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헌 윤봉길의사 상해의거 81주년을 맞아 중국과 서울에서 기념식을 거행한다.

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의 일대 전기를 마련한 윤봉길의사를 기리는 "매헌(梅軒) 윤봉길(尹奉吉)의사 상해의거 81주년 기념식"을  오는 29일 오전 10시(현지시간)에 상해 루신(魯迅)공원 매헌(梅軒) 앞에서 거행한다고 26일 밝혔다.  국내에서는 오전 11시 서울 양재동 매헌기념관에서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주관(회장 황의만)으로 거행한다. 

 상해 기념식은 황의만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회장과 회원, 이강국 주상해부총영사, 교민 등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사업회장의 개식사, 상해 홍커우구 구장 · 상해부총영사의 축사, 윤봉길의사 노래 등의 순으로 거행된다.
 

 국내 기념식은 같은 날 오전 11시 매헌기념관에서 최완근 서울지방보훈청장, 기념사업회원,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다. 이날 기념식은  국민의례, 안병원 기념사업회 부회장의 연보낭독, 김달수 기념사업회명예회장의 개식사, 서울지방보훈청장·광복회장의 기념사, 31여성동지회합창단과 역사어린이합창단의 ‘독립군가’ ‘윤봉길의사의 노래’제창에 이어 만세삼창 순으로 거행된다.
 

 또  충남 예산 충의사에서는 오전 10시에 예산군 주관으로 안희정 충청남도지사, 이종경 홍성보훈지청장 등 각계인사, 월진회원, 시민 등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다례를 진행하며 27~29일 삼일간 매헌윤봉길문화축제가 열린다.

 윤봉길 의사(1908. 6.21~1932.12.19)는 충남 예산에서 출생하여 1919년 3·1독립운동이 일어나자 일제의 식민교육을 배척하여 학교를 자퇴하고, 사설서당인 오치서숙(烏致書塾)에서 한학을 수학하였다.

1928년에는 부흥야학원(富興夜學院)을 설립하여 농민의 자녀를 교육시켰고, 1929년에는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여 농민계몽운동과 농촌부흥운동, 독서회 운동을 전개하였다. <농민독본>을 편찬하여 농촌청년들에게 농민의 단결과 민족정신의 배양,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운동에 헌신하다가 일제의 압박으로 중국으로 망명하여 김구선생이 이끌던 한인애국단에 가입하고 거사를 자청하였다.

1932년 4월 29일 일왕(日王)의 생일인 천장절(天長節)을 맞아 일본군의 상하이 점령 전승경축식을 상해 홍커우(虹口)공원에서 거행하자 의거를 감행, 일본의 수뇌부를 폭사시킴으로써 독립운동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으며, 조선과 중국의 항일연대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의거 직후 현장에서 일경에게 피체된 윤 의사는 상해 일본 헌병대에서 가혹한 고문과 취조를 받았다. 그해 일제는 5월 25일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언도하고, 같은 해 11월 18일 오오사카(大阪) 육군 위수(衛戍) 형무소에 수감했다. 윤 의사는 그해 12월 19일 오전 7시 40분 교외에 있던 한 작업장에서 26발의 탄환을 맞고 순국하였다.

윤 의사의 유해는 김구 선생이 요청하여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와 함께 봉환되어 1946년 6월 30일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정부에서는 의사의 공적을 기리어 1962년에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