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코 코바야시, Time Passage Dull Pain, 2023, Acrylic, color pencil, Japanese Washi paper on canvas, 91 x 116.7 cm. 사진 갤러리조은
마이코 코바야시, Time Passage Dull Pain, 2023, Acrylic, color pencil, Japanese Washi paper on canvas, 91 x 116.7 cm. 사진 갤러리조은

갤러리조은은 40대 국내외 유망 작가들을 조망하는 《불혹, 미혹하다 5th》전을 오는 6월 7일부터 7월 1일까지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마이코 코바야시, 조문기, 권민호, 정성준, 오영화 그리고 김상인 작가 6인이 최신작 25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갤러리조은의 전속작가 마이코 코바야시는 토끼 혹은 개를 연상시키는 생명체들의 초상화를 특유의 조형 언어로 표현한다. 20년째 자신의 분신처럼 그리기 시작한 이 생명체들은 귀여우면서 어딘지 서글프다. 명확히 규정짓기 힘든 이 표정은 여러 뉘앙스의 복잡하고 내밀한 인간의 표정과 같다. 특히 일본 전통의 와시 페이퍼의 얇지만 강하고 질긴 재료적 질감이 부서질 듯 연약하면서도 강한 인간의 생명력과 닮은 듯하다. 영국 유학 시절 ‘이코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위로를 받고 치유가 된다’는 평이 지금까지 작가로서 작업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이번 전시에서 ‘Time Passage Dull Pain(시간이 흐를수록 고통은 무뎌지고)’를 포함해 총 3점의 최신작을 선보이며 국내외 팬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넬 예정이다.

일본 무사시노 미대(학사), 영국 노섬브리아 미대 대학원(석사)을 졸업했다. 마이코는 2021년 홍콩 소더비 첫 경매에서 4호 소품이 홍콩 달러HKD 126,000으로 거래되며 미술계의 떠오르는 스타로 급부상했다. 올해 홍콩 Gallery Ascend 개인전, 텔아비브 나시마 란도 파운데이션 Nassima Landau Art Foundation 단체전에 연이어 참여하며 세계적으로 기반을 넓혀 나가고 있다.

조문기, TV가 있는 거실, 2023,   Acrylic on canvas, 97 x 194 cm. 사진 갤러리조은
조문기, TV가 있는 거실, 2023, Acrylic on canvas, 97 x 194 cm. 사진 갤러리조은

한국 특유의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가족관계와 폭력성을 독창적 조형 언어로 표현하는 조문기 작가의 최신작 또한 선보인다. ‘TV가 있는 거실’이라는 120호 대형 작품에서 잠옷과 리모컨을 들고 있는 절대 권력의 아버지가 엄숙한 표정으로 TV를 바라본다. 당당한 아버지의 포즈와 비교되며 테이블의 반대편 의자에 삐딱하게 걸터앉아 있는 아들은 홀로 스마트폰을 보며 아버지 세대의 TV와는 다른 스스로의 채널에 파고든다. 가부장적 가정 안에서 엄마라는 존재는 집 안 인테리어 화분에 가려져 존재감이 희미하고, 엑스트라처럼 얼굴 없는 ‘여자 형제’는 어딘가로 도망가듯 계단을 타고 황급히 공간을 빠져나가고 있다. 그리고 거실 중간에서 검은 테이블과 화분이 위풍당당하게 존재감을 발휘하는데 가부장의 심볼인 사자의 발 모양을 하고 있다.

중앙대 미대를 졸업하고 다수의 국내외 전시를 통해 활발히 작품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조문기는 순수미술을 넘어 인디밴드 ‘불나방 스타 쏘세지 클럽’ 활동을 병행하며 표현의 영역을 자유롭게 확장한다.

권민호, 야로슬라브스키 상가, 2023, 트레이싱지에 연필, 목탄, 포토콜라쥬, 터펜타인 와시, 아세톤 와시, 건축용 복사, 드라이마운트, 128.3 x 89 cm. 사진 갤러리조은
권민호, 야로슬라브스키 상가, 2023, 트레이싱지에 연필, 목탄, 포토콜라쥬, 터펜타인 와시, 아세톤 와시, 건축용 복사, 드라이마운트, 128.3 x 89 cm. 사진 갤러리조은

한국 사회의 특수성을 이야기하는 또 다른 작가 권민호는 ‘한국 근현대 풍경화’를 표현한다. 현재 우리가 누리는 문화의 기틀이 산업화라고 생각한 작가는 한국 산업화 시대 역사와 미학을 건축 도면의 형태로 압축적으로 표현한다. 이번 전시에서 공개될 작가의 최신작 ‘야로슬라브스키 상가’는 분단국가라는 한국 근현대를 은유적이고 환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한다. 작가의 영국 유학 시절 한국 귀국 여행은 사치였다. 그럴 때마다 작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로 북한을 거쳐 한국에 가는 방법을 상상했다. 런던에서 모스크바까지 이동, 거기서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 도착, 다시 배로 갈아타고 한국 혹은 북한으로 가는 상상. 이 가상의 여정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작가는 웅장한 마음 벅참을 느낄 수 있었다. 야로슬라브스키 역은 시베리아 횡단 열차가 출발하는 시작점이다. 유럽풍의 야로슬라브스키 역에 한국의 근대 상가 간판 이미지들이 여러 겹의 레이어로 중첩된다. 그리고 곰 인형 모양의 애드벌룬과 같이 한국문화의 ‘귀여움’을 상징하는 부조화스러운 요소가 등장하며, 분단에서부터 비롯된 한국 근현대 산업화 시대 미학이 가진 복합성과 모순성이 총체적인 방식으로 표현된다.

