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완도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던 황제익(19)군이 진로를 바꾼 건 2014년 인성캠프에 참가하고 나서였다. 학교를 쉬고 1년간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다니기로 했다. 캠프 내용이 지금까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었다. 이 같은 선택을 하는 데는 아버지의 권유가 힘이 되었다. 아버지는 성인이 되기 전에 1년 동안 남들과 다르지만, 자기 스스로 계획해 가면서 자기만의 길을 찾으라고 벤자민인성영재학교를 권유했다.
제익 군은 학교에 다녔지만 공부를 왜 하는지 몰랐고, 목표하는 대학도 이루고 싶은 꿈도 없었다. 제익 군은 이렇게 말한다. “공부는 중상위권에 있었지만, 대학에 맞춰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친구들 따라서 공부했어요. 제가 좋아하는 것,  잘하는 분야 쪽으로.”

▲ 황제익 군(사진 가운데)이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광주학습관 학생들과 독거노인돕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광주학습관>

제익 군은 벤자민인성영재학교 입학 전에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었다. 주위 일에는 물론 심지어 자기 자신에게도 관심이 그다지 없었다. 그래서 뭐든지 대충대충 하게 되었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3월에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입학한 제익 군은 광주에 와서 혼자 자취생활을 생활을 했다. 완도에서는 할 일이 많지 않고, 스스로 성장하는 데 더딜 것 같아 광주로 옮긴 것이었다. 처음부터 제익 군이 원한 것은 아니었다. 아버지가 권유한 것이었다. 밥을 해본 적이 없던 제익 군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밥하는 것도 힘들 텐데….” 그런데 아버지는 “그게 뭐가 대수냐”며 용기를 내라고 하셨다.
혼자서 자취 생활을 하니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
“자취하는 재미는 잘 모르겠는데, 일단 제가 먹을 음식을 직접 해서 챙겨 먹는다는 게 나에 대한 책임감을 갖게 해준 것 같아 초반에는 밥해 먹을 때마다 뿌듯 했어요.”


광주에는 친척 말고는 친구가 없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광주학습관에서 친해진 친구들은 집이 너무 멀어서 일주일에 두세 번 정도밖에 만나지 못했다. 자취방에서 혼자 있다 보면 외로웠다. 가족과 떨어져 있어서 외롭고 같이 놀던 친구들도 자주 못 만나게 되니 우울해졌다. 처음에는 가만히 누어서 천장만 바라보았다. 이런 생활에 어느 순간 익숙해져서 다른 취미를 찾았다. 바로 독서와 운동을 하면서 복잡해진 머리를 비우고 새로운 사실을 집어넣는 일이었다. 아르바이트를 가기 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아르바이트가 끝나고는 전남대운동장을 1시간씩 걸었다. 생각도 정리할 겸 시작한 운동이 건강에도 꽤 도움이 되었다.
“초반에는 철학 관련된 책이나 탈무드를 인상 깊게 봤구요. 지금은 나무나 식물에 관련된 책을 보고 있어요.”
인상 깊게 보았던 책 내용은 노트에 적기도 하고 휴대전화에 메모를 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었는데 도서관을 꾸준히 다니다 보니까 지식도 깊어지는 것 같고 생각도 깊어졌다. 새로운 지식과 생각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도 하게 됐다. 책을 자주 읽다 보니 생각하는 힘이 길러졌고 그럴 때마다 제익 군은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되었다.
“지금도 물론 슬럼프가 찾아오지만 이젠 더는 두렵지 않습니다.”
광주에서 혼자 자취를 시작하면서 하루 계획을 세우고 자기 전에 자아성찰을 했다. 자아성찰 하는 시간이 귀찮았지만 자주 하니 잘못과 발전 방향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바라보니 오랫동안 방치해서 심하게 망가진 제 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비틀어진 체형을 관리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돈의 소중함과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점점 알게 되더라고요. 열심히 일과 운동을 병행하면서 무력감과 무관심이 점차 사라지게 되었습 니다.”

▲ 황제익 군(사진 맨 오른쪽)이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광주학습관 학생들과 함께 8.15 광복절 행사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 제공=황제익>

아르바이트는 닭갈비음식점에서 세 달간 했다. 닭갈비음식점에서는 주중 아침부터 고등학생이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니까 이상하게 보았다. 하지만 아르바이트 하는 동안 제익 군을 잘 대해주었고 그만둘 때는 ‘다시 또 올거냐'고 물었다.
제익 군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부모님 생각을 많이 했다. 엄청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이 고작 몇십 만 원밖에 안 되어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벤자민프로젝트를 진행했다. 4월 세월호 1주기 때 ‘세월호를 잊지말자’는 의미로 ‘기억 팔찌’를 판매하고, 수익금을 독거노인들에게 기부했다. 그리고 광주동물보호소에 가서 유기견 봉사활동도 했다.
5월에는 학습관 친구 4명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총 5주에 걸쳐 광주지역에 있는 문화재 돌봄 자원봉사단체와 함께 문화재 돌봄봉사를 했다.
“문화재에 별로 관심이 없었는데 봉사하고 나니까 소중함을 알게 되고 앞으로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귀중한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 지난 11월 29일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광주학습관이 개최한 인성페스티벌에서 황제익 군이 기타연주를 하고 있다. <사진=정유철 기자 >

광복절에는 광주국학원이 개최한 광복절기념행사에 참가하여 유스퀘어공연장에서 공연을 했다. 광복 70주년 나라사랑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이후 미국 세도나 지구시민캠프와 유럽을 다녀와서 더 넓은 시야와 의식수준을 갖게 되었다.
11월 학습관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서 국토대장정을 다녀왔다. 많은 대학생들이 스펙 한줄 더 넣으려고 하는 국토대장정이 아닌 같은 학습관 학생 5명이 자발적으로 주최하고 노선을 정하고 어떻게든 끝까지 해결하는 모습을 보이며 서로에게 의지하는 국토대장정을 했다.

국토대장정을 한 뒤로는 제익 군은 예전처럼 감정 기복 곡선이 심하게 요동치는 일은 없어졌다고 한다. 16일간 6시간 가까이 걸으면서 내면을 바라보고 자기성찰을 하며 힘들어도 의지할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고 한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 다시 정리해보고 지금까지 도움주신 부모님께 친구들에게 선생님들에게 사람들에게 저 스스로 감사하다는 말을 했더니 아프던 다리와 어깨가 감사 표현할 때마다 아픔이 덜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11월 29일 광주학습관이 개최한 벤자민인성영재 페스티벌에서 제익 군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렀다. 중학교 3학년 때 인터넷으로 독학한 기타 연주 솜씨를 선보였다. 참석한 학생, 학부모의 박수와 환호가 무대를 울렸다.

▲ 황제익 군(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은 벤자민인성영재학교 광주학습관 학생들과 11월초 15박16일동안 서울에서 부산까지 걷어서 국토대장정을 했다. <사진=벤자민인성영재학교 광주학습관>

제익 군은 벤자민에 입학하여 어떻게 달라졌을까?
“음, 일단 저를 더 사랑하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 했던 일들을 하게 되어서 의식도 한층 더 넓어지게 된 것 같고 나눔의 기쁨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된 거 같아요.
벤자민인성영재학교에 입학하기 전 1기 선배가 벤자민 학생은 성장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는 벤자민 1년을 생애 가장 좋았던 1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원석을 깎아 보석의 본연의 아름다운 빛을 발하게 하는 곳입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나 조경사에 관심이 있는 제익 군은 관련 자격증 취득을 준비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