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일대 특강에 나선 윤명철 교수는 고구려사와 해양사 분야에 남다른 연구업적을 통해 ‘동아시아 지중해 이론’을 세웠고, 일찍부터 해륙국가로서의 고조선에 주목했다.

28살인 1982년부터 시작해 ‘해모수’라 명명한 뗏목을 타고 수차례 일본까지 갔다. 1991년부터는 동남아시아 지역 전체와 남태평양까지 조사했으며, 이후에 배를 타고 유럽까지 다녀왔다. 또한, 만주 일대를 답사하고, 실크로드를 탐사하며 현장에서 역사의 실마리를 찾았다.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는 "역사학은 행동학"이라고 강조하고 현장에 가서 생태환경과 생활양식을 알아야 비로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윤명철 동국대 명예교수는 "역사학은 행동학"이라고 강조하고 현장에 가서 생태환경과 생활양식을 알아야 비로소 그곳에 살던 사람들을 조금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그는 지난 2월 예일대 특강 때 ‘역사학은 행동학’임을 강조했는데 참석자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또한 “우리 민족은 역동적인 노마드 문화와 농경 정착문화가 복합된 모스테빌리티(Mostability)형 문화”라고 설명했다.

역사학이 행동학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현장을 가야지만 공간의 범주를 알 수 있고, 생태환경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요. 특히, 만주 일대는 현장에 가지 않으면 모릅니다. 원조선(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를 알려면 만주지역을 알고 생태환경을 알아야 합니다. (윤명철 교수는 고조선을 원조선으로 칭한다)

생태환경이 다르면 생산양식이 달라지고, 생산도구가 달라져요. 생산도구가 달라지면 그에 따라 생활양식이 달라지고, 또 민속, 신앙이 달라집니다. 그러면 철학이 달라지고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시스템, 정치가 달라지는 것이죠.

또 하나는 철학적인 이유죠. 현장에 가야 거기 살았던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먹고 살았고 어떻게 적과 싸웠으며 그들의 신앙을 무엇이었는지 조금 안다는 것이죠. 그래야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애정을 갖고, 역사에 대해 진지한 마음을 갖게 되죠. 그런 마음이 투영되었을 때 역사 앞에서 겸손하게 되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넘어서서 모두가 하나이고. 같은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죠. 이것이 궁극적인 역사학의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일대 특강 참석자들도 만주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했는데.

만주는 독특한 생태환경이에요. 다섯 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고구려 시기 중만주까지는 직접 통치하고, 관리는 파견하지 않지만 해당 지역 사람을 통해 직접 영향을 끼치는 지역이 있었죠. 군사도 동원하고. 그러니까 여진족, 말갈족들이 용병으로 동원되었죠. 하지만 그 북쪽인 서북 만주 같은 경우는 간접 영향권일 뿐이에요. 이들 북방민족이 중국으로 건너가 요, 금, 원, 청과 같은 정복국가를 세웠지만 우리는 요동과 한반도를 고수했어요.

한민족의 세계관은 ‘홍익인간’, 21세기 인류가 지향하는 문명과 일치
세계관에 따라 동아지중해 천혜의 땅 요동과 한반도 고수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지였던 국내성의 방어성인 환도산성과 그 앞에 자리한 400여 기의 고분군(길림성 집안시). 사진 윤명철 교수의 '한국역사와 문화의 이해' 갈무리.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지였던 국내성의 방어성인 환도산성과 그 앞에 자리한 400여 기의 고분군(길림성 집안시). 사진 윤명철 교수의 '한국역사와 문화의 이해' 갈무리.

 

한민족이 요동과 한반도를 고수한 이유가 있는지.

우리가 힘이 없거나 못나서 그런 게 아니에요. 왜냐하면, 이들 북방민족보다 강했지만 우리는 중원으로 갈 이유가 없었고 우리가 지향하는 문화가 있었기 때문이죠. 토인비나 슈펭굴러가 말한 것처럼 역사에서 철저하게 경제적 이익에서만 움직여지는 게 아니에요. 개인도 마찬가지지만 우리 문화권은 거기에 걸맞은 세계관을 가지고 실천해온 집단이에요.

그게 바로 홍익인간이에요. 홍익인간은 추상적인 게 아닙니다. 당연히 우리 삶 곳곳에 다 반영되어 있고 국가정책에 반영돼있는 것 아니겠어요? 초원지대인 서북 만주는 우리가 생활하기 불편한 지역이고, 중원 쪽도 여기 나름의 독특한 문화가 있던 거죠.

