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쓰였으면 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만드는 데 쓰였으면 합니다”
  • 신미조 기자
  • mjshin05@naver.com
  • 승인 2018.11.06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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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학발전 위해 임야 기부한 동해시 국학원장 김기홍 씨

망상해수욕장과 동해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동해시에 7,600평 임야를 가진 김기홍 씨(74세)는 국학의 발전과 홍익정신을 알리는 데 써달라며 그 땅을 기부했다. 국가유공자의 후손이자 국학기공 강사로서 항상 올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해 온 그는 홍익의 큰 뜻을 위해 기부한 땅이 쓰이기를 바랐다.

김기홍 씨는 강원도가 고향이다. 영서에서 영동으로 옮겨와 살았을 뿐 평생을 강원도에서 살았다. 15년간 직장생활을 하고, 그 후에 20년간 개인운수업을 하면서 성실한 삶을 살았다. 긴 고생 끝에 그는 아파트를 마련하고 고급 차종의 택시도 마련하였다. 그렇게 50대 후반에 맞이한 기쁨도 잠시였다. 허리디스크 재발로 오른쪽 다리가 저려서 액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를 밟기 힘들고, 팔을 뒤로 젖힐 수가 없어 손님에게 거스름돈을 줄 수 없었다. 주위 누구에게도 말을 못 하고, 고된 삶을 그만두고 싶어 가까운 두타산 무릉계곡의 바위에도 올랐었다.

김기홍 강원도 동해시국학원장이 국학발전을 위해 기증한 임야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기홍 강원도 동해시국학원장이 국학발전을 위해 기증한 임야를 둘러보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어떻게 몸을 되살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운동할 곳을 찾다가 우연히 단월드 동해센터 간판을 보았다. 2003년 3월 31일이었다. “여기가 운동하는 곳이냐?”고 묻자, 밝은 얼굴로 원장이 반겨주었다. 바로 다음 날부터 수련을 시작했다. 첫날에 기체조를 마친 뒤 누워서 호흡을 가다듬고 팔과 다리를 올려, 손목과 발목, 무릎을 90도 각도를 유지한 채 들고 있는 와공연단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관절 부위가 칼로 찌르는 듯이 아팠다. 아무도 다리를 내리지 않는데 혼자 내릴 수가 없어 입을 악물고 참았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이르자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내가 울려고 여기에 왔나 보다. 그동안 많이 울고 싶었나 보다. 내가 내 몸을 정말 함부로 하고 살았구나.’ 그동안 삶 속에서 자신을 돌보지 않고 살아온 데 대한 미안함과 반성이 눈물과 함께 물밀 듯이 몰려왔다.

3개월간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두 번 센터에 나가 수련을 한 덕분에 몸은 빠르게 회복되기 시작했고 6개월쯤 지나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몸이 건강해지고 마음이 행복해지니까 절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어졌다. ‘내가 아파봤으니, 아픈 사람의 마음은 내가 잘 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내가 받은 도움을 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년째 되는 2004년 4월 1일에 새벽에 종합운동장으로 나갔다. 첫날은 혼자 국학기공, 기체조를 하면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권하다가, 다음날은 아내와 자녀들과 모두 함께하니까, 아침 운동을 하러 나온 사람들이 궁금해 하며 모여 들었다. 그날 체육회 직원으로부터 수련지도하기 좋은 자리까지 추천을 받았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삼척 하장면의 한 보건소로부터 국학기공 수련지도를 부탁받았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여성회관 수련지도를 하고, 태백과 도계, 멀리 경북 울진까지 출장 지도를 나갔다. 20년 운전을 한 경력 덕분에 장거리를 오가며 수련지도를 하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고, 수련으로 몸이 좋아지고 마음이 행복해진 사람들을 떠올리면, 운전하면서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강원도와 경북을 오가며 국학기공 강사로 열심히 활동을 하다 보니, 동해시에 소홀한 것 같아서 다시 2006년부터 동해시보건소에서 3년간 수련지도를 하고, 동해 공설운동장에서 300~500명이 모인 시민 워킹을 지도하기도 했다. 워킹 전문강사보다 국학기공 강사인 그의 장생보법 지도가 더 인기가 있었다.

