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1967년 이세신궁(伊勢神宮)을 둘러본 뒤 '전 세계 모든 정신의 핵심이 모여있는 곳'이라고 극찬했다. 그리스계 미국인 기자 라프카디오 헌(Lafcadio Hearn, 1850~1904)은 1890년 이즈모 대사(出雲大社)를 방문해 '이즈모대사는 신의 나라'라며 감탄한 뒤 일본에 매료되어 일본인으로 귀화했다.  
 이세신궁과 이즈모대사는 일본인들이 꼽은 '일본을 대표하는 2대 정신문화의 메카'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두 신사에서 모시는 신이 한반도의 신이라는 사실,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까."

 도전적인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막부시대부터 일본 정신의 핵심지였던 이세신궁과 이즈모대사에서 한반도의 신을 모셨다니. 두 신사는 정치인들이 정권이 바뀔 때, 국민들은 새해가 되면 꼭 찾아 참배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곳이다.

▲ 김철수 교수가 10일 열린 122회 국민강좌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사단법인 국학원(원장 장영주)은 10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사간동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김철수 교수(중원대학교)를 초빙하여 일본고대사와 한민족을 주제로 제122회 국민강좌를 개최했다. 김 교수는 일본의 정신 그 시작이 한반도에서 비롯되었음을 신사 문화를 통해서 하나하나 설명했다.

 실상 일왕가문의 뿌리가 백제계라는 것, 일본어의 뿌리가 고대 한국어라는 것, 고대 일본문화는 한반도에서 전해진 것이라는 주장은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왔고 많은 역사적 유물, 근거, 사료를 통해 사실임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자존심이라 할 수 있는 '신도(神道)'가 깃든 신사가 한반도의 신을 모신다는 연구나 주장은 전무했다고 할 수 있다.

 원래 대일항쟁기 일본역사가 전공이었던 김 교수는 일본사 연구 중 신사문화, 신도에서 한민족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연구의 방향을 바꾸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흔적을 신사의 원형에서 찾아갔다.

 "일본 신사라고 하면 큰 건물을 생각하기 쉽지만, 원래 신사는 건물이 없다. 숲의 모습을 하고 그 안에 있는 신령스러운 나무를 모시는 곳이 신사다. 모든 신사마다 행하는 마쯔리(祭り, 축제)는 지금은 마을 페스티벌처럼 변형되었지만, 원래는 밖에 있는 신을 숲 속의 신령스러운 나무나 신단 앞까지 모셔가는 과정이다.
 살펴보면, 신사의 원형은 우리민족의 신단수(神壇樹)를 뜻한다. 신을 모시는 마쯔리는 한반도에서 온 신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과정이다. 이는 마쯔리의 행진에 나부끼는 깃발을 보면 알 수 있다. 배 모양 위에 신의 이름을 써둔다. 바다 건너 한반도에서 신이 온다는 것이다."

▲ 일본의 건국신화를 그림으로 그린 것. 김 교수는 "그 어느 나라도 건국신화도에서 창과 칼을 들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그림 속 신들은 모두 창과 칼을 들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이겠나. 바로 삼한일본열도정복설, 북방 기마민족이 일본 열도를 정복해가는 모습이다"라고 설명했다. 삼한, 즉 한반도에서 일본열도 정복을 위해 이동했던 이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라는 것이다.

 일본 11대 수인(垂仁)왕 때 신라에서 왕자 천일창(天日槍 아메노히보코)이 무리를 이끌고 일본에 오면서 7개의 신물(神物)을 갖고 도래했다. 그 신물 중 하나가 ‘곰(熊)의 신단’으로 알려진 ‘히모로기(神籬)’였다. 히모로기는 무성한 나무의 숲으로 신을 숨긴 것으로 신단, 신령을 제사지내는 제단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 신단에 있는 큰 나무, 신단수였다. 즉, 곰의 히모로기는 웅(熊)족의 신단을 뜻했던 것이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고대에 신사의 사전(社殿)이 없었고 수풀 속에 신이 있다는 관념에서 큰 나무를 제사지냈다. 이것이 일본 신사(神社)의 시작이었다.