영국 센트럴 세인트 마틴스 예술대학 학사 그리고 영국 왕립예술대학 석사 졸업 후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권민호는 2020년 청주 국립 현대 미술관 개인전 <회색 숨>을 비롯, 2020년 MMCA 국립현대미술관, 2020년 인천국제공항, 2022년 용산역사박물관, 2022년 김중업건축박물관 등 국내 주요 소장처에 연이어 작품이 소장되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 오고 있다.

정성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For a better future,  2023, Oil on canvas, 162.2x97.0cm. 사진 갤러리조은
정성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For a better future, 2023, Oil on canvas, 162.2x97.0cm. 사진 갤러리조은

정성준은 한국 사회를 넘어 ‘환경 오염’이라는 전 지구적 화두를 유머러스한 조형 언어로 풀어낸다.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재치 있는 방식으로 풀어내는 정성준 작가는 북극곰, 펭귄, 코끼리 같은 희귀동물들이 버스나 트램(Tram)을 타며 세계 여러 도시들을 유람하는 특별한 여정을 선사한다. 이번 전시를 통해 트램, 스타벅스 그리고 대형 코끼리 시리즈까지 신작 4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작가의 대형 신작, ‘더 나은 미래를 위해 For a better future’에서 코끼리가 회색빛의 풍경에서 홀로 걸어 나온다. 언뜻 보면 아름다운 안개 같은 모노톤의 배경은 사실 공장 굴뚝의 매연이다.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는 듯한 코끼리의 발걸음이 처연하면서도 어쩐지 희망적이다.

중국 최대 부동산 회사 완크어Vanke가 대형 코끼리 작품(200 x 650cm)을 소장한 데 이어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 재단 Fondation Louis Vuitton에서 트램 작품을 소장하며 아시아를 넘어 세계 미술계의 뜨거운 주목을 받고 있다. 작가는 중국 중앙미술학원에서 창립 100년 이래 최초의 외국인 수석 졸업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며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활발한 작업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오영화, 집사의 퇴근 시간,  2023, Oil on canvas,  80 X 55 cm. 사진 갤러리조은
오영화, 집사의 퇴근 시간, 2023, Oil on canvas, 80 X 55 cm. 사진 갤러리조은

정성준 작가가 거시적인 관점에서 인간과 동물의 ‘공존’을 다룬다면 오영화 작가는 일상 속 작은 존재인 ‘동네 고양이’를 통해 공존을 표현한다. 문화적, 언어적 소통의 단절로 외로웠던 중국 유학 시절 키우던 반려묘들에게 커다란 위안을 받는다. 그의 최신작 ‘집사의 퇴근 시간’에서 고양이가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린다. 작가는 외출하거나 며칠 동안 작업실을 비우게 될 때면 홈캠을 설치했다. 신나게 뛰어놀 것 같았지만 화면에 비춰지는 반려묘들은 돌아오지 않은 작가를 기다리며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작가의 작품 속 고독한 고양이는 유학 시절 홀로 작업실에서 작업을 해왔던 작가 자신의 자화상이기도 할 것이다. 유독 고양이에게 부정적인 인식이 있는 한국에서 동네 고양이들은 사회적 외면을 받는 존재이다. 인적이 드문 어두운 장소를 찾아 다니는 천덕꾸러기의 신세를 면치 못한다. 오영화 작품 속 빛과 그림자는 바로 사회적 약자로서 고양이에 대한 인식에 대한 메타포이다. 의도적으로 아름답고 햇살 가득한 유럽풍의 배경에 고양이를 그리는 이유는 본인의 작품을 통해 고양이가 소외되는 어둠 속 약자가 아니라 소중하고 아름다운 공존의 대상으로 인식되길 바라는 작가의 마음일 것이다.

김상인, 개와 함께 있는 피카소, 2023, Oil on canvas, 72.5 x 60.5 cm. 사진 갤러리조은
김상인, 개와 함께 있는 피카소, 2023, Oil on canvas, 72.5 x 60.5 cm. 사진 갤러리조은

 

김상인 작가는 소소한 일상 속 사물 혹 사람을 작가만의 독창적 언어로 표현한다. 피카소에 영향을 받은 작가의 작품은 평면적이면서도 입체적이다. 대상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재해석하여 평면의 캔버스에 재구성하는 입체파처럼, 최신작 ‘붉은색 색소폰 연주자’와 ‘트럼펫을 부는 아이’ 안에서 연주자들은 실제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역동적인 손과 움직임, 그리고 음악의 선율과 함께 일그러지는 표정들이 작가만의 자유롭고 과감한 방식으로 재구성되어 표현된다.

김상인은 경희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를 졸업하고 <에스콰이어>, <GQ>, <아레나>와 같은 잡지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을 시작했다. 2018년 온그라운드에서의 첫 개인전 <Keep 391 Weird>를 기점으로 2022년 뮤직 스페이스 마케라타, 2023년 미들맨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거치며, 본격적으로 작가로서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있다.

《불혹, 미혹하다 5th》전은 7월 1일까지 갤러리조은(서울사 용산구 이태원로 55가길 3)에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