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영화 ‘영웅’에 이어 관동대지진 및 조선인 학살사건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올해 항일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유령’이 지난 18일 개봉했다.

1933년 백정기, 원삼창, 이강훈 의사의 상해 육삼정 의거와 흑색공포단을 모티브로 한 영화 '유령'. 사진 CJ ENM Movie 페이스북.
1933년 백정기, 원삼창, 이강훈 의사의 상해 육삼정 의거와 흑색공포단을 모티브로 한 영화 '유령'. 사진 CJ ENM Movie 페이스북.

영화 ‘유령’의 배경은 1933년 경성, 이 영화의 말미 일제의 추적을 피해 지하로 숨어든 항일독립단체 ‘흑색단’의 한 사람이 말했듯 좁고 어둡고 답답하게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의 중간이었다. 일제의 강제 병탄으로부터 23년, 그 시기 청년들은 독립된 조국을 본 적이 없거나 인생 대부분을 식민지가 된 조국에서 살았다.

영화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유령’이 되었고, 누군가는 친일부역자 아버지가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이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 온 삶을 ‘유령’에 던졌다. 반면, 누군가는 조선인 어머니로 인해 자신의 피가 저주하며 더욱더 황국신민이 되려 앞장선다. 그리고 “대를 이어 독립운동을 해봐라. 조선은 결국 질 것”이라고 악다구니를 쓴다.

영화 ‘유령’ 속 항일조직 〈흑색단〉의 주요 거점인 황금관 영화관 장면에서 비가 내리는 거리부터 호텔, 대극장까지 전반의 분위기가 어둡고 쓸쓸하며 배우들의 표정은 생기가 사라진 채 처연하다. 스파이 색출의 팽팽한 긴장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화면 속에 늘어놓은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통해 시대 상황과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심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주요 줄거리는 조선에 부임하는 신임 조선총독에 대한 암살시도가 상해에서 실패했음에도 〈흑색단〉의 스파이요원인 ‘유령’들의 작전은 끝나지 않았고, 경호대장 사이토(박해수 분)는 〈흑색단〉이 조선총독부에 심어놓은 ‘유령’을 색출하려 한다. 그러나 서로 존재를 알지 못하는 유령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동지를 살려 탈출시킴으로써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 신임 총독 암살 작전을 성공시키려 한다.

조선총독부 내에 침투한 항일조직 '흑색단'의 요원 '유령'을 찾기 위한 작전 중. 사진 CJ ENM Movei 페이스북.
조선총독부 내에 침투한 항일조직 '흑색단'의 요원 '유령'을 찾기 위한 작전 중. 사진 CJ ENM Movei 페이스북.

해당 영화의 원작은 중국소설 ‘풍성’으로, 2009년 ‘바람의 소리’라는 제목으로 중국에서 영화화되었다. 하지만 영화‘유령’에 등장하는 사건은 실제 우리 독립운동사에서 모티브를 찾을 수 있다. 상해에서 실패한 암살사건은 윤봉길 의거, 이봉창 의거와 함께 해외 3대 의거로 손꼽히는 ‘상해 육삼정 의거’이다.

1933년 3월 17일 중국 상해의 요리집 육삼정에서 백정기, 원심창, 이강훈 등 아나키스트 독립운동가들이 주중일본공사 아리요시(有志明)와 일본군 수뇌들을 폭살하려다일본 첩자의 밀고로 실패했다.

의거를 주도한 원삼창 의사는 체포되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3년간 복역 후 해방을 맞아 풀려났으나, 백정기 의사는 무기징역을 언도받고 일본 장기감옥에서 복역 중 39세로 순국했다.

백정기 의사는 법정진술”에서 “우리가 너의 손에 잡힌 이상, 총살하든 교살하든 너희의 자유이다. 우리가 정당한 행동을 하다가 죽음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당당히 말했다.

백정기 의사 등이 참여한 항일구국연맹 산하 무력단체가 〈흑색공포단〉이었다. 이들은 일제의 요인을 암살하거나 기관을 파괴하는 일, 친일파를 처단하는 일을 했다. 검은 옷을 차려입고 일본 헌병과 경찰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종로경찰서 마당에 폭탄을 투척하기도 했다. 일본은 ‘검정 옷을 입은 공포의 대상’이란 뜻으로 〈흑색공포단〉이라 불렀다.

영화 '유령'의 모티브가 된 흑색공포단. 사진 CJ ENM Movie 페이스북.
영화 '유령'의 모티브가 된 흑색공포단. 사진 CJ ENM Movie 페이스북.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전쟁 책임을 부정하려는 일본 우익 학자들이나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뉴라이트 계열의 국내 학자들은 독립투사들의 항일 무력활동에 대해 테러라는 표현을 쓴다. 그것은 2001년 9.11테러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서 민간인을 희생시키는 잔혹한 테러리스트의 이미지를 독립운동가에게 덧씌우려는 속셈이다.

영화 ‘암살’에서 거사를 준비하며 “피치 못하면 민간인 죽여도 됩니까?”라는 질문에 약산 김원봉은 “안 된다”고 했고, 다시 “일본 민간인은 죽여도 됩니까?”라는 질문에 “모든 민간인은 죄가 없지. 총알에도 눈이 있다고 생각하자”라고 답한다.

이것이 영화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전 광복회 학술원장을 지낸 독립운동연구가 김병기 박사는 “독립투쟁은 일제 식민정책을 확산하는 군국주의자만을 표적으로 했다”라고 독립투쟁과 테러의 분명한 차이를 설명했다.

영화 ‘유령’에서 자신을 희생하려는 동지에게 “살아, 죽는 건 죽어야 할 때, 그때 죽어”라고 담담하게 건네는 말은 강한 울림이 있다. 또한, ‘유령’들을 색출하려 대극장에 조선인들을 모은 장면에서도 일제에 포로로 잡힌 황금관 극장의 극장주(김종수 분) 또한 “나서지 마라. 지금은 죽을 때가 아니다. 버텨”라고 외친다.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암울한 시대를 살아간 청년들은 그 어둡고 지난한 시대를 버텨 13년 후 광복을 맞이했다.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전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