동해시 발한공원  국학기공 수련장. 김기홍 동해시국학원장이  발한공원에서 국학기공을 지도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동해시 발한공원 국학기공 수련장. 김기홍 동해시국학원장이 발한공원에서 국학기공을 지도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열심히 한 덕분에 동해시 국학기공협회 회장이 되었고, 동해시 국학기공대회를 열고, 강원도대회와 전국대회에 참가하며 도민의 건강과 국학기공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 동해시 국학기공협회 회장으로서 공로와 국학기공 강사로서 성실한 활동을 인정받아, 2013년에 강원도 국학기공협회 회장이 되었다. 2016년말까지 4년간 강원도를 대표하는 회장으로서 강원도는 물론 전국을 누비며 열성적인 활동을 펼쳤다. 꿈에서 예쁜 밤톨을 본 다음날 선물 받아, ‘홍율(홍익의 밤톨)’이라고 이름붙인 자가용은 9년 동안 20만 km를 그를 태워 함께 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병환을 얻어, 모든 활동을 접고 아내를 돌보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2016년 말에 성대하게 강원도지사기 국학기공대회를 주최하고 도 회장직을 내려놓았다. 그는 동해시 국학원장으로서 홍익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내와 집안을 돌보는 일에도 성심을 다해 가족과 친지로부터 마음을 얻었다. 힘든 아내에게 기운을 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서 김기홍 씨는 자신을 힐링해야 했다.

그래서 하루에 두 시간씩 할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산을 다니기 시작했다. 산은 그에게 위로가 되었지만, 동시에 보살핌도 필요로 했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을 넝쿨나무가 뿌리와 줄기를 칭칭 감아 고사시키고 있었다. 그는 두고 볼 수가 없어 맨손으로 넝쿨나무를 떼어내고 뿌리를 뽑아내며 소나무 살리기에 열중했다. 그리고 주변에 널린 쓰레기를 치우기 시작했다. 폭포 위에 너른 반석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반석 위에 앉아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솔 내음 속에서 힐링과 위안을 받았다. 그러면서 산에 대한 정이 더욱 쌓여갔다. 어릴 때 땔감 나무를 하러 다니던 산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잠든 마음의 고향이 되었고, 어느덧 자연과 더불어 깊은 명상과 수행을 할 수 있는 영혼의 위안처가 되었다. 그렇게 6개월을 정성 들여 산을 정비하고 나니 아내도 조금씩 좋아지고 집안일 등 새로운 생활에도 적응이 되었다.

문득 김기홍 씨는 2006년에 캐나다 명상여행을 갔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이승헌 총장이 지구시민운동을 위해 ‘얼스빌리지’를 만들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캐나다를 자주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홍익정신을 알리고 좋은 세상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전에 천안시의 국학원에 있는 단군산 120계단을 오르면서, ‘내가 가꾼 산도 아름다운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건강과 행복과 깨달음을 얻는 장소로 쓰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김기홍 동해시국학원장이 기부증서를 들고 강원도국학원 전현선 국학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김기홍 동해시국학원장이 기부증서를 들고 강원도국학원 전현선 국학원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경아 기자]

 올해 강원도에 부임한 전현선 국학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10년 만에 오고 싶었던 강원도에 드디어 오게 되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들었을 때, 김기홍 씨는 ‘저분은 서울에서 강원도가 좋아서 왔다는데, 나는 강원도를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깊은 명상수련을 하던 중에 손수 정성을 들여 가꾼 곳이 많은 사람에게 ‘힐링의 명소’가 되기를 바라는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고 기부를 결정하였다.

김기홍 씨는 선천 60년은 가족을 위해 정말 열심히 쉬지 않고 살았고, 후천 60년은 잃어버린 건강을 단학과 뇌교육으로 회복하면서 홍익정신과 국학기공 지도자로서 정말 행복한 생을 살고 있다. 그는 요즘도 새벽 5시 30분에 묵호 앞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발한공원으로 간다. 그 곳에서 12년째 수련지도를 하고 있다. 앞으로 80세까지는 공원수련 지도를 거뜬히 할 자신이 있고, 90세까지 해 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그는 홍익인간으로서 성장하고 완성하는 ‘120세의 꿈’을 갖고 있다.

이산가족이라 통일에 대한 열망도 남다르다. 남북통일이 되면 백두산 천지에 가서 국학기공을 알리는 게 그의 소원이다. 요즘 남북관계가 좋아지고 있어서 더 힘이 난다. 평생을 정성 들여 가꾼 산을 바라보는 그의 마음에도, 시원하게 펼쳐진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에도 홍익의 꽃은 아름답게 피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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