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토피아 석뮤지엄,  2005, 122×154cm( 건축가  이타미 준).  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비오토피아 석뮤지엄, 2005, 122×154cm( 건축가 이타미 준). 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2005년 여름 김용관 작가는 이미 건축가로부터 의뢰받은 사진을 모두 끝낸 후였다. 그 해 겨울 제주도에 폭설이 내렸다는 뉴스를 접하고 작가는 불현듯 흰 눈밭 위에 무심코 앉혀진 건물의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올랐고, 바로 그날로 제주도로 날아갔다. 무거운 카메라를 짊어지고 쌓인 눈을 헤쳐 그곳에 당도했을 때, 작가는 상상하던 장면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의 인생에 각인된 최고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작품 <비오토피아 석뮤지엄>(2005)이다.

건축 사진가 김용관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랩 1층 디자인갤러리에서 "관계의 기록, 풍경으로의 건축"전을 5월 4일부터 열고 있다. 김경아 기자
건축 사진가 김용관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랩 1층 디자인갤러리에서 "관계의 기록, 풍경으로의 건축"전을 5월 4일부터 열고 있다. 김경아 기자

이렇게 수많은 국내외 유명 건축가의 건축물을 사진으로 기록해 온 건축 사진가 김용관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이하 DDP) 디자인랩 1층 디자인갤러리에서 《관계의 기록, 풍경으로의 건축》전을 열고 있다. 이는 작가가 DDP와 같은 상징적 건축물을 자신의 색채를 반영하여 필름에 담아낸 전시로 5월 4일부터 8월 6일까지 개최한다.

사유원 소대, 2021, 101×172.5cm(건축가 Alvaro Siza), ‘사유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경북 군위군에 있는 사유원은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수목원이다. 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사유원 소대, 2021, 101×172.5cm(건축가 Alvaro Siza), ‘사유의 정원’이라는 뜻으로 경북 군위군에 있는 사유원은 자연과 건축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수목원이다. 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김용관 작가는 “이번 전시는 30주년 기념전이지 결코 회고전이 아니다. 아직 해야 할 작업이 많다”고 말했다.

작가 김용관은 도미니크 페로, 민성진, 조병수, 김찬중, 김태수, 마리오 보타, 조민석, 데이비드 치퍼필드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의 건축물을 필름에 담아 대중에 알려왔다. 그동안 작가가 촬영한 수만 장의 건축 사진 중 장소의 현상학적 풍경이 두드러진 40여 점을 골라 이번 전시에 선보인다.

건축 사진은 역사성, 문화성, 예술성을 지닌 건축물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의미를 형성하는 데 깊숙이 개입한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 김용관 작가가 건축가보다 건축물을 더 자세히 탐색하는 이유이다. 탐색을 마친 건축물은 작가 특유의 색채로 사진에 담아낸다.

김용관 건축 사진가. 사진 김경아 기자
김용관 건축 사진가. 사진 김경아 기자

특히 작가는 건축물을 하나의 독립적인 오브제나 사물이 아닌 자연과 도시 속에서 주변과 끊임없이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내는 생동하는 대상으로 인식한다. 전시 제목이《관계의 기록, 풍경으로의 건축》인 이유이다.

5월 8일 오후 기자간담회에서 김용관 작가가 직접 작품설명을 했다. 작가는 주변 환경과 건축물의 관계를 표현하면서 건축물의 외형과 분위기를 사진에 절묘하게 담아낸다. 그는 건물 주변의 분위기를 활용해 건물의 표정을 만들어 낸다. 그 중 대표적인 사례는 이타미 준의 수, 풍, 석 미술관 사진이다. 온통 눈에 뒤덮인 곳에 덩그러니 서있는 석, 풍미술관과 바람에 휘날리는 억새에 파묻혀 간신히 지붕만 보이는 수미술관은 건물에도 표정이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서울 해방촌, 2021, 106×172.5cm. 질서와 변화가 혼재된 이곳의 불 켜진 다세대 주택들은 ‘풍경으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건축물을 넘어서 도시적 삶의 세부를 들여다보려는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서울 해방촌, 2021, 106×172.5cm. 질서와 변화가 혼재된 이곳의 불 켜진 다세대 주택들은 ‘풍경으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건축물을 넘어서 도시적 삶의 세부를 들여다보려는 작가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김용관 작가는 “수 미술관 사진을 본 관객으로부터 무엇을 찍었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며 “바람을 찍었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그의 대표작인 이타미 준의 수, 풍, 석 미술관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다.

“관계의 기록”. 작가는 자신의 사진 작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나는 건축물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다.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이미지로 옮기는 사진 작업은 보는 이에게 다시금 3차원의 공간을 상상하도록 한다. 건축을 전하는 일차적인 매개체로서 전달자 역할이다. 내가 찍는 사진은 나의 직업이자 삶 그 자체이기도 하지만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고민과 시간을 함축하는 이미지이기도 하다. 마치 숙명과도 같은 건축가와 건축사진가의 관계, 그리고 또 건축을 포용하는 도시와 자연과의 관계. 나는 이 관계 속에서 도시와 그곳의 건축을 역사적으로 기록한다. 나의 사진이 나와 건축가 사이의 관계에 의해서 탄생했듯, 건축은 주변의 도시와 자연과의 관계에 의해 탄생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사진은 온전히 나의 것으로만 생각하진 않는다. 관계는 내 작업의 출발점이며, 내가 담는 건축의 가치이기도 하다.”