관련해서 분석한 논문이 있는데 남만주와 한반도는 동아지중해에서 지정학적으로 최고의 땅입니다. 국가나 민족이 사라질 만큼 남에게 공격받은 큰 전쟁이 거의 없었죠. 중국이나 서구에서는 역사가 채 100년도 안되는 나라가 수없이 많았지만 우리는 최소 500년, 1천 년을 이어갔죠. 게다가 생태환경이 훌륭한 천혜의 땅입니다. 쌀농사에 적합하고 산과 들에도 갖은 약초와 먹을 게 많아 굶을 이유가 하등 없었어요. 바다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으로 뻘이 발달해 온갖 먹을 게 많죠. 게다가 우리나라처럼 좋은 물을 가진 곳이 없어요. 차茶문화, 맥주, 와인이 발달하지 않은 것은 물이 좋기 때문입니다. 많은 나라가 물 때문에 고생하는데 프랑스나 독일 모두 석회수여서 그냥 마실 수 없죠.

특강에서 우리 문화를 ‘모스테빌리티(Mostability) 문화’라고 정의했다고.

예. 제가 만든 말이에요. 특강 참석자의 질문에 답했는데 감동을 주었다고 하더군요. 인간은 늘 역동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에요. 농경 정착문화가 좋지만, 거기에 매몰되어 역동성을 상실하면 안 되는 것이죠. 우리 문화는 정중동靜中動이 아니라 동중정動中靜 문화입니다. 역동성에 우위를 둔 정주형 문화.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전하고자 한 핵심은 무엇인가?

모든 존재마다 존재 가치가 있고 이유가 있는데 우리는 우리 나름의 문화와 문명이 있다는 것이에요. 우리들의 존재 방식, 이게 탁월합니다. 과거에도 백성들을 위해서 좋은 시스템이었고, 지금 21세기 인류가 지향하는 새로운 문명이기 때문에 우리가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게 핵심입니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제국주의적이고, 가진 사람과 권력자들을 위한 문화이지 평범한 사람들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그런 게 아니잖아요. 그걸 어떻게 비교할 수가 있겠어요?

2월 특강 때 오드 아르네 베스타(Odd Arne Westad)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와 토론을 했다고. (베스타 교수는 ‘제국과 의로운 민족’ 하버드대 특강과 저서를 통해 중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한국을 의義를 핵심가치로 추구하는 국가로 분석해 주목받고 있다)

한국이 고대부터 만주와 한반도뿐 아니라 바다를 통해 진출한 해륙국가라는 ‘동아시아 지중해 모델’에 대해 베스타 교수가 알고 있었고 관심이 많았어요. 그가 노르웨이 사람이라 특히 ‘아시아의 바이킹’으로 불렸던 발해에 대해 궁금해했습니다.

발해의 조선술에 관해 해양문화의 특성 중 하나로 불보존성不保存性에 대해 이야기했죠. 그리고 해양유물 대부분은 바닷속에 있는데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역사가 15년 정도로 짧죠. 하지만 제 이론을 근거로 발해의 배는 바이킹의 배와 비슷했을 것이라 설명하니까 베스타 교수가 무척 흥미로워했습니다.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르판에 위치한 고창고성. 중국은 동북공정뿐 아니라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을 대상으로 한 서북공정을 통해 역사왜곡을 단행하고 엄청난 연구논문을 내고 있다. 사진 윤명철 교수의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이해' 갈무리.
신장 위구르 자치구 투르판에 위치한 고창고성. 중국은 동북공정뿐 아니라 신장 위구르 자치지역을 대상으로 한 서북공정을 통해 역사왜곡을 단행하고 엄청난 연구논문을 내고 있다. 사진 윤명철 교수의 '한국의 역사와 문화의 이해' 갈무리.

미국에서 한국사에 관심이 없었는데 베스타 교수의 연구는 독특합니다.

중국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과 비교하게 된 것이죠. 일종의 중국에 대한 반발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 유럽이나 미국에서 반중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고 있어요. 지성사 측면에서.

과거 서양사람들은 중국에 대해 매우 우호적이었고, 일본에 대해서는 굉장히 비판적이고 부정적이었어요. 중국이 급부상하는 상황에서도 일본 위험론만 제기되었죠. 일본에 대해서는 아시아태평양전쟁 영향도 있고 계속 감시하겠다는 거죠. 또, 한가지는 앞서 말했듯 중국의 막대한 투자죠. 중국에 우호적인 연구를 하게 만드는 거죠. 앞으로 중국 우호적인 발언을 한 지식인들이 비판받게 될 겁니다.

미‧중 패권경쟁에서 동아시아 역사에 대한 해석이 매우 중요해졌다고.

중국은 동아시아 전부가 다 자기 것이라 주장하고, 지금 공자학원을 통해 전 세계를 중국화시키려 하고 있어요. 당연히 미국 입장에서는 그 논리를 깨야하는 하죠. 그걸 깰 수 있는 것은 일본도 아니고 중국은 더더욱 아니잖아요. 그러면 당연히 한국이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움직임이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저만해도 중국과는 전혀 다른 해석을 하잖아요. ‘중국은 한족 중심의 왕조가 아니다’라는 이론부터 구체적인 사료를 가지고 말할 수 있어요. (3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