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제국주의는 1900년대 고려청자, 고미술품 등 우리 문화유산을 약탈해갔다. 이에 맞서 국보급 문화재를 사들여 1938년 보화각(현재 간송미술관)을 세운 이가 간송 전형필(1906~1962)이다. 그런데 전형필 외에 오세창, 손재형, 장택상 등 당대 문화유산지킴이들을 한 자리에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오는 12월 8일까지 격동기 우리 문화재를 지켜낸 수장가들을 중심으로 ‘위대한 유산전’을 열고 있는 성북구립미술관(서울 성북동)이다.

▲ 보화각 상량식을 마치고 북단장 거실에서 찍은 기념사진_왼쪽에서 이상범, 박종화, 고희동, 안종원, 오세창, 전형필, 박종목, 노수현, 이순황(제공=성북구립미술관)

한국 근대의 수장가들은 누구인가? 김상엽 인천대 겸임교수는 ‘한국 근대의 미술품 수장가’라는 논문에서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을 알려준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고미술품이 본격 거래되기 시작한 시기를 1900년~1910년대로 본다. 당시 고려청자의 가격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인들이 마음대로 구할 수 있었다. 고려청자의 열광은 도굴․매매로 이어졌다. 1920년대를 거쳐 1930~40년대에 이르면 골동품 거래 호황기를 맞게 된다.

한국인 수장가는 전형필 등 몇 명을 빼면 일본인들에 비교해 열세였다. 이들은 일본인과 달리 골동상이 아닌 거간(중개업자)을 통해 연적, 필통 등 비교적 가격이 싼 물건을 사들여 일본인들에게 ‘수적패’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1930~40년대 서울에는 30여 개의 골동품점이 있었다. 주로 본정(현재 충무로), 명치정(현재 명동) 등 남촌에 있었다. 대표적인 골동품점으로는 동창상회, 배성관상점, 문명상회, 김수명상점, 우고당, 천지상회, 동고당, 요시다, 구로다, 마에다, 고천당, 계룡산 등 12곳이다.

일제시기에 조선미술관(朝鮮美術館)을 경영한 화상이자 미술기획자인 오봉빈은 수장가 박창훈이 1940년 4월에 소장품을 매각하자 이를 아쉬워하는 글에서 당시 손꼽을 수 있는 한국인 수장가로 “오세창․전형필․박영철․김찬영․박창훈”을 들었다.

오세창(1864~1953)은 서화 등 예술분야에서 민족사회의 구심점이자 당대 최고의 권위자였다. 서화 및 전각에 뛰어난 감식안을 지녔으며 고서화 천여 점을 수집한 대표적인 컬렉터(수집가:Collector)였다.

의사였던 박병래(1903~1974)는 일본으로 밀반출되는 민족 미술품들을 안타깝게 여겨 미술품 수집을 시작한 수장가로 특히 조선백자 명품을 많이 소장했다. 그는 말년에 현 국립중앙박물관에 360여점의 소장품을 기증했다. 또한 일본인에게 넘어간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극적으로 찾아온 것으로 유명한 소전 손재형(1903~1981)도 있다.

이번 전시는 근대 미술품 수장가들의 작품 15여 점을 비롯하여 휘호회, 전람회, 개인전 등 작품의 유통 과정을 짐작할 수 있는 사료 50여 점이 전시되고 있다.

특히 오세창의 근역서화징발간 안내서, ‘근역서화휘’와 ‘근묵 수록’의 목록이 기록된 책자, ‘기원 2,600년 봉축 명가비장 고서화전람회(紀元二千六百年 奉祝 名家秘藏 古書畵展覽會)’ 안내장, 전황당인보(1,2,3권) 그리고 당시 수장자와 소장예술품을 살펴볼 수 있는 경매 도록 등은 눈여겨볼 만한 하다.

이밖에 당대 수장가들의 미술품, 신문 자료, 관련 영상물 등도 볼 수 있다. (02) 6925-5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