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라북도 남원시 대곡리 봉황대와 암각화(사진=윤한주 기자)

암각화라고 하면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유명하다. 국보로 지정되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또 암각화는 경상도에 많이 남아 있다. 그런데 전북에도 울산과 똑같은 이름의 대곡리 암각화가 있다. 김현식 남원문화원 사무처장의 차로 현장을 다녀왔다. 

대곡리 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암각화는 연못을 앞에 둔 봉황대를 찾으면 된다. 마을 이름과 봉황은 관련이 깊다. 대곡이란 마을은 이곳에 대나무가 많아 대실, 대곡이라 부른 것에서 유래했다. 옛 고전(古典)에는 “봉황새는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대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대곡리 한가운데는 작은 바위 봉우리가 솟아 있는 모습을 보고 봉황이 알을 품는 형상이라고 하여 봉황대라고 부른다.
 
마을의 북서쪽으로는 노령산맥 줄기인 풍악산이 자리 잡고 있다. 마을 앞으로는 섬진강의 지류인 준용하천인 대곡천이 흐른다. 
 
암각화는 봉황대 위에 있다. 고대인들이 바위나 동굴 벽에 기호나 그림을 새겨 넣었다고 하는 암각화는 문헌이 남아있지 않은 당대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셈이다. 
 
남원문화원에 따르면 대곡리 암각화의 특징은 2가지를 꼽는다.
 
첫째 가장 발달한 형태의 검파형 기하문양과 그 문양 내의 구획된 각 면에 3개의 성혈이 제작된 반면, 삼각형 또는 역삼각형의 바위구멍이 제작되어 있다는 점이다. 검파식은 여성상이요, 삼각형은 여성신적 표현이며 성혈은 여성의 성기를 묘사한 것이다. 이러한 검파형 기하문은 지모신상(地母神象)으로서 농경생활을 기반으로 생활하던 토착민들이 농경의 생산과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여신상을 조각했다. 
 
둘째 검파형 기하문이 퇴화해 소멸해 가는 단계의 문양이 발견되었다는 점이다. 여성상이나 검파형 문양이란 상징적 관념이 희박해지는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암각화가 제작된 곳은 풍요의식을 거행하는 제의공간이요, 제단이나 성소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대곡리 암각화의 입지조건도 남쪽의 산곡평야지대를 향해 봉황대의 가장 높은 암면에 조각되어 있음이 그것을 설명해준다.
 
이 암각화는 1991년 국사편찬위원회 김광 연구사에 의해 처음으로 보고되었다. 
 
▲ 전라북도 남원시 대곡리 암각화(사진=윤한주 기자)
 
좌측 바위 서쪽에서 넓이 400cm, 높이 140cm의 암면에 2문의 기하문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2문 가운데 왼쪽 문양은 높이 54cm, 윗넓이 50cm, 밑넓이 53cm, 허리 부분 넓이 25cm의 크기이다. 우측면의 암각화는 높이 190cm, 넓이 250cm의 암면에 3문의 기하문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암면 좌측으로부터 높이 50cm, 폭 26cm, 높이 50cm, 폭 25cm, 높이 52cm, 폭 33cm 크기의 기하문양이 조각되어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63호다.
 
그렇다면 암각화의 유래는 어디에서 찾아야할까?
 
최광식 고려대 사학과 교수는 내몽고 적봉일대의 암각화를 조사했다. 최 교수는 "내몽고 지역에서도 동심원, 마름모, 방패 모양 등 기하학 모양을 중심으로 한 한국형 암각화를 새로 발견했다"라며 "한국 암각화의 뿌리가 서요하 상류지역의 암각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와 활동무대를 요하유역으로 확대해보는 견해가 유력해지고 있다고 했다. 하가점하층문화 자체를 고조선 문화로 보아 단군조선의 건국연대를 소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물론 하가점 하층문화의 성격이나 담당 주민이 분명하지가 않아 고조선의 정치구역으로 보기에는 무리라는 반론이 있다. 하지만 최 교수는 "새로 발견된 내몽고 적봉 일대의 암각화가 한국의 암각화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이 입증됨으로서 한국 청동기문화의 내용과 성격이 구체화되고 나아가 고조선의 문화적 성격과 범위를 이해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리라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또한 암각화를 고조선 문자로 보는 주장에도 힘이 실린다.
 
1970년 12월 24일 울산 천전리 암각화를 처음 발견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한국미술사연구소장)는 “고조선을 형성한 한 부족의 문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천전리 암각화는 너비 10m, 높이 3m의 바위면에 고대부터 신라 말기까지의 기하학적 문양과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문 교수는 이 무늬를 “고조선을 형성한 한 부족의 문자일 것”이라고 말했다. 근거로는 ‘기하학적 문양이 반복된 점’, ‘중국 문헌에 신라인들이 문자를 받아들이기 전에 표식을 남겼다고 기록된 점’ 등을 들었다.
 
문 교수는 “상징을 의미하는 기호들이 여러 번, 다양한 패턴으로 반복되는 것을 볼 때 이는 메시지를 전하는 문자 역할을 했으리라 본다.”라며 “내몽골에도 비슷한 문양이 있다. 바위에 새겨진 문양을 해석할 수 있다면 고조선을 이룬 북방 민족이 한반도로 들어와 초기 신라에 이르기까지 문화의 흐름을 연구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한국 고대의 정신문화를 상징한다는 연구도 있다.
 
김성환 군산대 철학과 교수는 “홍산문화권에 속하는 중국 내몽골 적봉시의 각노영자 암각화는 빛과 태양을 상징한다. 이것은 (경상도) 고령 양전동 암각화 등에 보이는 문양과 통한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가 말하는 빛과 태양은 한민족의 정신문화로서 밝음을 나타낸다. 
 
중국 문헌에 등장하는 ‘발조선(發朝鮮)’을 최남선과 신채호는 한글 밝과 조선의 합성어라고 주장했다. 또 『삼국유사』 ‘고조선조’에 나오는 환인과 환웅에서 환의 어원은 우리말 ‘환하다’를 뜻한다. 하늘나라인 환국은 환한 나라이고 하느님인 환인은 환한 님, 환웅은 환한 영웅이 된다. 환인은 대우주의 ‘빛’이다. 환웅은 바람과 비와 구름을 거느리고 지상에서 내려오니 ‘태양의 신격’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단군은 빛의 자손이자 천손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빛의 신화는 고구려의 주몽과 신라의 혁거세 등으로 이어진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앞으로 암각화의 연구는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의 뿌리를 찾고 정체성을 새롭게 밝혀 주리라 기대해본다.(계속)
 
■ 대곡리 암각화
 
전라북도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401(바로가기 클릭)
 
■ 참고문헌
 
이석홍, 김현식 편,『남원의 문화유산』, 남원문화원 2013년
최광식, 한국 청동기시대 암각화의 기원에 대한 시론, 한국사학회, 2009년
김성환, 한국 고대 선교(仙敎)의 빛의 상징에 관한 연구(下), 한국도교문화학회, 2010년
문명대, 천전리 암각화의 발견의미와 도상해석, 한국미술사연구소 21회 학술대회, 201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