 이 외에도 신사를 지키는 개의 이름은 '고마이누(고려견, 高麗犬)'이라고 불린다. 그리고 이세신궁과 이즈모대사를 비롯한 많은 신사의 주변 산 이름이 '가라쿠니산(한국산, 韓国山)'이라고 불린다. 일본인들은 오래전부터 신사에서 한반도의 흔적을 지우려고 했지만 워낙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것이라 지금까지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신사의 모습은 일본을 대표하는 2대 신사를 통해서 더욱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이세신궁은 고대에 한민족과 관련된 최고신을 모신 곳이었다. 그러다가 7세기 말 일본이 소위 ‘만세일계(萬世一係)’의 왕실계보와 고대국가 성립 과정에서 천조대신(아마테라스 오오카미)으로 교체하면서 그 역사가 왜곡되어 버렸다"

 즉, 일본이 최초의 고대국가 '야마토'를 건국하고 왕권 강화를 하는 과정에서 이세신궁은 한반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 고황산령존(高皇産靈尊)을 원래 모시다가 천조대신을 국가 최고신으로 교체하여 오늘날까지 일본의 모든 역사·종교·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 시기 일본은 최초로 '천황'이라는 이름을 쓰고 나라이름을 '일본'으로 바꾸었다. 일본의 고대 사서인 『고사기』에 의하면 고황산령존은 신단수와 같은 ‘고목신(高木神)’이었다. 천조대신은 오히려 고황산령존에 부속된 신이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이 시기를 나는 '새일본만들기'라고 부른다. 그만큼 총체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라고 설명했다.

▲ 이즈모대사와 이세신궁은 일본이 꼽은 '일본 대표 2대 신사'이다.

 최근 '다케시마의 날'로 우리나라에 악명 높은 일본 서북단의 시마네현(島根縣)에 자리한 이즈모대사 역시 한반도와의 연관성이 높은 신사다.

 "한민족의 천제문화가 고스란히 담긴 이즈모대사는 본래 높이 48m의 고층신전으로 거대한 목조 건축이었다. 2000년에는 고대 이즈모 대사 본전을 지탱했던 9개의 기둥 자리가 발견되었는데, 기둥은 직경 1.3m의 나무 ‘세 개’를 묶어 도합 지름 3m가 넘는 하나의 기둥으로 만든 것이었다. 이러한 9개의 기둥위에 세위진 ‘궁전같은 고층신전’은 다름 아니라 한반도, 즉 동북아 문명의 소도제천단(蘇塗祭天壇)의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일본의 고대국가 형성과정에서 스사노오의 후손인 대국주신을 제신(祭神)으로 받들며 왜곡되어 버렸다."

 특히 이즈모대사는 '신재월(神在り月)'이라는 달이 있다. 이때 일본의 800만 신이 각자가 있던 신사를 떠나 모두 이즈모대사로 집결한다고 한다. 그 달이 바로 10월이다.

 "일본 모든 신사의 신이 이즈모신사로 몰려드는 달이 바로 10월 10일이다. 그래서 이즈모대사에서는 10월 11일부터 17일까지 신들이 모여 이곳에서 회의를 한다고 한다.
 이는 10월 상달, 한민족의 제천행사가 행해지던 때를 뜻한다. 신들이 모두 한반도에서 도래한 한민족의 신인데, 이들이 자신들이 왔던 한반도로 돌아가 제천행사를 치르는 때라는 것이다. 단, 일본인들의 입장에서 모든 신이 한반도로 간다고 하기에는 너무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여 대신 한반도와 가까운 이즈모대사로 모인다고 하는 것이다."

 일본 정신문화의 토대인 신도와 관련된 연구들은 국내에 흔치 않았다. 더욱이 이 분야는 식민사관의 왜곡된 소위 ‘일선동조동근론(日鮮同祖同根論)’에 가려서 새로운 주장을 국내에서 하기에 한계가 많았던 부분이기도 하다. 김 교수의 강의를 통해 한일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전환점을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