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안병우)은 한국학 분야의 대표적인 학술지《한국학》 2023년 가을호(172호)에 “조선시대《홍문록(弘文錄)》과 집권세력의 네트워크” 라는 주제로 《홍문록》 인사명부를 통해 조선시대 정치엘리트의 특성과 정치적 위상을 검토하는 특집을 게재했다.

한국학 2023년 가을호 표지.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 2023년 가을호 표지.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홍문록(弘文錄)》은 조선시대 자문기구 중 하나인 홍문관(弘文館)의 관원 후보자 명부를 말한다. 《홍문록》에 등재되는 것만으로도 출세가 보장되었으므로 이 명단에 수록되면 명예뿐 아니라 실질적인 권한도 뒤따랐다. 조선 전기부터 400여 년간 3,000명이 넘는 인원이 수록된 《홍문록》은 당시의 정치 세력과 이들의 상호 관계망을 조망할 수 있는 유용한 사료다.

이번 기획특집에서는 조선 전기·중기·후기로 나눠 홍문록에 입록된 사람들의 정치 성향과 시기별 관원 선발의 맥락을 검토해 조선시대 정치 엘리트의 네트워크를 심층적으로 논의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가톨릭대학교 신동훈 박사는 “조선전기 초택(抄擇) 인사 운영과 홍문록”에서는 홍문록의 제도적 정착 과정을 분석해 추천에 의한 인사 관행이 공적 인사운영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을 밝히면서, 엄선을 통한 인재 선발이 폐지되는 정치사회적 맥락을 제시한다.

신 박사는 논문에서 “《홍문록》을 비롯한 초택의 대부분은 추천을 통한 초안 작성과 대신들의 주관적 판단을 통해 결정되었다. 물론 정량 평가도 포함되었을 것이지만, 추천이 우선되어야 했기에 정성적 요소가 결정적 요소였다고 판단된다. 정성 평가에는 사람의 주관이 개입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인사의 공적 운영 저해를 초래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 초택 인선은 점차 폐지된 것으로 보이며, 결과적으로 왕의 학술 자문을 담당했던 홍문관의 기관 특성상 《홍문록》만 운영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홍문관지(홍문관의 연혁 및 고사 등을 기록한 관찬서).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홍문관지(홍문관의 연혁 및 고사 등을 기록한 관찬서).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반면 윤혜민 건국대학교 교수는 “17세기 《홍문록》을 통한 인사 운영 실태와 그 변화 양상”에서 효종 대에서 숙종 초기까지 《홍문록》에 기록된 인사 실태를 분석해 《홍문록》이 권력자들의 사적인 발탁보다 학문적 소양을 갖추고 중직을 담당할 수 있는 실력자를 가려내기 위한 공적 선발 시스템으로 기능했음을 확인한다.

김성희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의 “조선 영조 연간 이조낭선(吏曹郞選) 개혁과 홍문관 인사제도”에서는 왕권 강화를 위해 시행된 이조낭선 개혁이 홍문관의 권한과 위상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분석한다. 저자는 숙종 대 말부터 영조 대까지의 노론과 소론 간 격화된 당쟁이 홍문관 관원 선정에 편파성을 초래해 홍문관이 개혁 대상으로 거론됐음에도 홍문관의 우문 정치 조력 기능 덕분에 존속했음을 밝혔다.

등영록(홍문관에서 관원을 임명하기 위해 홍문록과 도당록의 기록을 모아 엮은 관찬서).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영록(홍문관에서 관원을 임명하기 위해 홍문록과 도당록의 기록을 모아 엮은 관찬서). 이미지 한국학중앙연구원

 

나영훈 한국국학진흥원 책임연구위원은 “조선 헌종 대 문관 인사와 홍문관 관원의 위상”에서 홍문관 관원 선발시《홍문록》입록보다 사적 개입의 여지가 큰 특채가 늘면서 명문 가계의 자손이 핵심 요직을 장악한 현상에 주목한다. 또한 이와 같은 비공식적 루트를 통해 관계(官界)에 진출한 사례가 세도정치기 엘리트 창출의 새로운 기제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밝혔다.

“19세기에는 공식적인 《홍문록》입록 외에 홍문관 관원이 되는 다른 경로가 일반화되어 있었다. 참하관 당시부터 규장각 관원이 되어 <내각록>에 입록되어 관로는 걷는 방식과 ‘중비특제’의 형식으로 특채를 통해 홍문관 관원이 되는 방식이다. 두 방식에는 모두 《홍문록》입록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두 방식은 공식적인 《홍문록》을 통해 제수된 관원보다 결과적으로 더 높은 승진율을 보였다. 특히 <내각록>입록자와 ‘중비특제’ 가운데 서울 출신 인사들은 훨씬 더 높은 관직 승진을 이어갔고, 이들은 ‘정2품 이상 관직자’의 다수를 차지했다. 무엇보다 이들은 당대 이른바 벌열 명문 가계에 속하는 이들로 선대뿐만 아니라 부친과 조부 등 살아있는 권력자의 자제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 중앙관로에 진출하는 핵심 정치엘리트 코스로서 공의(公議)에 따른 공식적인 《홍문록》입록보다 <내각록> 입록과 중비특제에 의한 홍문관원 제수가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이들 비공식 홍문관원은 19세기 중요한 인사 특징의 하나이자, 세도정치가 엘리트 창충의 새로운 재생산 기제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김바로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의 “한국역사인물데이터베이스 설계 시론-《홍문록》을 예시로 하여”에서는 《홍문록》을 예시로 삼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역대인물정보시스템과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부가열람 등의 다양한 DB가 상호 연결될 수 있는 한국역사인물데이터베이스 설계 방안을 제시한다.

2023년 가을호《한국학》은 이 외 5편의 연구논문도 다양한 형식의 사료를 실증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제시했다.

1978년 창간된 《한국학》은 한국을 소재로 한 인문학 및 사회과학 분야의 유수 논문을 소개해 종합학문으로서의 한국학 성격을 규명하는 데 주력해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