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4대 문명이 있다. 바로 메소포타미아문명과 인더스문명, 이집트문명, 그리고 황하문명이 그 주인공이다. 동아시아에서는 황하문명의 존재감이 절대적이다. 하지만 황하문명밖에 없을까.

 아니다. 만주 지방을 중심으로 한 '요하문명(遼河文明)'이 있다. 한국 고대사 전문가인 이형구 교수(선문대 석좌교수)는 이를 '발해연안문명(渤海沿岸文明)'이라고 명명했다. "유럽에서 지중해를 중심으로 서양문명이 탄생한 것처럼 동양문명은 발해연안을 중심으로 탄생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 이형구 선문대 석좌교수

 이형구 교수는 14일 오후 7시 대한출판문화협회(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강당에서 열린 126회 국민강좌에서 발해연안을 중심으로 한국 고대문화의 기원이 가진 비밀을 밝혀냈다. 사단법인 국학원(원장 장영주)이 주최하고 서울국학원(원장 성배경)이 주관한 이번 국민강좌에는 매서운 추위에도 현장을 찾은 150여 명의 시민들은 이 교수가 발로 뛰며 밝혀낸 발해연안문명의 정통성과 우수성에 큰 박수를 보냈다.

 이 교수가 가장 힘주어 말한 것은 '발해연안문명'이었다. 그는 황하문명과 유사성이 없지는 않으나, 그 자체로 특수성을 가지며 우수한 문명권을 이룩해낸 발해연안문명을 정확하게 알렸다.

 "'발해'라고 하면 669년 대조영이 건국한 나라 '발해'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지금 말하는 '발해'는 그보다 앞선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바다 이름 '발해'를 말한다.
 '발해연안문명'은 지리적으로는 산둥반도와 랴오둥반도, 한반도 전역을 아우른다. 민족적으로는 동이족이라는 동질성을 갖고 있다. 발해연안문명은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인 고조선의 강역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즉, 우리 민족이 대를 이어 활동해온 지역으로 우리의 고대사가 시작되는 곳이다."

 발해연안에서는 신석기시대 인류 발달의 정점을 의미하는 토기, 그중에서도 장식성이 뛰어난 '빗살무늬토기'가 많이 출토된다. 이와 함께 장식성과 종교성을 강하게 띄는 '옥기(玉器)'와 '용(龍)' 문양이 다수 발견되고 있다.

▲ 발해연안문명권지도(좌)와 발해연안문명권 내에 유사한 유물 출토 지역(우)

 "일반적으로 '용'은 중국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장 이른 시기의 용의 형상이 연산산맥(만리장성) 넘어 사해, 요녕에서 발굴되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황하문명의 시작이 중원이 아니라 동이족의 무대, 발해연안이라는 증거이다. 즉, 발해연안문명이 동양문명의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4대 문명이 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물이 있어야 한다. 큰 강을 끼고 있어 농경 생활을 활발히 할 수 있었다. 둘째, 북위 30~45도 사이에 자리한다. 북위 45도 이상은 너무 춥고 30도 이하는 사막지역이다. 즉, 기후가 온화해야 한다.

 발해연안문명은 이 조건을 모두 충족한다. 다만 그 존재가 늦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중국의 발굴작업이 1970년대 문화혁명이 끝난 후 본격화되었기 때문이다.

 민족적 정통성은 우리가 이어받았지만, 현재 그 땅이 중국의 영토이다 보니 유적 발굴과 연구에 한계가 있다. 이 교수는 중국의 발해연안문명 지역 중 한 곳인 대능하 우하량 유적을 말하며 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최근 중국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요하문명에 대한 엄청난 발굴작업과 유적지 조성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둘러 보물 지정을 하면서 해당 유적지를 중국의 것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발굴 초창기에는 중국 정부가 이 지역에 대한 한국인의 접근을 금지하기도 했다.
 나는 백제의 흔적을 담고 있는 서울의 풍납토성(서울 송파구 풍납동) 유적을 지키기 위해 많은 활동을 해왔다. 그 결과 지금 그 지역은 아파트를 건설하지 못하는 보호 지역이 되었다. 그런데 발해의 흔적이 있는 서해안 지역에는 최근 팬션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유적지인지도 모르고 다 파헤쳐서 집을 짓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일이다. 책이나 서류로 대신할 수 없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역사 증거가 사라지고 있다."

 127회 국민강좌는 2월 11일에 개최된다. 이강식 교수(경주대)가 강사로 초빙되어 '한국의 조직 발전사'를 주제로 이야기한다. 역사와 문화에 관심 있는 시민은 누구나 무료로 참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