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격동의 아시아, 1‧2차 아편전쟁의 결과 청의 수도이자 황제의 도시인 베이징이 서양인에게 활짝 열렸다. 청은 영국을 위시한 서양 제국들에 속수무책으로 패했고, 영국, 프랑스, 미국, 러시아와 각각 텐진조약과 베이징조약을 맺었다. 조약을 맺은 국가의 서양인은 중국을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게 되었다.당시 동아시아로 향한 서양인들의 시선은 중국을 넘어 유일하게 빗장을 걸어 잠근 채 어떠한 통상 요구나 조약도 거부하던 조선을 향했다. 종교적 관심 또는 학문적 호기심, 무역 이득에 대한 기대 등 이유는 다양했다.그 시기 조선 조정은
우리 주변에는 자연과 역사, 사람의 숨결이 어우러져 걷기 명상을 하기 좋은 길들이 많다. 경기 강화도에는 강화나들길 19코스가 있는데 그중 8코스는 서해안 갯벌을 따라 초지진과 동막해수욕장을 오가는 8코스는 일명 ‘철새 보러 가는 길’이라고 불린다.출발점에서 만난 초지진.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에게 점령당하면서 대부분의 시설물이 파괴되었고, 1875년 일본 운요호 사건 때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여 완전히 무너졌다. 지금의 초지진은 1970년에 복원했다. tvN 드라마 ‘미스터 션사인’ 첫 회에서 미군의 최신 함포 앞에서 심
역사 수업에서 과제를 발표하던 한 학생이 이렇게 말한다.“저는 역사에 관심이 없어요.”그 말을 듣고 있노라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도대체 그 학생은 무엇에 관심이 있을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이 있긴 한 것일까?” 역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역사를 교과서 안의 내용만 역사로 믿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교과서 밖에는 우리의 삶 자체가 역사이기에 역사가 아닌 것이 없다. 그러기에 역사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삶 자체에 관심이 없다는 말과 같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부터 역사를 우리의 삶과 격리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
지난 추석 연휴에 안시성 전투를 소재로 한 영화 ‘안시성’을 보았다. 명절 기간에는 역시 사극 영화가 대세인 것 같다. 영화 ‘안시성’ 외에도 사극 영화가 몇 편 더 있었지만 ‘안시성’이 더 많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물론 주연 배우나 감독의 명성도 한 몫 했을 것이고, 스크린 장악과 홍보도 주요한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우리 역사에 애정이 많은 이들에게는 역사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가 나오면 우선 반가울 것이다. 이미 지나간 역사적 사실과 인물을 작가의 상상력과 감독의 연출을 통해 어떻게 살아있는 역사로 창조했는지가 궁금하다.
“저물어 가는 조선에 그들이 있었다.그들은 그저 아무개다. 그 아무개들 모두의 이름이 의병이다. 원컨대 조선이 훗날까지 살아남아 유구히 흐른다면 역사에 그 이름 한 줄이면 된다.”드라마 의 포스터 내용이다.이미 짐작하고 있겠지만 구한말 격변의 시대에 등장하는 이름 모를 의병들의 이야기다. 한 명의 시청자로 흥미로운 역사 드라마를 보면 살아있는 우리 역사 이야기를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제대로 역사고증 없이 방영되면 자칫 왜곡된 정보를 전달하게 되어 역사인식의 오류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 염려가 되기도
(사)우리역사바로알기는 9월 16일 국가보훈처 후원 ‘현충시설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강화도 독립운동 유적지를 탐방했다. 그동안 수차례 방문했던 강화도는 고인돌, 고려궁지, 외규장각 등의 유물유적을 위주로 답사하였다. 강화도에 독립운동 유적지가 많다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다.첫 번째 방문지는 고구려 때 창건하여 역사가 오래된 전등사이다. 전등사에서는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다 이야기할 수 있다. 먼저 선사시대의 역사를 보면 전등사를 둘러싸고 있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 부여, 부우, 부소가 쌓았다고 한
지난 6월 28일 토요일 10회로 예정되었던 (사단법인)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에서 진행하는 문화재청 지원 현장답사 중 마지막 답사지를 다녀왔다. 그곳은 바로 섬 전체가 야외박물관이라 할 수 있는 강화도였다. 답사자 102명이 오전 8시 50분에 동묘역에서 버스 두 대에 나누어 타고 기대에 찬 마음으로 답사를 시작했다. 오늘의 일정은 먼저 강화역사박물관을 둘
이번 답사는 역사의 고장 강화도를 다녀왔다. 강화도는 선사시대 고인돌유적부터 고려, 조선의 외세침략에 저항한 항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적인 지역이다. 추수를 끝낸 들녘을 지나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는 강화도로 향했다. 맨 먼저 도착한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이 있는 강화고인돌공원이었다. 교과서나 책에서 대표적으로 봐왔던 탁자식
아래 글은 제6회 한민족 역사·문화 청소년 글짓기 논술대회에서 중등부 장려상을 받은 김범수 학생(대방중 2)의 글. 국학운동시민연합과 동북아역사재단,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가 공동 주최한 이번 논술대회에는 지난 7월부터 9월까지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총 816명이 참가했다. -------------------------
신미양요 때 조선 수군이 입은 갑옷은? 정답은 '면제 갑옷'이다. 갑옷하면 흔히 철로 된 것이 연상되는데 1871년 신미양요 때 조선 수군은 면으로 만든 '면제 갑옷'을 입고 싸웠다. 이 면제 갑옷은 면을 여러 겹 넣어서 만든 갑옷으로 탄성이 큰 섬유조직을 이용해 총탄을 방어하는 원리를 이용했다.무명 서른 장을 겹쳐 만든 것으로 갑옷 발달사 연구뿐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