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미양요 때 조선 수군이 입은 갑옷은? 정답은 '면제 갑옷'이다. 갑옷하면 흔히 철로 된 것이 연상되는데 1871년 신미양요 때 조선 수군은 면으로 만든 '면제 갑옷'을 입고 싸웠다. 이 면제 갑옷은 면을 여러 겹 넣어서 만든 갑옷으로 탄성이 큰 섬유조직을 이용해 총탄을 방어하는 원리를 이용했다.

무명 서른 장을 겹쳐 만든 것으로 갑옷 발달사 연구뿐만 아니라 군사사적으로 가치가 큰 유물이다. 흥선대원군의 갑옷 제조 명령에 따라 개발한 것으로 신미양요에 첫 실전에 활용됐다. 이 같은 근ㆍ현대 군사 관련 유물 7건이 등록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올해 6ㆍ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아, 근ㆍ현대 군사 관련 유물 7건을 2010년 6월 25일 자로 등록문화재로 등록한다. 고 밝혔다. 이번에 문화재로 등록되는 군사 관련유물 7건은 외세 저항 관련 유물이 3건, 한국전쟁 관련 유물 4건이다. 이것들은 우리나라 근대사와 궤를 같이하며 국토방위 역할을 수행한 군사 관련 유물로 학계에서는 역사적 가치가 크고 상징성도 적지 않다고 평가한다.

면제갑옷

면제 갑옷은 등록문화재 제459호로 등록된다. (규격 : 앞길이 82cm, 앞품 48.5cm, 재료 : 면직물, 제작시기 : 1866∼1870년 ) 면을 여러 겹 넣어 만든 갑옷으로 탄성이 큰 섬유조직을 이용해 총탄을 방어하는 원리의 면제(綿製)갑옷이다. 1866년 병인양요 이후 흥선대원군은 서양의 총탄을 막아낼 갑옷 제조를 명하고 무기제조자 김기두와 강윤은 조정의 명에 따라 거듭된 실험으로 면 12겹에는 총탄이 뚫리지 않음을 확인하고 면 13겹으로 면갑을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1871년 신미양요에 첫 실전 투입하여 총탄 방어에는 효과가 있었으나 더위나 화기, 습기에는 취약하였다. 이 면제갑옷은 무명을 30장 겹쳐 만든 것으로 안쪽에 소유자의 성명으로 추정되는 먹글씨 '孔君玉'(공군옥)이 쓰여 있다. 국내에 현존하는 유일한 면제갑옷으로서 갑옷 발달사 연구에 매우 중요한 유물일 뿐만 아니라 군사사적, 사료적으로도 가치가 크다.

한국광복군 군복

'한국광복군 군복'은 등록문화재 제460호로 등록될 예정인데 광복군 예비대 군복으로 상하의 한 벌이다. 이 군복은 1972년 서울시청 금고에서 발견하여 육군사관학교에 기증, 육군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것으로 우리나라 광복군 복장을 대표하는 유물이다. 현재까지 발견된 국내 유일의 광복군 군복이다. < 규격 : 길이 62cm?품 46cm(상의), 길이 94cm?허리둘레 98cm(하의), 재료 : 면직물, 제작시기 : 1945년 추정 > 대한민국임시정부 군무부(軍務部)는 1945년2월19일 ‘군인제복 양식 제정안’을 제정,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공포, 시행하였다. 그 전까지는 일정한 제복이 없이 중국식의 군복과 표지를 사용하였으나, 복식제식이 정해진 후 독자적으로 광복군의 표지와 군복을 사용하거나 착용하였다.

대한민국 육군기

'대한민국 육군기'는 등록문화재 제461호로 등록되게 된다. 1946년 4월 새로 제정된 육군 모표(帽標)를 그려넣은 대한민국 육군의 초창기 깃발이다. < 규격 : 127cm×98.5cm, 재료 : 폴리에스테르직물, 제작시기 : 1948년 추정 > 1946년 1월 남조선 국방경비대가 창설되면서 군복은 비록 일본군 군복을 착용하였으나 모표만은 우리 것을 제정, 부착하였으며 이 때 만들어진 모표가 깃발에 인쇄되어 있다. 유일하게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육군기(陸軍旗)로서 대한민국 육군의 애국심과 굳건한 결속 및 군의 역사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유물이다.

대한민국 최초항공기

등록문화재 제462호 '대한민국 최초 항공기(L-4 연락기)'는 1940년대 미국에서 생산되어 제2차 세계대전 중 미 육군이 사용하던 2인승 연락용 경항공이다. 1948년 9월13일 대한민국 공군의 전신인 육군항공대가 미군으로부터 인수한 연락기 10대 중 한 대로 우리나라 공군이 보유한 최초의 항공이다. 한국전쟁 초기 크게 활동하였다. < 규격 : 기장 682cm, 기폭 1,073cm, 재료 : 철재, 제작시기 : 1940년대, 제작(사) : 미국(PIPER) > 6ㆍ25전쟁 초기 후방석의 관측사가 폭탄을 품에 안고 출격, 투척하여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고 여수ㆍ순천사건의 진압 및 지리산 공비 토벌작전에서 공중지원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한 항공기이다. 이후 육군에 파견되어 연락, 지휘관 수송, 조종사 양성과 정비사 교육에 사용되다 1954년 L-19 연락기 도입에 따라 퇴역한 기종으로 대한민국 공군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유물이다.

