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사도 포스터

현대판 <뒤주>가 유행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난해 강남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던 ‘스터디룸’이 그것입니다. 가로 1.1m, 세로 0.8m, 높이 2.1m로 중고생 한 명이 들어가면 딱 맞는 부스입니다. 200만원이 넘는 가격임에도 아이의 집중력을 높일 수 있다는 이유로 화제가 됐다고 합니다. 아이를 감금하는 현대판 사도세자 뒤주인 셈이죠. 최근 뒤주에 갇혀서 죽은 비운의 왕세자(유아인)을 그린 <사도(思悼)>가 600만 관객을 돌파하면서 회자되고 있는 것입니다.

JTBC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강남 엄마들은 자녀의 성적이 오를 수 있다면 뒤주라도 넣겠다는 발언이 전해졌습니다. 비단 강남 엄마들만 한정된 이야기일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스스로에게서 가치를 찾지 않습니다. 아이의 성공 여부가 어머니의 존재가치로 재단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회풍토라고 지적한 여성학자 박혜란 이사장(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의 말이 대표적입니다.
  
영화 <사도>는 내용보다 영조(송강호)의 대사가 압권입니다.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너는 왜 공부를 안 하니!" 라는 말은 지금 부모들이 하는 말과 크게 다르지가 않습니다. 영조는 아들이 공부하지 않고 강아지 그림이나 그리고 밖에서 노는 모습이 못 마땅합니다. 심지어 “너는 존재 자체가 역모다!” 라는 말은 아버지의 못질이 뒤주가 아니라 아들의 가슴을 향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 영화 인턴 포스터
 
반면 영화 <인턴>은 어떻습니까? 30세 여성 CEO 줄스(앤 해서웨이)의 회사에서 인턴으로 근무하는 70세의 벤(로버트 드 니로)은 자식뻘 되는 상사와 소통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의 무기는 과거의 경력이 아니라 눈물을 닦으라고 손수건을 건네는 배려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장년층이 많이 볼 것으로 생각했던 영화의 주관객은 2030세대가 74.3%에 달했다는 조사가 나왔습니다.(CGV리서치센터 10월 6일) 이들은 세대갈등의 문제를 <사도>에서 발견하고 해법은 <인턴>에서 찾는다고 합니다.
 
두 영화는 어른세대와 자녀세대의 소통법에서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만일 <인턴>에 한국 어르신이 주인공으로 출연했다면 “내가 옛날에 부사장을 해 봤는데”라며 일장연설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누구라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벤(로버트 드니로)은 다릅니다. 말하기보다 듣기에 주력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안내합니다. 회사 내 마사지사 피오나(러네이 루소)가 직원들의 몸을 힐링해 준다면 벤은 직원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준다고나 할까요? 누구나 환영할만한 멘토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입니다. 한국에서 벤과 같은 어른을 만나기는 어렵습니다. 또 멘토라고 부르고 싶은 부모도 더더욱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체면문화’ 때문입니다. 자기 수준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과 비교하는 것입니다. 강남 엄마들도 다른 엄마들과의 비교 때문에 아이를 현대판 뒤주에 가두지 않았을까요? 
 
이들에게 청년모험가 이동진 멘토의 강연을 듣고 국토대장정에 떠난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의 학생들은 딴 나라의 이야기로 들리지 모르겠습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는 훈련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을 응원하는 부모들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를 발견하고 꿈을 만들어가는 스토리는 그 자체가 뉴스입니다. 현대판 뒤주에 갇힌 아이는 입시경쟁의 비극이고 지구를 무대로 달려가는 아이는 대안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물론 선택은 부모와 자녀에게 달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