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 Lee Jae-Hyun, When you needed me,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46 x 46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재현 Lee Jae-Hyun, When you needed me,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46 x 46 cm. 사진 갤러리 조은

삶이 곧 작업의 근간인 작가 이재현은 유년 시절 기억부터 어른이 된 오늘날까지 그의 삶에 들어온 의미 있는 사람들과 사물들을 특유의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아담한 달동네에서 살았던 작가는 해외 출장으로 자리를 비운 아버지, 생업으로 바쁜 어머니와 누나 사이에서 고독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홀로 집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어린 작가의 ‘정서적 허기’를 달래준 건 인형들과 장난감들이다. ‘베티’, ‘한나’, ‘토마스’ 등의 이름으로 의인화된 사물들은 어린 시절 그의 곁을 지켜준 ‘친구’이자 마음을 달래준 ‘치유’의 존재들이다.

갤러리조은은 이재현 작가의 개인전 《Alone Again : 다시 혼자》를 8월 17일부터 9월 9일까지 개최한다.

이재현 Lee Jae-Hyun, Here I am,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160 x 120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재현 Lee Jae-Hyun, Here I am,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160 x 120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가 살았던 서울 상계동 달동네 풍경부터, 결핍을 충족하듯 장난감으로 장식장을 가득 채운 Obsession 시리즈, 놓을 수 없는 가족의 관계 Destiny 시리즈, 그리고 ‘공감’과 ‘치유’를 선사하는 응급키트 시리즈까지 총 21점의 신작을 선보이며 관객에게 진솔하고 담담한 이재현만의 ‘내적 풍경’을 선사할 예정이다.

화려한 컬러의 익살스럽고 키치한 이 형상들의 질감이 어딘지 거칠고 투박하다.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임파스토(Impasto) 기법으로 그가 제작한 회화 속 투박한 질감, 거친 선, 자유로운 색깔은 어린 시절 달동네부터 켜켜이 쌓아온 ‘삶의 결’의 무의식적 표현이다. 고독하고 쓸쓸한 존재인 작가의 시점으로 탄생된 미의식이 모든 작업 과정과 결과에 표출된다.

이재현 Lee Jae-Hyun, Obsession,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145 x 97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재현 Lee Jae-Hyun, Obsession,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145 x 97 cm. 사진 갤러리 조은

홍경한 미술평론가는 “대표적인 사례가 그의 작품에 자주 출연하는 봉제 인형 ‘베티’, ‘한나’, ‘토마스’ 등이다. <Peace>(2021), <Life in the can>(2021), <CSI>(2022), <The painter's still life>(2023) 등에서 고루 새겨져 있다. 과거 중동에서 일하던 아버지가 출장 중 어린 작가에게 준 선물이다.

이 인형들은 하나의 오브제로, 사람의 손에 들린 채로, 화면 어딘가 위치하며 번번이 그려진다. 헤지고 낡아 다시 꿰맨 인형을 쥐고 있는 장면에선 작가가 얼마나 그 인형을 아꼈는지 엿볼 수 있다. 그때는 몰랐겠으나 인형과 친구로 함께하며 지낸 시절이야말로 존재에 관한 의문이 엄습했을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돼지 껍데기로 만든 아버지의 서류 가방을 포함해 욕조 등도 이재현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인형들과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예술가 이재현에게 예술이란 기억의 호출이면서 현존재(Dasein)에 관한 담담한 일기이다. 오늘을 비추는 장치들이다. 고객들마저 모두 떠난 골프장에서 잔디를 깎는 사람, 욕조에 발을 담근 채 두 손엔 가방과 동물을 들고 있는 남자, 뭔가를 혹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 단란한 가족사진처럼 보이는 남녀(House on the hill, 2023) 등에서 그러한 흔적들은 발견된다.

이재현 Lee Jae-Hyun, Destiny,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80 x 47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재현 Lee Jae-Hyun, Destiny,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80 x 47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들 작업은 화면에 기록되고 채워지는 회화적 탐색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한 부분으로, 흡사 그림일기와 같다. 그렇게 그는 예술로 ‘거기(Da) 있음(sein)’으로 현존재임을 확인한다. 동물과 사물, 또 다른 사람을 통해 타자를 통해 그곳에 있었음을 되묻는다. 이렇듯 이재현의 작품들은 지금의 존재성과 관련이 있다. 삶의 과정에서 접한 일상의 사건들, 기억들 역시 존재를 포용한 실존이라는 명사이다.”라고 평한다.

평면회화지만 부조에 가까운 작가만의 입체적 마티에르는 오일을 뺀 유화에 건축용 재료를 혼합해 완성된다. 이는 건축과 조각을 전공했던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재현 Lee Jae-Hyun, Alone Again,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145 x 97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재현 Lee Jae-Hyun, Alone Again, 2023, Oil, Mixed media on canvas, 145 x 97 cm. 사진 갤러리 조은

이재현 작가는 순수 회화로 전향한 후 2022년 개인전을 기점으로, 2023년 파리 개인전 그리고 화이트스톤갤러리 서울 개관전까지 신진 작가로서 성공적 행보를 이어 나가며 국내외 미술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이재현 작가의 개인전《Alone Again : 다시 혼자》는 갤러리 조은(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55가길 3)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