백두산함 돛대

등록문화재 제463호 '백두산함 돛대'는 해군 장병과 가족의 성금으로 1949년 미국에서 구입한 후 '대한해협 해전'에서 북한의 후방 교란술책을 사전에 봉쇄하는데 기여한 대한민국 최초의 전투함 백두산함의 마스트(돛대)이다. < 규격 : 폭5.2m, 높이11m, 재료 : 목재, 제작시기 : 1949년 이전, 제작 : 미국 > 해군 창설 이후 제대로 된 전투함 한 척 없던 상황에서 해군 장병과 가족의 성금으로 1949년10월17일 미국에서 구입 후 백두산함이라 명명하였다.

이 구잠함(軀潛艦)이 6ㆍ25전쟁 발발 당일 대한해협을 초계하던 중 북한 무장선박을 발견하고 이튿날 격침한 '대한해협 해전'은 한국전쟁 기간 중 우리 해군이 단독으로 실시한 최초의 해상전투로 북한의 후방 교란술책을 사전에 봉쇄한 기념비적인 전투이다. 동서남해의 최전방에서 해양수호의 임무를 수행하다 1959년7월1일 퇴역한 이후 1966년에 해군사관학교 내 해사반도에 함정(艦艇)의 마스트(돛대)만을 보존, 설치한 것으로, 우리나라 해군의 상징적 유물로서 대한민국 해군 창군 정신과 해양수호 정신 계승의 상징성이 크다.

휴전협정 조인시 사용책상

등록문화재 제464호 '휴전협정 조인시 사용 책상'은 한국전쟁의 휴전협정 체결시 미국 측 대표인 클라크(Mark W. Clark) 유엔군 사령관이 유엔기지내 문산 극장에서 협정문에 서명할 때 사용한 책상이다. < 규격 : 183×124×77cm, 재료 : 목재, 제작시기 : 1940년대 추정 > 1953년7월27일 체결된 휴전 협정식은 오전 10시 판문점에서 쌍방 회담 수석대표인 UN군의 해리슨 제독과 조선인민군의 남일 중장이 협정문에 서명하고, 해리슨 제독은 UN기지 내 문산극장에 대기 중인 클라크 대장에게 가 서명을 받고 남일 중장은 평양에 가 김일성과 펑더화이(彭德懷)의 서명을 받았다. 클라크 대장은 16개국 참전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날 13시에 협정문에 서명하였다. 이로써 휴전협정은 발효되어 이날 22시를 기하여 약속에 따라 쌍방은 전투를 종료하였다. 6ㆍ25전쟁의 휴전협정 당시 사용한 책상으로 오늘날까지 계속되는 휴전 또는 정전상태를 상징하는 유물로서 사료 가치가 있다.

의병장 김도현 칼

등록문화재 제465호 “의병장 김도현 칼”은 경상북도 안동 지방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한 김도현(金道鉉, 1852-1914) 의병장이 사용하던 칼이다. 칼에 '三寅劍', 칼집에 '倡義劍'이라 각인했으며 나무칼집은 후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천안 독립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 규격 : 길이 44.5cm, 재료 : 나무,황동, 철, 제작시기 : 대한제국기 추정 > 김도현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 인물로 이 칼은 후손이 1985년1월24일 독립기념관에 기증하였다. 김도현은 1896년 2월 유시연과 함께 영양ㆍ안동 지방의 의병을 모아 청량산에서 기병하였고 봉화와 영주를 점령하여 군수가 바치는 군기(軍器)로 무장하고 안동으로 진군하였으며 청송ㆍ의성ㆍ영덕ㆍ영해를 순방하며 의병 봉기를 촉구하였다. 1907년 고종이 직접 의병 봉기를 촉하는 밀지를 내리자 의병을 일으키려다 계획이 사전에 발각되어 피체된 바 있으며 후에 의병을 해산하고 영양에 영흥학교를 세워 육영사업에 힘썼다.

군사 관련 유물의 문화재 등록은, 문화재청이 2009년도에 실시한 '근대문화유산 군사유물 목록화 조사 용역'을 바탕으로 유물에 대한 비교ㆍ평가, 관계전문가 현지조사ㆍ검토, 30일간의 예고기간을 거쳐 이번에 문화재로 공식 등록하게 되었다. 한편 육군사관학교 육군박물관(서울 노원구 공릉동)은 문화재청의 지원을 받아 '6ㆍ25전쟁 60주년 특별전'을 6월11일부터 10월31일까지 개최하여 근ㆍ현대 군사유물을 일반에게 공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