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주택가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샵 '늘보따리'. 사진 강나리 기자.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 주택가에 위치한 제로웨이스트샵 '늘보따리'. 사진 강나리 기자.

서대문구 조용한 주택가에 무인판매 제로웨이스트숍 ‘늘보따리’가 있다.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기자기한 친환경 소품들과 세제, 샴푸, 린스 등 다양한 생필품을 덜어갈 수 있는 리필 스테이션이 갖춰져 있다.

안정감을 주는 조명 아래 작은 보물창고처럼 꾸며놓은 공간이 매력적이다. 유리문 밖에는 책장을 활용한 ‘아나바다 우리동네 나눔장터’를 마련해 오가는 이들 누구나 이용할 수 있게 했다.

2021년 10월 개장한 ‘늘보따리’의 주인장은 현재 대학교 4학년 재학 중인 장예리미 씨와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어머니 이윤이 씨. 가게 이름이 늘보따리인 이유는 ‘나무늘보를 꼭 닮은 딸이 늘 보따리를 들고 다닌다’라고 해서 지었단다.

무인 판매 제로웨이스트샵 '늘보따리'를 운영하는 장예리미 씨. 사진 강나리 기자.
무인 판매 제로웨이스트샵 '늘보따리'를 운영하는 장예리미 씨. 사진 강나리 기자.

- 무인 매장 제로웨이스트샵은 독특한데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면.

조용한데 손님들끼리만 있으니까 편안하게 인증샷도 찍고 수다를 떨고 가기도 해요. 한번은 매장 가운데서 신나게 춤을 추는 분도 있더라고요. (하하) 연남동과 인접해서 외국인도 오는데 스마트폰으로 이미지를 찍으면 번역해주는 앱을 활용해서 혼자 상품 결재도 잘하고 가세요.

- 왜 무인 판매를 생각했나?

처음에는 엄마랑 교대로 나와서 맞이했는데 이곳이 워낙 협소해서 직원이 가까이에 있는 게 손님들에게는 부담스러운 듯하더라고요. 친한 인근 가게 사장님이 무인 매장을 권유했어요. 저도 엄마도 본업이 있기에 바로 전환했고 벌써 1년이 넘었어요.

지금까지 물건을 그냥 가져가는 사람은 한 번도 없었죠. 밖에 아나바다 나눔장터도 버려진 공간에 방치하다시피 책장을 세워두었는데 다들 알아서 소소한 물품을 기증해서 채우고 또 가져가면서 꾸준히 순환되고 있죠.

매장 밖 주차 공간 한쪽에 마련된 '아나바다 나눔장터'.  사진 강나리 기자.
매장 밖 주차 공간 한쪽에 마련된 '아나바다 나눔장터'. 사진 강나리 기자.

“친환경 제품은 비싸고 불편하다는 편견 줄었으면 한다”

- 처음 친환경 매장 운영 아이디어를 낸 것은?

저예요. 평소 환경에 관심이 많아 대학교 2학년 때 환경 관련 온라인 미션 활동에 참여했어요. 매주 주어지는 미션 중 하나가 제로웨이스트샵들을 방문하는 것이었죠. 저와 관심사가 같은 엄마가 동행했어요.

막연하게 친환경 제품은 쓰기 불편하거나 비쌀 것으로 생각했는데, 가보니 사실 재질만 다를 뿐 사용은 마찬가지인 상품도 많고, 저렴한 것도 많고요. 우리가 모르는 친환경의 세계가 있더라고요. 혼자서 프로젝트를 하는 것보다 친환경 가게를 하면 많은 사람에게 환경에 대해 알릴 수 있어 훨씬 더 영향력이 있지 않을까 했죠. 저는 뭐 하나에 꽂히면 해 봐야 하는 성격인데 엄마도 흔쾌히 동의해서 바로 시작했죠.

- 매장 구성이 알차고 깔끔하면서 예쁘다. 인기 있는 상품은?

조명이나 배치 등 인테리어는 엄마가 디자인 감각을 살려서 하셨고, 손 글씨로 사용법과 가격표, 안내문을 쓴 것은 저예요. 상품은 친환경 제품이지만 비싸지 않아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으로 엄마와 제가 의논해서 선택해 갖춰놓았어요. 여기 제품은 직접 사용해 보고 있죠. 특별히 인기 있다기보다 꾸준하게 나가는 건 세제, 섬유유연제, 샴푸, 린스 등을 용기에 덜어가는 리필 스테이션이에요. 주변의 주민들이 단골입니다.

동네 주민들은 리필 스테이션을 주로 이용한다. 리필 스테이션에 비건 화장품을 도입하기 위해 장예리미 씨는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동네 주민들은 리필 스테이션을 주로 이용한다. 리필 스테이션에 비건 화장품을 도입하기 위해 장예리미 씨는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사진 강나리 기자.

-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인데 홍보는 어떻게 하는지.

인스타그램, 블로그로 홍보하고 있고 스마트 스토어를 운영하고 있어요. 봄, 여름, 가을에는 잠수교 등에서 열리는 플리마켓에 참여하기도 하고요.

