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교육 접목해 홍익경제를 교육하고 싶습니다!”
“뇌교육 접목해 홍익경제를 교육하고 싶습니다!”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9.09.09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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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라이프 48편] 머니밸런스 코치 김정민 씨

“뇌교육명상은 제 삶을 온통 옭아매던 사슬을 풀고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나설 수 있게 해준 날개예요. 다른 사람의 호의와 꿈에 기대어 안정을 찾으려 하지 않고 제 스스로 제 삶을 책임질 수 있게 해주었죠.”

김정민(51) 씨는 라이프 플랜에 맞는 재무 설계를 해주는 생활경제상담사로 일하며, 두 아이를 키우는 한부모 가정의 가장이다. 그에게 건강과 함께 삶의 전환기를 맞은 이야기를 들었다.

경제교육과 인생설계 상담을 하는 김정민 씨는
경제교육과 인생설계 상담을 하는 김정민 씨는 "뇌교육명상은 제게 세상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도록 날개를 달아주었다."고 한다. [사진=강나리 기자]

“보험회사에서 일하면서 전문가답게 일하고 싶어서 재무설계사 자격을 갖추었어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상담을 하고 싶었죠. 일하면서 급여는 높은데 항상 허덕였고, 중도 해지하는 고객을 보면서 제 상담이 과연 답일지 의문이 들더군요. 그때 경제교육을 하는 사회적 기업에서 교육을 받고서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가졌죠. 돈에 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삶을 설계하는 경제 교육을 하고 싶었습니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과 ‘경제교육협동조합’을 만들어 서울에서 생활경제상담사로 강사활동을 하는 동안 두 아이는 전북 정읍에 사는 친정어머니가 돌봐주었다. 격주로 서울과 정읍을 오가며 아이들과 만나던 그는 2016년과 2017년까지 세 번의 교통사고 피해를 입었다. 목과 허리 등 온 몸이 충격으로 틀어져 사고후유증에 시달렸다. 1년 넘게 휴직을 하다 보니 경제적으로도 힘들고 무기력한 상태가 되었다.

정민 씨는 정읍으로 내려왔고, 군산으로 발령받아 생활경제 상담과 직업상담을 하면서 단월드 군산센터에서 건강을 돌보기 시작했다. “단월드에 와보니 모든 게 인연 같았어요. 그간 돈 중심의 설계가 아니라 삶을 중심으로 한 경제 교육과 환경을 위한 소비를 계몽했는데, 단월드의 뇌교육지도자나 회원들은 이미 실천을 하고 있더군요. ‘지구시민 1달러의 깨달음’이라고 지구시민운동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경제에 대한 신념을 가지고 활동하고 있었어요.

또 제가 강의 때마다 앞으로 100세 플랜을 기준으로 인생이모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는데, 뇌교육 창시자인 이승헌 총장님(글로벌사이버대학교)은 ‘나는 120세까지 살기로 했다’라는 책을 통해 방안을 제시했더군요. 무엇보다 저와 말이 통하는 사람을 정말 만나고 싶었는데 소원을 이뤘죠.”

뇌교육명상과 기체조를 하면서 통증에서 벗어난 그는 심성교육에 참가했다. “교육 중 명상을 하면서 ‘너는 너를 사랑한 적이 있니?’라는 메시지가 비수처럼 가슴에 꽂혔어요. 살아오면서 항상 죄책감과 수치심 속에 제 자신을 힐난하고 질책했거든요. 오열을 했죠.”

1년 동안 세번의 교통사고 피해를 입은 김정민 씨는 뇌교육명상으로 건강과 함께 삶의 전환기를 맞았다. [사진=강나리 기자]
1년 동안 세번의 교통사고 피해를 입은 김정민 씨는 뇌교육명상으로 건강과 함께 삶의 전환기를 맞았다. [사진=강나리 기자]

그는 면사무소 공무원인 아버지와 살림꾼인 어머니사이에서 5남매 중 맏딸이었다. 안정된 생활이었고, 공부도 꽤 잘하는 착한 딸이었다. 공부를 할 때나 친구들과 놀러가도 늘 등에 동생을 업고 있었다. 어린 시절 그가 부모님께 듣던 말 중 뇌리에 남은 건 ‘하찮은 가시내’라는 말이었다.

