 갈무리.
영화 '밀수'에서 주인공 진숙(염정아 분)과 춘자(김혜수 분)가 깊은 바다에서 밀수품을 가지고 올라와 가쁨 숨비소리를 토하는 장면. 사진 영화 '밀수' 메인예고 영상 갈무리.

“삐익~!”

깊고 짙푸른 바다에 맨몸으로 뛰어든 해녀들이 수면 위에 올라 숨을 몰아쉴 때 나는 높고 독특한 휘파람 소리 ‘숨비소리’. 영화 ‘밀수’에서 두 주인공 진숙(염정아 분)과 춘자(김혜 수 분)을 비롯한 해녀 역할 배우들의 실감나는 숨비소리가 뇌리에 깊이 박힌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 영화 ‘밀수’는 개봉 11일인 지난 5일 관객 수 300만 명을 넘었다. 올해 개봉한 국내 영화 중 ‘범죄도시 3’이후 첫 번째로, 최근 극장을 찾지 않는 사람들의 발길을 이끌어 범죄도시3와 같은 1,000만 영화의 대열에 설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영화는 1970년대 본격적인 산업화에 들어간 우리나라에서 밀수가 성행하고, 세관의 추적을 피하려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해녀들의 특별한 능력을 밀수에 이용하려는 범죄조직의 이야기가 배경이다.

영화 '밀수' 포스터. 사진 영화 '밀수' 누리집 갈무리.
영화 '밀수' 포스터. 사진 영화 '밀수' 누리집 갈무리.

물질로 생계를 이어가던 해녀들은 화학공장이 들어서면서 군천 앞바다가 오염되어 위협을 받자 위험한 줄 알면서도 밀수에 동원된다. 세관과 해경을 피해 먼바다에 던져놓은 밀수품을 건져 오는 것이다.

그들이 범죄수익을 나눠 가지며 가상의 항구도시 군천은 호황을 누린다. 류승완 감독은 군산에서 해녀가 밀수가 개입했다는 기록을 언급했는데, 당시 군산에서는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닌다”라는 말이 돌 정도였다.

영화 초반 아버지가 선장인 해녀 진숙(염정아 분)은 외지인이지만 바다에서 서로 목숨을 기대며 핏줄보다 더한 정을 쌓은 춘자(김혜수 분)와 둘도 없는 영혼의 단짝이었다. 이후 일확천금을 노리는 탐욕과 비열한 배신, 그리고 오해로 영화는 놀라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특히, 서로에 대한 강한 유대로 끈끈한 진숙과 춘자, 해녀들 그리고 다방 마담 옥분(고민시 분)의 활약과 호쾌한 액션이 돋보인다.

김혜수와 염정아, 김재화, 박준면, 박경혜, 주보비 배우는 바다를 터전 삼아 매 순간 사고의 위험 속에서 서로에게 목숨을 빚지고 사는 해녀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렸다.

영화 속 에피소드와 같이 어부인 남편은 바다에서 팔을 잃고 해녀인 아내는 상어에 다리를 잃는 끔찍한 일들이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곳이 바다이기 때문이다.

영화 '밀수'에서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 해녀문화' 속 해녀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해녀박물관 제공). 사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영화 '밀수'에서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제주 해녀문화' 속 해녀들의 삶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해녀박물관 제공). 사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지금은 해녀라고 하면 누구나 제주도를 떠올리지만, 1970~80년대만 해도 전국 바다에서 해녀들이 원정을 나가 물질을 하고 그 지역에 정착하기도 했다. 부산 영도 해녀들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해녀는 제주에 가장 많았고 이들이 기술을 전수한 지방의 해녀들도 있었다.

통상 ‘해녀’라 부르지만, 제주 몇몇 마을에서는 ‘잠녀潛女’ 또는 ‘좀녀’라 부르기도 했다. 해녀의 수는 1970년 14,000명이었으나 1980년 7,800명, 2019년 3,820명, 2020년 3,613명, 2021년 3,437명으로 고령화에 따라 계속 감소 추세이며, 새롭게 해녀를 자원하는 수도 점점 줄어 지난해 28명에 그쳤다.

영화에서는 1980년대 고무 재질의 잠수복이 나오기 전 해녀들이 무명으로 지어 입던 해녀복 ‘물소중이’를 비롯해 바다에서 전복, 해삼, 성게 등을 수확할 때 쓰던 빗창, 수확물을 담는 테왁 등 해녀들과 늘 함께하던 소지품이 재현되었다.

이들이 연기한 해녀의 삶은 2016년 ‘제주 해녀문화 Culture of Jeju Haenyeo(Women Divers)’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인류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독특한 여성 공동체를 이루는 해녀들은 어린 나이부터 80대 고령에 이르기까지 생계를 위해 산소마스크 없이 수심 10m까지 잠수해 해산물을 채취했다. 한번 겨잠수할 때마다 1분간 숨을 참으며 하루 최대 7시간까지, 연간 90일 정도 물질을 했다.

해녀들의 삶의 현장인 거친 바다 속( 해녀박물관 제공). 사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해녀들의 삶의 현장인 거친 바다 속( 해녀박물관 제공). 사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또한, 잠수를 앞두고 제주 해녀들은 바다의 용왕 할머니에게 풍어와 안전을 기원하는 잠수굿을 지냈다. 잠수굿을 지낼 때 해녀들은 ‘서우젯소리’를 부르거나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바다로 나갈 때 ‘해녀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겨울철에도 고된 물질을 끝내고 돌아와서는 돌담으로 쌓은 불턱에서 모닥불을 피워 몸을 녹이고 잠수복을 갈아입으며 허기를 달래고 수확물을 손질하기도 했다.

해녀는 저마다 물질 능력에 따라 상군, 중군, 하군으로 나뉘었다. 오랜 기간 물질을 하며 암초와 해산물에 관해 잘 알고 기량이 뛰어난 상군 해녀가 중군, 하군 해녀들을 지도하며 해녀회를 이끈다. 상군 해녀로부터 물질에 필요한 지식뿐 아니라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배우며 해녀 문화와 질서를 계승하였다.

거친 바다에서 지나친 욕심은 목숨을 잃는 원인이 되었기에 공동체 전체가 해마다 잠수 일수를 결정하고, 작업 시간과 채취할 수 있는 해산물의 최소 크기를 정하며 남획을 방지하기 위해 특정 기술의 사용을 금지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며 삶을 일구었다.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전 수경을 닦는 모습(해녀박물관 제공). 사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해녀들이 바다에 들어가기 전 수경을 닦는 모습(해녀박물관 제공). 사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누리집 갈무리.

그래서 조선 시대 바다 건너 육지에서는 남성 중심의 사회였다면, 제주에서는 해녀들을 중심으로 한 여성 공동체가 있어 남녀의 지위가 비교적 평등했다. 제주도가 토양이 비옥하지 않은 화산섬인지라 대규모 농사에 적합하지 않아 제주 해녀들의 수확이 각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시 ‘제주 해녀 문화’는 공동체 내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기여해왔고, 생태 친화적인 어로 활동과 공동체에 의한 어업 관리가 친환경적 지속가능성을 높여주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