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답사는 역사의 고장 강화도를 다녀왔다. 강화도는 선사시대 고인돌유적부터 고려, 조선의 외세침략에 저항한 항쟁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역사적인 지역이다. 추수를 끝낸 들녘을 지나 가을 분위기가 물씬 나는 강화도로 향했다.

▲ 강화고인돌.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맨 먼저 도착한 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인돌이 있는 강화고인돌공원이었다. 교과서나 책에서 대표적으로 봐왔던 탁자식 고인돌이 공원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었다. 고인돌을 실제로 보니 그 규모와 웅장함에 놀라워 감탄을 금치못했다. 덮개돌의 무게가 무려 50톤이나 된다고 한다. 고임돌은 동쪽으로 30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어떻게 몇 천년동안 쓰러지지 않고 그 모양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감탄스러웠다. , 그 옛날 저렇게 큰 돌을 어떻게 매끈하게 만들었으며, 그 무거운 돌을 어떻게 운반하고 고임돌 위로 올렸을지... 학자들의 여러 추측이 있을 뿐 기록이 없고 워낙 오래전 유물이라 아직도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없다. 고인돌은 이렇게 많은 수수께끼를 품고 있어 우리에게 더욱 신비하게 다가온다.

▲ 강화역사박물관.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강화역사박물관은 2010년 개관하여 시설이 좋고 강화도의 역사를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주말을 맞아 많은 학생들이 와 있었다. 이제는 역사를 책으로만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체험학습위주로 살아있는 역사를 직접 보고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추세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박물관에는 참성단과 단군이야기가 학생들의 눈높이에 맞게 잘 소개되어 있었다. 이제 단군은 신화가 아닌 역사로 바르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고려시대 몽고의 침입을 피해 강화도에 있었던 고려의 수도, 구한말 서구의 침략에 대항했던 광성보 전투 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놓아서 역사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 강화역사박물관.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다음으로 간 곳은 고려궁지. 이곳은 대몽항쟁을 위해 수도를 개성에서 강화로 옮겨 궁궐을 지었던 터이다. 외세의 침입에 쫓겨 섬으로 수도를 옮겨야 했을 때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강화유수부의 동헌과 이방청만 남아있고 본궁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빈 언덕에 올라서니 쫓겨온 왕의 신세와 힘을 잃은 나라 백성들의 고단한 삶이 떠올라 애잔한 맘에 가을바람이 더욱 차갑게 느껴졌다.

▲ 외규장각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고려궁지의 가운데에 외규장각이 조그맣게 자리잡고 있다. 구한말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태워진 외규장각을 복원해 놓은 것이다. 내부에는 이곳에 보관되었다가 프랑스군에 약탈당한 의궤에 대해 전시되어 있다. 고 박병선 박사의 활약으로 영구대여 형식으로 반환된 의궤. 그 의궤에 관한 설명을 읽다보니 세계 곳곳에 방치되어 있을 우리의 잃어버린 문화재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 고려궁지에 남아 있는 현윤관.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안타까운 마음으로 마지막 답사지 광성보로 향했다. 강화도에는 고려시대 몽고에 대항하기 위해 흙과 돌을 섞어 바다길을 따라 쌓은 외성이 있다. 조선시대 광해군과 효종때 다시 고쳐쌓고 광성보를 설치하였다. 이곳은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과의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 신미양요의 격전지 광성보.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이 전투에서 조선군은 어재연 장군의 지휘하에 용감히 싸우다가 미군에 비해 열악한 무기로 600여 명 대부분의 군사가 전사하게 된. 광성보 주변에는 신미양요 당시 미군이 증거물로 찍은 흑백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광경과 똑같은 곳에서 쓰러져 있는 시체들, 연기가 타오르고 있는 성벽을 보니 그 당시의 비참했던 상황이 생생히 느껴져 치가 떨렸다.

▲ 광성보와 강화 앞바다.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

오래된 역사, 놀라운 기술을 가지고 있었던 고조선의 흔적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나라가 힘이 약하고 외세의 침략을 받았을 때 얼마나 큰 고통을 당하는지도 볼 수 있었다. 오랜 시간 속에서 찬란함도, 아픔도 있었지만 극복하고 지금까지 이어온 우리 민족의 역사. 수없이 많은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에 숙연함과 함께 감사한 마음으로 답사를 마무리했다.

▲ 신미양요 때 전사한 군사들의 합동묘. <사진=우리역사바로알기시민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