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에 필요한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기획 개발하는 '디어얼스' 권용진 대표. 현재 은평구 녹번동에 제로웨이스트샵 디어얼스도 운영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일상생활에 필요한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기획 개발하는 '디어얼스' 권용진 대표. 현재 은평구 녹번동에 제로웨이스트샵 디어얼스도 운영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다람쥐는 식량이 떨어질 겨울을 대비해 숲속 이곳저곳에 도토리를 숨겨두지만, 기억력이 좋지 않아 연구 결과 땅에 묻은 도토리의 95% 이상 찾지 못한다고 한다. 이처럼 잃어버린 도토리들이 싹을 틔워 참나무를 숲의 주인공으로 만든다.

“다람쥐가 의도했든 아니든 풍성한 숲을 만든 것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무심코 하는 행동이 지구에 보내는 다정하고 평온한 메시지가 되었으면 합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제로웨이스트 제품을 직접 기획‧생산하는 브랜드이자 제로웨이스트샵 ‘디어얼스’를 경영하는 권용진 대표가 다람쥐와 도토리를 로고로 쓰는 이유이다. 그는 디어얼스를 통해 지구와 공존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세상에 제안하고 있다.

올해 35살인 권 대표는 대학에서 영양학을 전공하고 병원에서 환자에게 식이요법과 영양 상담을 하고 헬스케어 기업에서 기능성 식품이나 헬스케어 서비스를 개발했다. “제가 배웠고 하는 일이 그런 방면이다 보니 사람들이 일상에서 건강하게 생활하는 것에 대한 고민을 늘 했죠. 그런 와중에 문득 기사를 보다가 의문이 들었어요. 보통 건강을 위해 영양제와 특정 음식을 챙겨 먹는데 쓰레기 문제도 그렇고 건강하지 못한 환경에서 과연 그것만으로 우리가 건강해질 수 있을까 하고요.”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샵 디어얼스. 권용진 대표의 끊임없는 고민과 SNS에서 소통하는 '프롬'들의 노력이 함께 만들어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샵 디어얼스. 권용진 대표의 끊임없는 고민과 SNS에서 소통하는 '프롬'들의 노력이 함께 만들어낸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그는 주변 환경부터 건강하게 만드는 것에 관해 찾아보면서 제로웨이스트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고, 자신이 실천하는 것을 SNS에 올렸다. “혼자서 환경 문제에 관해 뭘 할지 생각하다 종이컵에서 텀블러로 바꾸고 용기를 가지고 식료품매장에서 장을 보는 것과 같은 사소한 일들을 올렸죠. 2018년 당시 국내에 제로웨이스트 제품이 거의 없어서 해외에서 구입한 제품을 사용하고 솔직한 의견도 올렸고요. 어느새 팔로워가 늘고 같은 관심을 가지고 제게 이런저런 문의를 하는 분들이 많아져서 함께 의견을 나누었죠. 그러다 필요한 걸 직접 만들어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창업 전 첫 기획으로 고체 치약을 선택하고 생산 기술을 보유한 기업을 물색했을 때 전국에 단 1곳밖에 없었다. 친환경 재료와 재활용이 용이한 패키지 등 초기 투자 비용의 부담이 너무나 커서 포기해야만 하는지 고심하면서 1년~1년 반 정도 준비 기간을 거쳤다.

그는 2020년 5월 첫 상품 론칭과 더불어 매장을 지하철 가좌역 인근(현재는 은평구 녹번동으로 이전)에 열었다. 국내에서는 더피커, 지구샵에 이어 세 번째 제로웨이스트샵이었다.

권용진 대표는 SNS를 통해 같은 관심을 가진 팔로워들과 직접 묻고 소통하며 제품 검증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 속에서 제품 개발의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권용진 대표는 SNS를 통해 같은 관심을 가진 팔로워들과 직접 묻고 소통하며 제품 검증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자신의 생활 속에서 제품 개발의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디어 얼스(Dear. Earth 친애하는 지구에게)’라는 브랜드는 우리가 사는 행성, 지구를 인격체라는 관점에서 편지를 썼을 때 우리가 과연 어떤 메시지를 전할까 라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매일을 버티는 지구에게 우리가 선택하는 물건, 행동들을 통해 메시지를 보낸다는 의미입니다. 저희와 온라인상에서 소통하는 분들은 지구에 편지를 보내는 사람이란 의미에서 ‘프롬(from)’님이라고 부르죠.”

왜 첫 제품이 치약이었을까? “치약 튜브가 플라스틱이고 여러 원료가 들어간 합성소재인데다 크기가 워낙 작아 재활용이 거의 불가능해요. 분리수거장에서 일일이 분류해야 하는데 손바닥보다 작은 크기는 사실상 분류가 안 되거든요. 플라스틱을 크기와 관계없이 재활용하려면 5~10종류로 세밀하게 분리배출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고 통상 일반 쓰레기로 버리는 경우가 많고요.”

