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풀 꺾여 덥지도 않고 춥지도 않은 가을에 맞이하는 추석 무렵은 사람이 활동하기에 좋은 때이다. 이런 시기에 맞춰 조상께 차례를 지내고 나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유희를 즐겼다. 옛날에는 활쏘기를 하였지만 점차 다양한 놀이를 즐겼다.

 강강술래, 줄다리기, 가마싸움, 소놀이, 거북놀이, 소싸움, 닭싸움을 추석에 즐겼다. 강강술래는 8월 한가위 세시풍속인데 정월대보름에도 하기도 한다.  강강술래는 전라남도 해안 일대와 섬 지방에 널리 전승되어온다. 전남 해남군 문내면 우수영 일대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는 해남 강강술래놀이는 해남의 대표적인 민속놀이다. 지금은 전국에서 즐기는 민속놀이가 되었다. 

강강술래 놀이는 고대 마한 때부터 비롯되었다는 설, 고대의 수확제의 오신행사 놀이에서 연원 되었다는 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창안했다는 설 등 여러 설이 있다. 강강술래는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적에게 아군의 숫자가 많음을 위장하기 위해 원무를  하도록 한 후 전래되었다고 한다.  이 설은 전라남도 남해안 일대에 전해오고 있는 전설에 근거를 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해남의 옥매산(玉埋山), 진도의 망금산(望金山), 목포의 유달산 노적봉(露績峯) 등을 마람으로 엮어서 군량미 노적으로 보이게 하고 쌀뜬물을 흘려보내 군사가 많은 것으로 위장했다고 한다. 장군은 또 인근 부녀자들을 동원해 남장으로 가라입히고, 병력이 많음을 위장하기 위해서 손과 손을 마주잡고 원무(圓舞)토록 한 것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강수래는 풍요를 상징하는 놀이다. 농경사회에서 보름달은 풍요를 상징한다. 여성 또한 생산의 주체이다. 대보름날 밤 강강술래놀이는 풍요와 생산의 주체가 함께하는 의미있는 놀이니 추석날 밤 달이 밝기를 고대하였을 것이다. 

추석에는 또 소놀이, 거북이놀이도 빠지 않는다.  소놀이는 두 사람이 멍석을 쓰고 소 모양으로 가장하여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즐겁게 놀아주고 음식을 나누어 먹는 풍년 기원 놀이이다.  사람이 소 모양을 갖추면 한해에 농사를 잘 지은 사람이나 부잣집에 소를 데리고 가서 소놀이를 한다. 집주인이 나와  맞이하면 앞마당으로 들어가서 풍물을 치며 노래하고 춤추면서 놀이를 벌인다.  집주인은 술, 떡, 찬을 차려서 이들을 대접한다. 주인과 한바탕 어울려서 놀이를 한껏 한 뒤에 소놀이를 마친다. 이렇게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논다. 마지막으로 그해 가장 일을 잘한 상머슴을 뽑아 소에 태우고 마을 돌면서 자랑한다. 이를 상머슴놀이라 한다.  소놀이는  소와 상일꾼의 노고를 위로하는 놀이다.  추수를 앞두고 소를 기리는 것으로 상일꾼만이 아니라 소에게도 영광을 돌려서 이를 기념하는 놀이다.  소 대신 거북으로 가장하여 노는 것이 거북놀이다. 다 농경사회에서 풍년을 기원하는 놀이다.

추석날 옛날에는 남자들이 활쏘기를 하였다. 또 씨름을 즐겼다.  씨름은 5월 단오, 음력 7월 백중에도 하지만 추석놀이로도 매우 즐겼다. 『동국세시기』 8월 조를  보면 "16일은 충청도 시골 풍속에, 씨름대회를 하고 술과 음식을 차려 목고 즐긴다. 농한기가 되어 피로를 푸느라고 하는 것이다. 매년 그렇게 한다."라고 하였다.  씨름은 대개 마을과 마을끼리 겨루는 경우가 많아 경기가 치열하고 흥이 넘쳤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 '씨름'이 상상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우승하면 '장사'라는 말을 듣고 때로는 황소까지 상으로 받게 되니 모내기가 끝나면 농촌에서는 묵직한 돌덩어리를 들었다 놨다하는 일꾼이 많았을 것이다.

추석에는 또 소싸움도 큰 볼거리였다. 봄부터 여름내 소먹이는 머슴들이 산등성이와 강변에서 소싸움을 붙여 그 마을에서 가장 힘센 소를 뽑는다.   내가 키운 소가 소싸움 대회에 나가 가장 힘센 소로 뽑힌다면 머슴은 소를 잘 키우는 '능력 있는 머슴'이 된다. 또 주인으로부터 한 판 거나하게 대접받을 수 있으니 소 키우는 머슴이면, 추석 소싸움이 기다려졌을 게다. 소싸움에서 이긴 소는 목과 뿔을 비단과 종이꽃으로 장식하고 그 위에 머슴이 타고 마을로 돌아온다. 주인집에서는 거나하게 술을 대접한다. 소싸움은 힘센 소를 골라내려는 뜻도 있지만 머슴들이 소를 잘 키우게 하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소를 잘 키우라고 잔소리하거나 감독하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하도록 한 조상들의 슬기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에 많이 하지만 지역에 따라 추석에 하기도 한다.『동국세시기』에는 제주도 놀이로 소개하였다. " 제주도 풍속에 매년 8월 보름날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좌우로 편을 갈라 큰 줄을 양쪽에서 잡아당겨 승부를 가린다. 줄이 만약 중간에서 끊어지면 양편이 모두 땅에 엎어진다. 구경꾼들이 크게 웃는다. 이를 조리지희(照里之戱)라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조리희(照里戲)  : 매년 8월 15일이면 남녀가 함께 모여 노래하고 춤추며 왼편 오른편으로 나누어 큰 동아줄의 두 끝을 잡아당겨 승부를 결단하는데 동아줄이 만일 중간에 끊어져서 두 편이 땅에 자빠지면 구경하는 사람들이 크게 웃는다. 이것을 조리(照里)의 놀이라고 한다. 이날에 또 그네 뛰는 것과 닭 잡는 놀이를 한다."고 하였다.

1900년대 초까지 경북 의성 지역에서는 가마싸움이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추석 때 훈장이 차례를 지내기 위하여 고향으로 돌아가 서당을 비우면  학동들이 이 놀이를 시작했다. 모처럼 글공부에서 해방된 학동들이 모여서 나무로 가마를 만들며 마음껏 놀았다. 서당 학생들이 남북으로 편을 가른 후 가마와 가마끼리 부딪혀 서로 상대방 가마를 부수려고 혼전을 벌인다. 먼저 부서지는 쪽이 지는데 이긴 쪽 서당에서 과거 급제자가 많이 나온다는 속설이 있어 가마싸움 열기가 뜨거웠다고 한다. 

우리 조상들은 한가위에 이렇게 다양한 놀이를 즐겼던 것에는 농삿일의 고단함을 씻고 새로운 활력을 찾으러는 뜻이 깃들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