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검은사제들>을 보면 구마(驅魔)의식이 나옵니다. 우리나라 무당도 쫓아내지 못한 악령을 신부과 가톨릭대학생이 해결합니다. 영화를 신부가 아니라 악령의 입장으로 보면 어떨까 생각해봤습니다. 전후 상황은 모르더라도 저는 악령이 최후에 내뱉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밉다는 것이죠. 그것은 꼭 악령이 아니라 사람도 합니다. 증오에 가득한 말을 하면 뱀도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악령은 미움의 결정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국의 귀신들도 대개 원한에 사무친 존재들이 많습니다. 그들을 수많은 종교의식으로 쫓아낸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인간의 미움이 없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근 프랑스 파리 테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슬퍼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깊은 애도를 보냅니다. 하지만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보복과 전쟁이 있었지만 테러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이) 4조 달러 이상을 쓰면서 대테러 전쟁을 한 결과 테러는 지구상에 소멸되기는커녕 9.11테러 이전보다 정확히 10배 이상 늘어났다”라며 “인류가 이 시점에서 잔악무도한 이 반인륜적인 조직을 제거하기 위한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라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인식의 전환이라고 봅니다. 미국의 실패는 테러리스트를 악마(Devil)로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선과 악, 기독교와 이슬람교 등 이분법적인 사고가 미국 사회를 지배합니다. 오죽하면 미국으로 가던 한 인도인이 테러리스트로 의심 받아 공항에 억류하는 사건을 그린 영화 “내 이름은 칸(My name is Khan, 2009)”이 제작됐으니깐 요. 주인공의 성인 칸(Khan)이 모슬렘 성이라는 이유였다는 것이 억류 배경이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테러 발생 후 보스턴과 시애틀에서 미국인을 대상으로 열린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의 강연회가 주목됩니다. 이 총장은 “미국인들은 테러범들을 악마라고 표현하고 있다. 천사와 악마의 실체는 우리 뇌 속에 들어있는 정보”라며 “테러의 주체는 테러리스트 개인이 아니라 집단이기주의에 나온 정보이다. 국가, 민족, 종교의 이익을 위해서 사람들이 폭력을 사용하도록 정당화하고 부추기는 일부 기득권의 욕망”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총장은 “국가와 종교의 한계를 넘어 최고의 중심가치는 지구이다. 지구를 중심으로 우리의 정보를 재배열할 때 인류는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저는 프랑스의 톨레랑스(관용:Tolerance)를 말하고 싶습니다. 나의 생각과 신념이 중요한 만큼 타인의 것 역시 똑같이 소중함으로 존중하라는 뜻입니다. 이는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하라는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정신과 같습니다. 이를 실천한 사례가 있습니다. 얼마 전 프랑스 파리 시내의 한 광장에서 이슬람인이라고 밝힌 한 남자가 눈을 가린 채 서 있었습니다. 그는 “이슬람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며 “테러리스트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시민들이 다가와서 그를 포옹했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시민도 있었습니다. 이러한 내용을 지난 17일 KBS 9시 뉴스로 지켜보면서 국가와 종교를 넘는 인류애(人類愛)가 살아있음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이 땅에 폭력과 전쟁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일 것입니다. 인류를 죽이는 힘이 아니라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프랑스인들의 눈물과 포옹이 제 가슴을 적셨듯이 말입니다. 그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후손에게 물려줄 최고의 정신적 자산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