초창기 난관은 곳곳에 있었다. 기존에 없던 제품이거나 새로운 형태라 소비자의 반응을 참고할 만한 사례가 없었다. “사례가 없다면 직접 물어보기로 했죠. 지금은 ‘도토리 실험단’이라고 부르는데 초창기 ‘다회용 화장솜’ 개발 때부터 샘플을 많이 만들어 SNS에서 참가자를 모집해 검증단계를 거쳤어요. 실제 사용하면서 소재에 대한 의견, 촉감, 계속 사용할 때 불편한 점, 좋은 점 등 다양한 의견을 취합하고 반영해서 개선한 제품을 출시해나갔죠.”

디어얼스는 일상에서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주력상품으로 한다. 사진 디어얼스 누리집.
디어얼스는 일상에서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생활용품을 주력상품으로 한다. 사진 디어얼스 누리집.

그가 직접 기획하는 디어얼스 제품들은 참신한 아이디어와 꾸준히 사용하고 싶은 만족도로 호평받고 있다. 주력상품은 비누와 치약 등 욕실용품과 세제, 핸드타올처럼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사용하는 생활용품이다.

“우리가 자주 쓰는 만큼 쓰레기도 많이 나오죠. 친환경 세제도 내용물만 좀 친환경이고 용기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아서 가장 밀접한 것부터 바꿔줄 필요가 있죠. 그리고 매일 쓰는 걸 바꿔야 자신이 바꾼 행동이 환경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직접 느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일상과 밀접한 상품 라인업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권 대표는 자신의 생활에서 제품 개발의 영감을 얻는다. “최근에 주방용 손비누를 개발했어요. 주부라 요리할 일이 많은데 일회용 장갑을 사용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죠. 직접 손으로 요리하다 보니 냄새도 잘 배고, 조리 도중에 손 씻을 일이 꽤 많아요.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께서는 급하니까 주방 세제로 그냥 손을 씻더군요. 원래 물에 풀어서 쓰는 용도라 피부에도, 환경에도 안 좋죠. 그래서 개발했는데 도토리 실험단도 처음에는 필요하겠다는 분이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써보고는 주방에서 정말 유용하더라. 계속 써야겠다고 하더군요.”

주방에서 많이 사용하는 식품 보관 일회용 랩을 대신하는 비즈왁스랩. 천연 밀랍을 유기농 면에 녹여서 식품을 냉장, 냉동 보관할 수 있고 세척해 재사용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주방에서 많이 사용하는 식품 보관 일회용 랩을 대신하는 비즈왁스랩. 천연 밀랍을 유기농 면에 녹여서 식품을 냉장, 냉동 보관할 수 있고 세척해 재사용한다. 사진 강나리 기자.

‘디어얼스’를 운영하는 핵심 철학은 무엇일까? “처음에는 포장을 없애는 걸 1순위로 삼았어요. 현대인의 생활에서 포장을 없애면 법적 규제도 있지만, 유통하거나 실제 사용하는데도 어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환경 문제를 일으킬 요소를 최소화하고 쓰기 편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죠. 그러다가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걸쳐 우리의 중심이 될 철학을 3개의 키워드로 정리했어요.”

특정 정답을 유도하기보다 각자 해답을 찾아가도록 제시하고자

첫 번째 키워드는 순환과 지속가능성. “폐기물이 다시 자원이 되어 순환할 수 있느냐 하는 것과 지구환경의 지속가능성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얼마나 일상에서 실천을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죠.”

두 번째 키워드는 예방중심의 환경 디자인. “액체를 담으려면 용기가 필요한데 재활용 가능한 플라스틱, 생분해 플라스틱이 아니라 아예 사용하지 않는 법을 기획 단계에서 고려하는 겁니다. 고체 샴푸, 고체 치약처럼 문제를 발생시키는 요소 자체를 없애는 방법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죠.”

디어얼스의 철학을 담은 3가지 키워드. 사진 디어얼스 누리집.
디어얼스의 철학을 담은 3가지 키워드. 사진 디어얼스 누리집.

세 번째 키워드는 생명의 공존이다. “지구상에 여러 생명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살아갈 방법을 찾는 것이죠. 사실 사람마다 생활 방식이나 중요시하는 게 다른데 환경 분야에서 때로 극단적인 선택이나 생활 방식을 강조하는 분들도 있어요. 개개인에게 와 닿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알려주는 게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여러 이유로 배달 음식을 자주 먹는 경우, ‘플라스틱 배출이 많아 안 된다’고 하기보다 ‘재활용 가능한 패키지로 배달되는 피자나 통닭은 어때?’라고 말이죠. 많은 사람이 작은 변화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게 환경에는 더 큰 도움이 되니까요. 특정 정답을 유도하기보다 각자 해답을 찾을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일까? “초기부터 온라인 판매를 하면서 택배 서비스를 했는데 환경에 가장 해가 덜 가는 고가高價의 박스를 사용했죠. 비용도 고민이 되고, 멀쩡한 박스를 결국 버릴 것이라는 생각에서 ‘택배 박스를 한번 더 사용하겠다’고 공지했어요. 이게 과연 될까 했는데 흔쾌히 모아서 가져다주시는 거예요.

