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는 결코 부모의 물건이 되려고 생겨 나오는 것도 아니고, 어느 기성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그네는 훌륭한 한 사람으로 태어나오는 것이고, 저는 저대로 독특한 한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이는 소파 방정환 선생의 말이다.

대일항쟁기 국권을 잃고 일제의 강탈 속에 척박한 이 땅에서 조선의 아이들은 ‘애놈’ ‘애 녀석’이라 불렸다. 전쟁이나 기아 등 환경이 열악할 때 가장 소외되고 무시되는 것이 아동과 여성이다 보니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당시 장유유서를 중시하는 유교적 풍토가 왜곡되어 아동을 성인의 축소물이나 전유물로 본 것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소파 방정환 선생.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그런 시대상황 속에서 방정환 선생은 아동을 ‘어린이’로 부르고, ‘어린이에게 존댓말 쓰기 운동’을 했다. 그에 의해 1922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탄생한 ‘어린이 날’은 세계적인 어린이 인권운동의 시초로써, ‘제네바 아동권리선언’(1924) 보다도 2년이나 앞서 제정되었다.

그는 아동을 개성과 인격, 그리고 존엄성을 지닌 ‘독특한 존재’이며 ‘독립된 인격체’로 보고, 어린이를 ‘한결 더 새로운 시대의 새 인물’이라 여겼다. 방 선생은 어린이를 하늘로 보고 우리나라가 독립할 수 있는 희망을 어린이에게서 찾았다. 그가 쓴 동화와 글들 속에서 시대를 앞선 그의 철학이 엿보인다.

본래 우리나라의 전통 육아법에서 아이는 하늘‧땅‧사람을 담은 소우주이다. 밝은 마음을 깨우쳐 세상을 밝히고 소명을 다하면 하늘로 돌아가는 존재였다. 누구나 알고 있는 잼잼, 건지곤지, 깍꿍, 짝작꿍 놀이 속에도 선조들은 아이를 소중히 여기며, 밝고 환한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소망을 담았다.

또한 우리말에서는 성장단계를 내면적 성숙을 뜻하는 얼의 성장으로 이야기한다. 어린이, 어른, 어르신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어린이는 아직 얼이 작고 어린 사람이다. 아직 철이 없어 자기 위주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된다. 다른 사람을 고려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 감정을 우선시한다.

그 어린이가 성장하면서 철이 들고 어른이 된다. 얼이 큰 사람, 얼이 든 사람이다. 자신의 일을 스스로 책임지고, 주위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사람이 어른이다. 그리고 완성기에는 자연과 생명의 이치를 두루 통찰하는 지혜가 신처럼 밝은 사람, 즉 어르신이 된다.

우리 문화에서는 신체의 성장이 아니라 얼을 중심으로 사람의 생애 주기를 판단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린이를 어르신으로 키우고 있을까?

개벽사 폐간당시 방정환 선생.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개벽사 폐간당시 방정환 선생. [사진=국가보훈처 제공]

방정환 선생의 말씀 중 어린이는 부모의 물건이 되거나 기성사회의 주문품이 되려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 주목된다. 대한민국은 급격한 발전과정 속에서 경쟁이 일상화 되었다. ‘공부 열심히 해라’ ‘남에게 뒤처지면 안된다’ ‘이겨야 한다’며 친구를 경쟁상대로 보라고 재촉하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또한 유아교육부터 유학, 대학, 직장까지 부모가 꼼꼼하게 설계한 성공의 틀에 아이를 맞추려는 모습도 본다. 그 결과가 “우리는 결코 행복하지 않아요.”라고 외치는 아이들의 목소리로 돌아온다.

2018년 5월 5일, 오늘은 어린이의 날이다. 아이들은 손꼽아 소망했던 선물을 기대하고 부모는 무리를 해서라도 아이가 원하는 선물을 전하고 싶은 날이기도 하다. 이날 우리는 아이가 어떻게 하면 진정으로 행복하고,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을지 한번 돌아보고, 뜻을 모아 새로운 선택을 하는 날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