- 이곳 리필 스테이션에는 비건 화장품이 있다.

작년에 리필 스테이션 확장을 고민하다가 비건 화장품을 도입하려고 ‘맞춤형 화장품 조제 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했어요. 합격률이 25%인데 올해는 더 강화된다고 하네요. 화장품은 자격이 있어야 판매를 할 수 있거든요. 화장품에서 개인적인 취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내 피부에 직접 닿는 제품이기 때문에 인체 유해 물질이 첨가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지난달에 처음 비건 화장품으로 유명한 아로마티카의 스킨을 들여놓았는데 반응이 좋으면 비싸지 않으면서도 무해한 제품 위주로 추가할 예정이에요.

- 환경에 관심이 많은데 전공이 궁금하다. 장래 계획은 무엇인가?

조경학이 전공이고 도시재생 분야에 관심이 있어요. 조경도 사실 공원이나 건축설계에서 녹지율을 높이는 거잖아요. 조경에서도 환경을 생각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장래 계획이라면 제가 크게 계획을 세우고 사는 편은 아니라 목표를 정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지구환경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살아보려 합니다.

“20대 환경보다 환경을 지키는 자기 모습에 관심” 날카로운 지적

- 요즘 20대 청년들이 환경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저는 20대가 그렇게 환경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환경보다는 환경을 지키는 자기 모습에 관심이 있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폐현수막으로 가방을 만들어 유명한 프라이탁 가방을 메고는 일회용컵에 아이스 아메리카를 들고 다니는 모습이 가장 아이러니예요. 별생각이 없죠. 아직은 부족하다고 느껴요.

'늘보따리' 가게의 마스코트는 장예리미 씨의 별명과 같은 나무늘보이다. 그는 아직 우리 사회의 환경인식이 부족하고 갈 길이 아직 멀다고 소신을 밝혔다. 사진 강나리 기자.
'늘보따리' 가게의 마스코트는 장예리미 씨의 별명과 같은 나무늘보이다. 그는 아직 우리 사회의 환경인식이 부족하고 갈 길이 아직 멀다고 소신을 밝혔다. 사진 강나리 기자.

- 친환경 소비 외에 환경을 위해 본인이 하는 일은?

친환경 제품을 소비하는 것만큼 오래 사용하는 것도 당연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당근마켓 같은 중고 거래 앱을 자주 이용해요. 여기서 팔리지 않으면 버려질 것인데 제가 사면 새롭게 쓸 수 있고 그만큼 새로 생산하지 않아도 되고요. 가방도 엄마 친구분께 물려받은 것도 많고 에코백을 주로 써요. 새활용도 하는데 해가 바뀌어 버리는 탁상용 다이어리의 탄탄한 삼각판지에 남는 망사 천을 씌워서 귀걸이 거치대를 만들어 벌써 3년째 쓰고 있어요.

-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환경 인식이 개선되었다고 보는가?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 하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에요. 정부가 일회용컵 보증금제를 작년 6월 시행에서 12월로 유예하고, 또 1년간 참여형 계도기간이라고 또 한 발짝 물러섰죠. 친환경 소비 적응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고 그냥 직진하면 되는데 너무나 과한 배려를 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 눈치를 많이 본다고 생각해요.

또, 기업은 자기 PR을 위해 보여주기식 친환경을 하기도 하고요. 소비자는 배달 음식에 붙는 배달료 5천 원은 별로 신경 쓰지 않으면서 텀블러를 들고 다니지 않아 붙는 환경보증금 300원에 예민합니다. 그래서 갈 길이 한참 멀었다고 봅니다.

'늘보따리' 가게 안 친환경 제품들. 환경 관련한 도서 대여도 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늘보따리' 가게 안 친환경 제품들. 환경 관련한 도서 대여도 하고 있다. 사진 강나리 기자.

- 친환경 제품 중 이건 꼭 써보라고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고체 치약이요. 늘 사용하던 방식과 달라 생소하다 보니 도전을 잘 안 하더라고요. 치약의 튜브가 플라스틱일 뿐만 아니라 치약에 들어가는 알갱이에도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되어있어요. 우리가 1주일간 먹는 미세플라스틱의 양이 카드 한 장이라고 합니다. 사용하는 게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니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 소비자 또는 잠재소비자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환경호르몬이 이슈죠. 환경호르몬은 여성호르몬과 기작(機作, 생물의 생리적인 작용을 일으키는 기본 원리)이 비슷해 대신 자리를 차지하면서 내분비계 교란을 일으켜 여성 암 발생률이 높아졌다고 해요. 여성호르몬은 남자도 보유하고 있는 것이어서 모두의 건강을 해치고 있죠. 아이들의 아토피가 증가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요즘은 자기관리의 시대라고 해요. 멋진 몸을 만들어 보디 프로필을 찍으며 자기표현을 하기도 하고요. 전 환경 보호가 지구를 위한 게 아니라 진짜 자기관리라고 생각해달라고 당부하고 싶어요.

서울 서대문구 창천동에 위치한 친환경 가게 ‘늘보따리’는 매주 수요일을 제외하고 365일 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