“남동생이 물을 마시러 가기에 ‘나도’라고 했더니, 어머니가 ‘하찮은 가시내가 앉아서 아들 심부름 시킨다’고 혼을 내셨죠. 아버지도 그 말을 자주하셨고요. 그 시절에는 여자아이들이 많이 듣던 말이기에 인식하지 못했는데 저한테 많은 영향을 끼진 것을 명상을 통해 알게 되었죠. 부모님이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아들, 딸 구분 없이 교육을 시키셨어요. 어머니는 어릴 적 오빠 뒷바라지 때문에 공부를 하고 싶어도 못했던 한이 있었죠.”

정민 씨가 중학교 2학년이었을 때, 아버지가 개인사업을 시작하면서 가족들이 전주로 이사를 갔다. 당시 전주시내 중학교에 자리가 없어 그는 1년 간 친척집에서 홀로 지냈다. “주말에는 전주 집에 갔는데 언젠가는 말없이 이사를 가서 그냥 돌아온 적도 있었죠. 당시에는 아무렇지 않은 줄 알았는데 많이 외로웠나 봐요. 눈치도 많이 보고요. 살림을 할 줄 모르니 생 라면만 먹다가 살은 찌고 자존감은 많이 떨어졌어요.”

쾌활하던 성격도 변했다. 외롭게 사춘기를 지나던 그는 의지가 되어주던 고향 오빠와 대학 재학 중 결혼하여 연년생으로 아이를 낳았다. 어린 나이에 준비되지 않았던 그는 산후우울증을 겪었고,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과의 관계가 벌어졌고 가난에 대한 자격지심이 있던 남편은 폭력을 휘둘렀다. 그는 이혼을 하고 싶었지만 친정어머니는 ‘네가 선택한 거다. 안 된다’며 한사코 만류했다. 그는 누구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절망에 휩싸였다.

아버지는 건설업을 하면서 사위에게 회계를 맡겼는데, 남편이 문제를 일으켜 사업이 부도를 겪었다. 아버지는 홧병으로 고생하다 간암으로 일찍 돌아가셨다. “제 선택으로 인해 친정이 무너지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죄의식과 남편에 대한 원망이 깊었죠. 그럼에도 아버지는 유언으로 같이 살라고 하셨지만, 이미 신뢰관계까지 무너진 결혼생활을 유지하기 힘들었어요.” 힘겹게 결혼을 마감하며 아이들의 친권을 넘겨주어야 했다. 그에게는 큰 상처였고, 아이들을 키우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남았다.

도망치듯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갔다. 그곳에서 한국인 유학생을 만났고, 현지에서 사업을 하겠다는 그의 꿈에 기대어 안정을 찾고자 했다. 뜻밖에 교통사고를 낸 그로 인해 국내에 들어와 결혼하고 두 아이가 태어났다. 10년 간 지내오며 신뢰관계가 무너지고, 더 이상 수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혼 후 두 아이를 혼자 맡았다. 이 과정들이 그에게는 또다시 상처와 수치심, 죄의식으로 남았던 것이다.

김정민 씨는 “심성교육에서 실컷 쏟아내고 나니까 무기력에서 벗어나 정말 살고 싶다는 의욕이 샘솟더군요. 교육을 마치고 태어나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죠.”

김정민 씨는 대외적으로 머니밸런스 코치로 활동하며, 매일 저녁 단월드 군산센터에서 회원들의 건강을 돌보는 지도사범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김정민 씨는 대외적으로 머니밸런스 코치로 활동하며, 매일 저녁 단월드 군산센터에서 회원들의 건강을 돌보는 지도사범으로 활동하고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그는 곧장 뇌교육 전문과정인 마스터힐러 과정을 밟으며 삶의 변화를 시작했다. “교육 과정에서 제 감정의 뿌리를 보게 되었죠. 아버지가 사업을 시작한 이후로 집안은 부유와 빈곤이 오가며 혼돈상태였어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듯 했죠. 저는 외롭고 불안해서 항상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다른 사람을 통해 어떻게든 안정을 찾으려 했다는 걸 알게 되었죠. 문제가 생기면 솔직히 ‘나를 사랑해 줘’라고 말도 못하고 ‘너 없이도 잘 살 거야’라며 자만심을 부렸죠.

