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구 단군성전 내 단군상(사진=윤한주 기자)

보이지 않았다. 단군성전의 안내판이 없다면 찾을 수 없었으리라. 그것은 호텔수성(옛 수성관광호텔)이 법이산 앞을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뒤편으로 난 오솔길을 돌아서 100m 정도 걸어가야 국조를 만날 수 있다. 마치 사찰에서 인도의 석가를 모신 대웅전이 중앙을 차지하고 한국의 산신각이나 삼성각은 뒤편으로 밀려난 모습처럼 비쳤다. 

대구는 250만 명이 살고 있는 광역시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대전이나 광주에 세워진 단군성전의 형편도 비슷했다. 오히려 소도시로 갈수록 성전의 규모가 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모두가 뿌리에 대한 시민인식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동안 대구노인회에서 관리했는데 지금은 단군성전 후원회인 '숭모회(崇慕會)' 등이 개인차원에서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김재하 회장은 건강이 좋지 않아서 만나지 못했다. 대신 이병권 총무의 안내를 받아 성전을 찾았다. 법이산에 자리한 성전의 양옆은 원방각기와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원방각은 천지인(天地人)을 나타낸다. 이는 옛 기록에서 찾을 수가 있다.
 
조선 초기의 문신 이맥(李陌, 1455~1528)은 단군시대 이전부터 고대시대에 이르는 《태백일사》를 저술했다. 이 책의 <삼신오제본기>에는 원방각의 유래가 나온다.
 
“삼한에 옛 풍속이 있는바 모두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지낸다. 땅에 제사지냄을 방구(方丘)라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사지냄은 각목(角木)이라 하나니, 산에 웅상(雄常)의 상(像)을 만듦은 모두 그 유법(遺法)이다. - 三韓古俗皆十月上旬國中大會築圓壇而祭天祭地則方丘祭先則角木山像雄常皆其遺法也”
 
이러한 형상은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에서 발견할 수 있다. 
 
▲ 대구 단군성전 내 단군상(사진=윤한주 기자)
  
계단을 오르고 성전의 문을 여니 인자한 얼굴의 단군상이 보였다. 마치 객지에 나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손자를 맞는 듯한 할아버지의 표정이랄까? 향을 피우고 김 총무와 참배하는 데 4번 절하라고 한다. 다시 내려와서 주위를 둘러보니 성전 오른쪽에 천막이 있었다. 
 
청곡 김대흥 씨가 거처하는 곳이다. 단군을 모셨던 박남수 할머니가 노환으로 병원에 가신 이후 김숙자 씨가 맡았는데, 그의 제자라는 것이 이 총무의 말이다. 난로를 앞에 두고 성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 - 기거한 지는 올 여름부터예요. 증조부(김정숙 옹)는 대종교 원로이고 독립운동가입니다. 마지막까지 단군학교를 지으려다가 돌아가셨어요. 어릴 때 할아버지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자랐습니다. 집이 근처입니다. 제가 놀던 곳이에요. 이 산은 어릴 때부터 길 하나 모를 곳이 없을 정도로 다 알아요. 
 
기자 -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방문했습니까?
 
김 - 1985년도였을 거예요. 그때는 앉을 자리가 없었어요. 줄 서서 봤으니깐.
 
기자 - 요즘은 어떻습니까?
 
김 -  법이산에 사진 찍기 좋은 전망대가 있습니다. 그곳 안내표지판에 단군성전이 나와요. 등산하던 중에 궁금해서 오기도 하고 하루에 5~6명 정도 됩니다. 다른 지역을 순회하다가 오시는 분도 있습니다. 여기 있으면 봉고차가 많이 와요. 교회 이름 붙인 차들이죠.
 
기자 - 어떻게 온 것이죠?
 
김 - 모르겠어요. 좋은 느낌은 아니죠. 동화사 불상 훼손사건으로 한참 난리가 났을 때와 비슷해요. 이곳은 멧돼지도 많아서 불도 환하게 켜야 해요. 밤에 저 멀리서 보면 캄캄합니다.
 
*지난 2012년 9월 40대 목사가 대구 동구 동화사에 침입해서 탱화에 낙서하고 불교용품인 청수그릇에 소변까지 본 일로 입건된 일이 있다.
 
기자 - 시에서 지원해줍니까?
 
김 - 음력 어천절(3월 15일)과 개천절(10월 3일)에 제례비로 500만 원을 받습니다. (시에서도)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하는 거죠. 시나 구청에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 이재권 총무가 단군성전을 가리키고 있다(사진=윤한주 기자)
 
기자 - 단체로 찾는 사람들은 없습니까?
 
김 - 작년에 한번 초등학교에서 온 적이 있고, 올해는 혜화여고에서 주임선생님과 한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기자 - 청소년에게 국조를 알릴 수 있으면 좋겠네요.
 
김 - 그것을 알리기 위해서 어떤 채널이 있어야하는 데 그게 관건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오면 처음에는 재밌죠. 안 듣던 이야기를 들으니깐. 그런데 뭔가 또 오고 싶도록 만드는 콘텐츠가 있어야 해요. 작년에 음악회도 했습니다. 예술단을 1년 동안 준비해서 내년부터 성전을 위해 공연을 하려는데 재정적으로 힘들어요.
 
기자 - 앞으로의 발전계획은 어떤가요?
 
이 총무 - 차츰차츰 만들어야죠. 시간도 됐는데 일어납시다.
 
걸어서 내려가는데 지난 개천절 현수막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이 총무는 대구국학원에서 후원해줘서 걸게 됐다고 한다. 현수막도 후원을 받아야 걸 수 있는 만큼 열악한 것이 오늘날 대구 단군성전의 모습이었다. 광복 이후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자 헌금운동을 벌였던 대구의 유지들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의 성전을 어떻게 생각할지? 구름이 잔뜩 낀 하늘을 보면서 다시 역사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일제의 침탈에 맞서 조국을 구했던 대구의 독립운동가들을 만나보기로 한다. 이들의 정신에서 단군을 찾을 수 있으리라.
 
■ 대구 단군성전 찾아가는 방법
대구 수성구 두산동 (바로가기 클릭)
 
성전은 가려면 호텔수성(옛 수성관광호텔)을 찾는 것이 빠르다. 자동차로는 동대구 IC에서 두산오거리 방향으로 12km로 35분이 걸린다. 시내버스는 동대구역에서 814번, 401번이고 동대구고속버스터미널에서 909번 타고 신천치안센타에서 401번으로 갈아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