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쪽에서 바라본 가거도   [사진 해양수산부]
남쪽에서 바라본 가거도 [사진 해양수산부]

전남 신안군 “가거도(可居島)”는 조선시대에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가가도(可佳島)로 불리다가 1896년부터는 ‘가히 사람이 살 만한 곳’이라는 의미의 가거도(可居島)로 변경되었다. 이후 대일항쟁기에 소흑산도로 바뀌었다가 2008년부터 다시 가거도란 지명을 사용한다.

“가거도(可居島)”에는 우리나라 최서남단 영해기점이 있다. 영해기점은 우리나라 영해의 폭을 측정하는 시작점으로 영해기점이 있는 섬은 영해를 지키고 관할해역을 이용·보전·관리할 수 있는 거점이기도 하다. 영해의 시작점으로 유인도 7개, 무인도 13개, 육지부 3개로 모두 23개이다.

해양수산부와 행정안전부는 “2023년 계묘년(癸卯年) 올해의 섬”으로 최서남단 영해기점이 있는 이 “가거도(可居島)”를 선정하였다. 해수부와 행안부는 영해기점 섬의 해양영토적 가치를 알리고 소개하기 위해 2023년부터 2029년까지 매년 1월에 영해기점 섬(유인도)을 선정하여 홍보하기로 하고 올해의 섬으로 “가거도”를 선정한 것이다.

대한민국 최서남단 표석(가거도항)  [사진 해양수산부]
대한민국 최서남단 표석(가거도항) [사진 해양수산부]

대한민국 최서남단 영해기점 섬인 가거도의 면적은 9.71㎢, 해안선 길이는 약 22km이다. 섬 전체가 기암괴석과 후박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있다. 인근 해역은 난류인 제주해류가 통과해 돌돔, 감성돔, 농어 등 다양한 어종이 서식한다.

왜구가 침범할 때 이 섬이 적로(賊路)의 첫길이 된다고 하여 공도(空島) 정책을 시행하여 거주하는 백성들을 이주시키고 그 땅을 비워두었다. 1580년경 여씨(余氏)가 최초로 이주하여 왔다고 구전되고 있으나 그 내역은 알 수가 없다. 이후 제주고씨, 평택임씨가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 2021년 12월 행안부 기준으로 303세대 426명의 주민이 거주한다.

가거도 백년등대  [사진 해양수산부]
가거도 백년등대 [사진 해양수산부]

1978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된 가거도는 옛날부터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의 해상 길목이자 경계를 이루는 섬이다. 신라 때에 배로 중국에 갈 때 이 가거도를 거쳐 갔다. 이러한 중요한 지리적 위치 때문에 1907년 가거도 등대를 세웠고, 등대는 가거도의 북쪽 끝에 위치하며, 북서쪽으로 돌출된 곳에 자리한다. 1935년 유인등대로 증축한 등대로써 대한제국시기의 정형적인 모습의 등대에서 출입구의 포치와 원뿔꼴의 등롱 그리고 등탑 내부의 직선형 계단으로 변화된 모습, 등대의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대적 변화 양상, 일제 강점기적 특성이 잘 나타나 있는 등 등대건축의 변천사를 보여주는 중요한 등대유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등대는 우리 영해로 들어서는 선박에게 대한민국임을 알려주는 동시에 인근을 항해하는 선박의 안전까지 책임지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장군바위와 동쪽 몽돌해안   [사진 해양수산부]
장군바위와 동쪽 몽돌해안 [사진 해양수산부]

가거도는 뛰어난 풍경을 자랑하는데, 그중에서도 독실산 정상과 회룡산장군바위, 돛단바위·기둥바위, 섬등반도(2020년 8월 문화재청 명승 제117호 지정)의 절벽 망부석, 구곡 앵화·빈주바위, 소등의 일출·망향바위, 남문·해상터널, 국흘도 전경과 칼바위는 가거도 8경으로 꼽힌다. 기암괴석과 낙조 경관이 뛰어난 섬등반도에는 대형 송년 우체통이 설치되어 있으며, 방문객들의 사연을 담은 편지와 엽서를 연말에 한 번 수취인에게 배달된다.

가거도는 주변에 16개의 무인도서가 분포되어 있으며, 성근여, 외간서, 녹섬, 소국흘도에 우리나라 영해의 시작점임을 알리는 4개의 첨성대 모양의 영해기준점 조형물이 설치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