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 공연 장면. 사진 김경아 기자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 공연 장면. 사진 김경아 기자

‘나이가 든다’는 것, 조금 직설적으로 ‘늙어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인간에게, 특히 여자에게.

두산아트센터는 “두산인문극장 2023: Age, Age, Age 나이, 세대, 시대”의 두 번째 공연 프로그램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는 ‘나이 듦, 여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노년시에 접어들기 시작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나이 듦’의 의미를 돌아본다.

연극 <20세기 블루스>는 미국 극작가 수잔 밀러(Susan Miller)의 작품으로 60대에 진입한 여성 4명을 통해 나이 듦에 관해 이야기한다. 2016년 미국 초연 당시 날카로운 관찰력으로 존재를 부정당하는 여성들을 섬세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을 배경으로 하지만, 미국 못지않게 여성을 존중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도 이 부분에 공감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 공연 장면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 공연 장면

유명 사진작가인 60대 여성 대니는 뉴욕현대미술관(MoMA) 개인 회고전을 앞두고 있다. 자신의 지난 작업을 가장 잘 표현할 사진은 무엇일까? 대니는 젊은 시절 구치소에서 만난 친구들과 매년 한 번 만나 사진을 남겼다. 40년간 꾸준히 촬영한 친구들의 사진을 이번 회고전에 전시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하지만 대니의 바람과 달리 친구들은 쉽게 동의하지 않는다.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나? 부동산 중개인 실은 남편과 별거 중이다. 빚을 지지 않고 먹고살기 위해 무던히 애쓴다. 사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젊게 보이는 게 중요하다. 맥은 업계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저명한 저널리스트이다. 그런데 신문산업 자체가 위기라 신문사에서 내몰리는 처지에 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으로 여성 파트너와 동거한다. 개비는 동물병원을 운영하는 열정이 넘치는 수의사이다. 남편과 보스턴에 거주하는데, 남편이 먼저 죽을 것에 대비해 홀로 사는 연습을 한다. 남편은 아직 건강하다.

사진작가 대니의 사정도 썩 좋다고 하기 어렵다. 91세 대니의 어머니 베스는 요양원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 치매 증상이 있다. 대니의 양아들 사이먼은 진보 성향의 케이블 뉴스 프로그램에서 일한다.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 공연 장면. 사진 김경아 기자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 공연 장면. 사진 김경아 기자

사실 성차별, 외모지상주의, 이혼, 사별, 유방암, 성소수자, 모성애 등 노인이 아니더라도 여성이 겪는 문제일 것이다. 이런 문제들이 나이가 들면서 좀더 현실의 문제가 되는데, 이를 극복하기에는 몸과 마음이 늙어서 심각해지는 것은 아닌지. 게다가 사회는 노인들에게 친절하지 않다.

이 극을 번역한 최유솔 번역가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지구 반대편에 사는 대니, 맥, 개비, 실 역시 나이 듦에 대하여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두려움과 걱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동지애를 주는 한편, 씁쓸함을 느끼게 하기도합니다. 저보다 앞서간 여자들이 가진 불안과 두려움을 한 글자 한 글자 옮기면서 저 역시도 마음 한편에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는 막연한 거부감과 마주해야 했습니다. 우려곡절 끝에 마침내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사진을 공개한 것은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체념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마주할 용기일 것입니다.”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 장면. 사진 김경아 기자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 장면. 사진 김경아 기자

미국 초연 당시 노년 시기에 접어든 여성들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설정과 매력 넘치는 캐릭터들로 관객들의 큰 호응과 공감을 얻었다. 이번 연극에서는 여기에 탄탄한 연기로 무대와 매체를 넘나들며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 박명신 강명주, 성여진, 이지현, 우미화가 60대에 접어든 친구들로 출연한다. 또한 이주실, 류원준이 대니의 가족을 연기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풍부한 앙상블을 선보인다.

이 연극은 가족과 함께 보면 아주 좋을 작품이다. 나이든 이들에게는 현실의 나를, 젊은이들에게는 미래의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또한 자녀들은 알 수 없는 ‘노인’인 부모의 삶을 보게 될 것이다. 윤색과 연출을 한 부새롬 연출은 “작품을 준비하면서 ‘노인’인 엄마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부새롬 연출은 2021 『공연과 이론』이 선정한 ‘작품상’ 연극<달콤한 노래>, 2016 『한국연극』이 선정한 ‘공연 베스트 7’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을 연출했다.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 공연 장면. 김경아 기자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 공연 장면. 김경아 기자

<20세기 블루스>는 관객들의 관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전체 기간 동안 다양한 접근성(Barrier-free)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연 중 대사 및 소리 정보, 그림기호가 표시되는 한글자막 해설 / 장면 전환이나 인물의 등·퇴장, 표정, 몸짓 등 대사 없이 처리되는 장면에 대한 음성해설 / 관람 전 공연의 무대 모형을 직접 만져보며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감각 경험을 할 수 있는 터치투어를 진행한다. 작품 소개, 무대나 조명 등 시각적 요소를 포함한 공연 관련 안내 사항은 음성 혹은 문자 형식의 자료로 제공한다.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및 관람 당일 로비에 비치된 QR 코드를 통해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를 6월 17일까지 두산아트센터 Space111에서 공연한다. 6월 11일(일) 오후 3시 공연 후 관객과의 대화가 진행된다.

한편 ‘두산인문극장’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 예술적 상상력이 만나는 프로그램으로 올해 10년째 진행하고 있다. 2013년 ‘빅 히스토리’를 시작으로 ‘불신시대’, ‘예외’, ‘모험’, ‘갈등’, ‘이타주의자’, ‘아파트’, ‘푸드’, ‘공정’까지 매년 다른 주제로 이야기해 왔다. 2023년 두산인문극장의 주제는 ‘Age, Age, Age 나이, 세대, 시대’다. 4월부터 7월까지 4개월에 걸쳐 사회학과 인문학 등 각 분야의 강연자를 초청하는 강연 8회를 비롯해 공연 3편, 전시 1편을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