건축 사진가 김용관 "관계의 기록, 풍경으로의 건축"전. 사진 김경아 기자
건축 사진가 김용관 "관계의 기록, 풍경으로의 건축"전. 사진 김경아 기자

“관계”를 의식하며 전시를 보면 동일한 장소를 여러 방향에서 촬영한 사진, 거대한 빌딩숲 사진에 대비되는 서울 해방촌 사진 등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온다.

작품 설명을 하는 중에도 관람객이 끊이질 않았다. 김용관 작가는 “전시를 본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가볼 곳이 생겼다’, ‘한국을 여행한 것 같았다’는 소감을 남겼다”고 말했다.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2017, 101×172.5cm(건축가 김찬중). 울릉도의 해안가 절경 아래 진주처럼 밝게 빛나고 있는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2017, 101×172.5cm(건축가 김찬중). 울릉도의 해안가 절경 아래 진주처럼 밝게 빛나고 있는 힐링 스테이 코스모스. 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전시 사진 중에는 <종묘> <윤동주기념관> <내소사 대웅보전> 등이 있어서일까.

“김용관의 자유 프로젝트는 '풍경으로서의 건축', '관계의 기록'에서 벗어나는 양상을 보인다. 건축물의 지형적 문맥을 탐구하는 의뢰작업과는 달리 여기에서 사진가는 건축물의 세부에 집중한다. 건축물이 간직한 세부의 유사성과 동일성의 반복, 혹은 건물군에 내재된 형태와 크기의 유사한 대조에 초점을 맞춘다. 동일한 사무집기의 서로 다른 배열, 유사한 기능주의적 건축물들의 극적인 높이의 대비 혹은 변화 속에서도 규칙성을 보여주는 불 켜진 다세대 주택들은 '풍경으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건축물과 도시의 세부에 천착하는 사진가를 보여준다. 김용관이 엄정한 프레이밍으로 떼어낸 도시와 건축물의 파편들은 도시의 속성과 규칙을 여실히 드러낸다. 유사한 변화는 허용되지만, 무질서는 용인되지 않는다.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무질서는 도시 권력으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은 빨간 작업복 상의를 입은 감시원의 감독하에 오렌지색 포클레인에 의해 남김없이 철거된다.”(최봉림 사진비평가, “김용관의 건축사진에 관한 단상”)

건축 사진가 김용관 "관계의 기록, 풍경으로의 건축"전. 사진 김경아 기자
건축 사진가 김용관 "관계의 기록, 풍경으로의 건축"전. 사진 김경아 기자

 한편, 전시를 풍성하게 해줄 ‘작가와의 대화’와 ‘포럼’이 준비됐다. 작가와의 대화는 5월~7월 중 월별 두 번씩 전시장에서 진행될 예정이고, 포럼은 6월 15일(목) 오후 4시 DDP 디자인랩 3층 디자인홀에서 열린다. 참여 방법은 DDP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 또는 현장 신청하면 된다.

DDP, 2023, 122×162cm( 건축가 Zaha Hadid). 해체주의 건축의 선구자였던 자하 하디드의 작품인 만큼 많은 사람이 이 건물을 역동적 형태로만 다이내믹하게 표현하려 했다. 하지만 김용관 작가는 오히려 그 형태에만 함몰되지 않고, 건물이 갖는 이 고유한 분위기를 낯설고도 익숙한 우리의 일상 중 하나로 포착하려 했다. 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DDP, 2023, 122×162cm( 건축가 Zaha Hadid). 해체주의 건축의 선구자였던 자하 하디드의 작품인 만큼 많은 사람이 이 건물을 역동적 형태로만 다이내믹하게 표현하려 했다. 하지만 김용관 작가는 오히려 그 형태에만 함몰되지 않고, 건물이 갖는 이 고유한 분위기를 낯설고도 익숙한 우리의 일상 중 하나로 포착하려 했다. 사진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건축 사진가 김용관은 1990년 건축잡지 <건축과 환경> 재직 당시 처음 건축 사진을 찍기 시작해 국내에 가장 오래된 건축 전문지 <공간>의 전속 사진가로 활동했다. 1999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건축가협회(AIA)의 건축 사진가상을 받았으며 현업 건축 사진가 최초로 건축 사진 1만여 점을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건축 매거진 <다큐멘텀>을 창간해 한국 건축계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다.

DDP를 운영하는 서울디자인재단(대표이사 이경돈)은 작년부터 주목받는 동시대의 디자인을 소개하는 <DDP 디자인 전시 시리즈>를 기획, 선보이고 있다. 전시 관람은 무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