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원 광한루원 춘향사당(사진=남원문화원)

서양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있다면 한국에는 춘향전(春香傳)이 있다. 지금까지 만화, 연극, 영화 등 많은 작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원 소스 멀티 유즈(One Source Multi Use :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판매해 부가가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의 고전이 아닐 수가 없다.

남원 광한루원에는 춘향관과 함께 춘향이가 살던 집을 재현해 놓았다. 러브스토리의 주인공이 되고 싶은 관람객들은 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다. 주말에 방문한다면 공연도 볼 수 있다. 5월 9일부터 10월 24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광한루원 수상무대에서 펼쳐지는 '광한루연가Ⅲ 열녀춘향'이 그것이다.

이렇게 춘향은 우리 곁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그녀의 이야기가 단군사화의 웅녀를 닮았다는 점이다. 먼저 일본과 중국의 고전과 어떠한 차이가 있는지 알아본다.

▲ 남원 광한루원 내 월매집(사진=남원문화원)

한국 춘향전 vs 일본 주신구라와 중국 와신상담

일본인이 사랑하는 고전에는 『주신구라(忠臣藏)』가 있다. 에도시대에 47명의 사무라이가 주군의 원수를 갚고 죽는다는 이야기다. 일본의 전통극 가부키 가운데 ‘주신구라’는 태평양 전쟁 직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가부키 상연 횟수는 순위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의 춘향전과 일본의 주신구라를 통해 양국의 문화는 어떠한 차이가 있을까?

이어령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주신구라는 세계에 유례가 없을 정도로 복수담이 많은 일본의 특성을 반영하고 있는 데 반해 춘향전에서는 춘향이를 괴롭히는 사또를 복수하는 이야기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라며 “일본이 원수를 갚은 것을 좋아하는 원(怨)의 문화라고 한다면 한국은 춘향전처럼 한(恨)을 푸는 문화”라고 말했다.

▲ 5월 9일부터 10월 24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광한루원 수상무대에서 국악창극 '광한루연가Ⅲ 열녀춘향'을 공연한다. 사진은 지난해 공연의 한 장면(사진=남원시립국악단)

하성백 중국 연변과기대 교수는 일본에 주신구라가 있다면 중국에는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있다고 밝혔다.

일본의 ‘주우신구라’는 47명의 사무라이가 ‘아사노’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벌이는 이야기이다. 가신과 무사가 원수를 갚기 위해 한밤중에 쳐들어가 ‘기라’의 목을 잘라 주군의 무덤에 바치는 순간 그 원심이 갚아진다.

하 교수는 “‘아사노’가 ‘기라’에게 품고 있던 감정은 ‘원’이고 이 ‘원’을 해결하는 최종 수단은 칼이었다”라며 “‘주우신구라’는 원수를 갚는 이야기로 일본민족의 정서 속에 ‘원’의 문화적 원형으로 존재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중국에는 와신상담의 고사가 있다. 춘추시대 말기 월왕(越王) 구천(句踐)과 오왕(吳王) 부차(夫差)의 전쟁에서 진 구천이 치욕을 씻기 위하여 20년을 잠자리 옆에 쓸개를 두고 핥으면서 전쟁준비를 했다. 그는 미녀 서시(西施)를 부차에게 바쳐 미색에 빠지도록 했다. 이어 침공하여 멸망시켰다.

▲ 5월 9일부터 10월 24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광한루원 수상무대에서 국악창극 '광한루연가Ⅲ 열녀춘향'을 공연한다. 사진은 지난해 공연의 한 장면(사진=남원시립국악단)

하 교수는 “『논어』ㆍ 『맹자』·ㆍ『대학』ㆍ 『중용』ㆍ 『시경』 등 중국 고전에서도 한이라는 말은 찾아볼 수 없고 대신 원에 대해서만 나오고 있다”라며 “춘향전은 한을 푸는 이야기로 일본의 주우신구라는 원수를 갚는 이야기로 중국의 와신상담은 원한의 복수이야기로 각국의 문화원형을 상징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한민족의 원형…웅녀와 춘향 스토리

칼 융은 인간의 정신 속에 내재해 있는 초월적인 상징체계를 원형(原型․archetype)으로 본다. 연구자들은 단군사화가 한민족의 원형이라면 춘향전은 문화원형으로 보고 있다.

이광풍 국제대 교수는 “춘향이는 웅녀처럼 이별을 통해서 옥중의 고난을 겪어 정절 굳은 여인으로 바뀐다”라며 “환웅을 만나 결혼하듯이 이도령과 진정한 결합이 이루어지게 된다”라고 말했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 부부(夫婦)가 된다는 것은 곧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이고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새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겨울과 어두운 밤을 지나야 하고 죽음의 고통을 겪어야 한다.

▲ 5월 9일부터 10월 24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광한루원 수상무대에서 국악창극 '광한루연가Ⅲ 열녀춘향'을 공연한다. 사진은 지난해 공연의 한 장면(사진=남원시립국악단)

그러한 점에서 이 교수는 “춘향이가 갇혔던 옥(獄)은 통과제의적인 상징적 죽음을 겪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라며 “옥중에서 죽을 각오로 모진 매를 견디어 냈기 때문에 도덕적 규범을 갖춘 열녀로 변모된다. 이어 암행어사가 된 이도령의 아내가 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성백 교수는 곰이 웅녀가 되는 과정은 한민족이 추구하고 있는 인간관과 성장과정을 나타내고 있다고 봤다. 웅녀가 신께 빌어서 단군의 어머니가 된 것처럼 춘향도 옥초의 고생을 견디면서 양반의 정렬부인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 5월 9일부터 10월 24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8시 광한루원 수상무대에서 국악창극 '광한루연가Ⅲ 열녀춘향'을 공연한다. 사진은 지난해 공연의 한 장면(사진=남원시립국악단)

하 교수는 “춘향이가 신분을 차별하는 시대에 저항하고 정절을 인정 못 받고 매질받는 억울함의 고난을 묵묵히 견디는 노력은 곰(=웅녀)이 보여주는 인내하는 민족의 정서를 그대로 닮아있다”라며 “춘향전의 춘향이도 변학도의 강압적인 수청의 억울함에 대해 변론은 해도 복수나 원한을 생각하지 않고 덕의 민족답게 참고 인내하며 견디어 승리한다”라고 말했다.

■ 남원 광한루원

전북 남원시 요천로 1447번지(천거동78번지)  (바로가기 클릭) 유료. 063-625-4861

■ 참고문헌

이석홍, 김현식 편,『남원의 문화유산』, 남원문화원 2013년
하성백, 『춘향전의 문화원형 연구』, 택민국학연구원 2013년
이어령외 한일교류좌담회, 한국일보, 2001년 12월 11일
이광풍, 『단군신화의 구조적 분석』, 서울대국어교육연구소, 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