발송할 때 ‘재사용 박스’라는 도장과 함께 혹시 이로 인해 불편하거나 제품 파손이 생기면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지금까지 그런 불만을 제기한 분이 없었어요. 우리가 어떤 제품을 기획하고 판매하는지 대부분 이해하시지만 박스를 가져다 주는 분들, 매번 알맞은 재활용 박스를 찾는 저희들, 그걸 기분 나쁘지 않게 이해하고 받아주는 분들까지 어느 한쪽이 호응하지 않으면 계속하기 어려웠겠죠. 함께 만든 에피소드라고 할 수 있어요.”

여행자를 위한 가벼운 여행 키트. 고체 샴푸와 린스, 세안 및 바디용 비누가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여행자를 위한 가벼운 여행 키트. 고체 샴푸와 린스, 세안 및 바디용 비누가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권 대표는 디어얼스만의 특색있는 제품으로 다회용 화장솜과 고체 샴푸, 린스, 세안 및 바디용 비누로 구성된 여행용 어메니티 세트를 꼽았다. “저도 화장솜을 하루에 5~6개 정도로 많이 썼죠. 화장솜 원료인 목화를 재배하는 데 비료와 물이 많이 들어 환경에 좋지 않아서 개발했는데 고객들이 지금도 신기해합니다. 여행용 세트는 혼자서는 2주, 둘이서 1주 정도 사용할 분량이라 충분해서 호응이 좋은 편이고요.”

화장을 하면서 수없이 많이 사용하는 화장솜을 대신하는 다회용 화장솜. 사진 강나리 기자.
화장을 하면서 수없이 많이 사용하는 화장솜을 대신하는 다회용 화장솜. 사진 강나리 기자.

정부나 지자체 지원에 따라 제로웨이스트샵이 늘었다가 경영난에 폐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가운데 3년 넘게 꾸준히 디어얼스를 경영할 수 있는 노하우는 무엇일까? “저희도 여전히 시행착오를 겪는 중이죠. 제로웨이스트샵 대부분 편집샵 형태로 운영되는데 친환경 제품을 판다고 사람들이 많이 와서 구매하지는 않거든요. 시장에서 각자 경쟁력이 필요하죠. 저희는 브랜드만의 기준을 가지고 직접 제품을 만드는 방향으로 잡았기 때문에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았나 합니다. 직접 제조함으로써 리스크를 안고 가기도 하지만 대량 주문이 있을 때 좀 더 경쟁력 있는 가격으로 제공할 수 있고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면에서 장점을 갖고 있죠.”

제로웨이스트에 관한 정부 정책에 관해 권 대표는 “리필스테이션 등 해외보다 강한 규제를 하고 있는데 만일의 사고를 대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합니다. 저는 규제를 풀어 달라는 게 아니라 환경 문제나 헬스케어처럼 건강한 일상을 이어가는데 굉장히 중요한 분야에서 중장기적으로 일관성 있게 정책을 추진해나갔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정부의 기조나 사업 방향에 따라 지원이 줄었다 늘었다 하고 관심이 있다가도 흐지부지되면서 폐업하는 곳이 많아 안타깝습니다. 꾸준히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었으면 하죠.”

제로웨이스트샵 디어얼스에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매대는 옛날 종이를 담아두던 지류함으로 고풍스럽다. 사진 강나리 기자.
제로웨이스트샵 디어얼스에 들어서면 처음 보이는 매대는 옛날 종이를 담아두던 지류함으로 고풍스럽다. 사진 강나리 기자.

앞으로 권용진 대표가 추진하고 싶은 분야는 ‘먹거리’이다. “제 전공 분야여서 항상 관심이 있어요. 현재 비건식 중에는 과도한 가공 제품도 많은데 과연 괜찮은지 모르겠어요. 생명의 공존 측면에서 건강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식생활에 적합한 먹거리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환경친화적인 삶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초심자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을 부탁했다. “환경 문제 해결에 노력하고 싶은 의지는 좋지만 부담은 내려놓았으면 합니다. 한번만 실천하거나 한 달만 하고 끝낼 게 아니라 평생 살면서 해야하는 것이니까요. ‘이건 나도 충분히 할 수 있겠어’라고 쉽게 느껴지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추천하고 싶습니다. 정답은 없어요.”

은평구 녹번동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샵 디어얼스는 매주 수요일부터 금요일 12시 30분~19시까지, 토요일 10시~14시까지 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