모든 문제가 상대의 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것이 제 선택이었고 제가 만든 세상이었다는 걸 인정했어요. 그들도 저와 살면서 힘들었을 것이라는 인식에 용서를 구하게 되더군요. 그리고 제 자신을 믿고 사랑하는 자존감이 높아졌죠. 제 삶을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생겼습니다. 뇌교육명상을 하면서 건강은 물론이고 제 마음의 힘, 심력도 커진 것이죠.”

정민 씨는 “마스터힐러 과정이 제게 날개를 달아 주었어요. 항상 제 발목을 잡고 있던 상처와 감정들을 벗을 수 있었어요. 주변에서 ‘넌 충분히 괜찮아. 왜 앞으로 나가지 못하니?’라고 해도 늘 숨고 싶었거든요. 생활경제상담을 할 때 영상촬영이나 라디오 방송 제안이 와도 다 거절했어요. 누가 나를 알아볼까봐 부끄러웠던 거죠.”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변화시켜준 뇌교육의 전문가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현재 저녁에 단월드 군산센터에서 지도사범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또한 사람들에게 건강을 전하기 위해 국학기공강사로서 군산보건소에서 운영하는 경로당 어르신 건강교실을 하고 있고, BHP명상봉사단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정민 씨가 활력을 찾고 살도 빠지면서 밝아지자 주변에서 큰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동생들과 지인들이 뇌교육명상을 시작했죠. 딸과 아들에게도 저와 같은 경험을 주고 싶어서 권했죠.”

딸은 뮤지컬을 하고 싶어 재수를 거듭하며 대학에 들어갔다. 막상 대학에서는 학점을 따고 장학금을 받기 위해 원하던 노래를 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오디션 등 무대에 서면 주눅이 들어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딸이 마스터힐러 교육을 받으면서 기가 죽어 움츠렸던 것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뇌교육지도자 과정에 도전했다.

최근 딸은 뇌교육을 활용한 브레인아트 공연팀 ‘천신무예단’의 보컬트레이너로서 꿈을 마음껏 펼치고 있다. 아들도 마스터힐러 과정을 마치고 벤자민 갭이어로 다양한 프로젝트로 경험을 쌓으며 인생 방향을 찾아가고 있다. 또한 천신무예단의 일원으로 활동한다.

김정민 씨는
김정민 씨는 "뇌교육의 기반인 홍익철학과 뇌교육명상 건강법, 경제교육을 접목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나가고 싶다."는 꿈을 향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있다. [사진=강나리 기자]

김정민 씨는 현재 경제교육협동조합과 서울시복지재단 금융복지강사로서 한부모 가정 등 취약계층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경제상담을 하면서 ‘머니 밸런스 코치’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자 한다.

“가정에서도 돈 문제로 인한 갈등이 많습니다. 소비나 저축에 대한 생각과 성향이 다른데 서로 비난하고 부딪히는 경우가 많죠. 돈이라는 숫자 이면에 감정이 있고, 감정은 뇌가 컨트롤하죠. 뇌교육은 자신을 보는 힘을 키웁니다. 그리고 자신을 변화시킬 의지와 공감하는 힘도 키워주죠. 뇌교육의 원리인 공전과 자전, 구심과 원심, 공평과 평등을 생활경제교육에 접목하고 싶습니다.”

김정민 씨는 강의 때 개와 개벼룩의 예화로 많이 쓴다고 한다. “개벼룩이 지나치게 착취하면 결국 개는 죽게 되고, 개벼룩도 죽거나 다른 숙주를 찾아야 하죠. 지금처럼 사익私益추구를 최고로 삼으면 결국 모두 공멸하는 길로 가잖아요. 또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투자하느라 현재의 삶과 행복을 포기하고 피폐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죠. 예를 들면 노후에 건강걱정으로 보험을 드는 것도 필요하지만, 자연치유력을 기르는 데 예방적으로 사용하는 게 더욱 중요하죠.

그래서 소비를 하더라도 환경을 생각하는 소비, 공존하고 홍익하는 소비, 그리고 상생경제를 교육하고 싶어요. 뇌교육의 기반인 홍익철학과 뇌교육명상 건강법, 경제교육을 접목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나가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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