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선택하려면 많은 연습이 필요하죠. 연습과정에서 힘들 때 제가 함께 해 줄게요. 당신은 할 수 있어요.”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정미경 원장(38세, 단월드 구의센터)이 회원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하는 약속이다. 지난 6일 만난 정 원장은 올해로 10년 차를 맞는 뇌교육지도자로 환한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고 목소리가 우렁찼다.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인 정미경 원장은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인 정미경 원장은 "낯을 가리고 사람들을 기피했던 제가 사람들과 세상 속에서 행복하다"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뇌교육지도자를 결심한 계기에 관해 “무엇보다 지도자의 눈빛 때문이었어요. 외모를 꾸미지 않아도 빛나 보이는 당당함과 행복한 모습에서 ‘저 사람은 인생의 중심이 잡혀있구나’하는 걸 알 수 있었죠. 평소에는 친근한 모습인데 트레이너로 섰을 때는 너무나 멋졌어요. 말썽 많은 저를 지금까지 이끌어주신 분이죠.”

20대의 정미경 씨는 잘 웃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불안함을 잘 느끼고 예민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죠. 회사에서도 쓸데없는 농담을 하는 사람들이 싫어서 인사정도만 할 정도였어요.”

그의 최대 관심사는 날씬하고 예쁜 외모였지만, 스트레스로 인해 여러 문제가 있어 만족스럽지 못했다. “하자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했어요. 삶이 의미가 없고 우울함이 항상 따라다녔죠. 청소년과 청년시절에도 그다지 꿈이 없었어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누군가에게 좌지우지 되는 인생이 행복해보이지 않아서 내 인생을 살고 싶다는 것뿐이었죠. 그마저도 제 마음대로 안 되더군요.”

브레인명상은 어머니와 언니가 먼저 시작했다. “제가 언니를 무척 따르고 의지했는데 언니가 적극적으로 권했죠. 부산에서 처음 단월드 센터에 갔는데 웃음명상을 많이 하더군요. 저는 그게 너무나 어색했는데 할머니 회원들이 ‘왜 안 웃느냐?’며 자꾸 말하더군요. 그게 싫었죠.”

미경 씨는 처음 심성교육을 권유받았을 때 필요 없는 걸 권한다고 여겨 싫다고 했다. “한동안 센터를 다니지 않았는데 명상했을 때의 편안함이 기억나더군요. 그때 언니가 ‘너를 위해서 심성교육은 꼭 받아보라’고 이끌어주었어요. 원장님께 ‘웃으라고 시키지 말라.’는 조건으로 교육을 받기로 했죠.”

그러나 걸림돌이 있으면 더욱 부딪히게 되는지 예비교육 때도 웃음명상을 해서 안 간다고 여러 핑계를 대었다. 그런데 심성교육도 웃음명상으로 시작했다. “그건 예외적인 경우였죠. 제게는 곤혹스러웠어요.”

심성교육에서 그는 두 가지 놀라운 경험을 했다. “한 가지는 교육 때 제 짝이 된 분이 남자회원이었는데 눈빛이 매섭고 차가웠죠. 회원들이 교육에 가면 자신과 닮은 사람을 만날 거라고 했는데 조금 무서웠어요. 그런데 차차 교육이 진행되는 동안 그분 눈빛이 아이처럼 순수해지더군요. 그렇게 바로 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두 번째는 제 자신에게 ‘내가 원하는 것’을 묻는 명상을 할 때였어요. 제 뇌 속에서 온통 초록색 이미지가 떠오르면서 제가 건강하고 치유하는 삶을 원한다는 걸 알았어요. 제 자신이 늘 아프다고 생각했거든요. 마음의 병이었죠.”

그날 처음으로 언니 앞에서 박장대소를 하며 마음껏 웃었다. “언니는 동생이 바뀌었다고 대성통곡을 하더군요. 그때부터 환하게 웃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시작했죠.”

여성스러운 모습만 추구하던 그가 씩씩하게 변했다. “지금처럼 기운찬 목소리를 내게 된 것은 뇌교육 전문과정인 마스터힐러교육 때였어요. 제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 목소리를 한번 내보자고 온 힘을 다했더니 ‘득음’을 했어요. 하하“

정미경 원장은
정미경 원장은 "자신의 내면으로 가야 합니다. 의식이 외부로 향하면 주변 상황은 항상 바뀌기때문에 두렵죠. 자신의 내면을 믿고 자신을 느끼는 감각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가 뇌교육 지도사범이 되고 뇌교육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된 것은 언니와 아버지를 따라 자연스러웠다. “뇌교육명상을 늦게 시작한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셨어요. 파킨슨씨병이 있는데도 삼천 배를 꼭 하고 싶다고 결행하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단월드 구의센터에서 부원장으로 첫발을 내딛었고, 사람들과의 소통을 잘하고 성실함으로 성장해나갔다. 5년이 지났을 때 그는 신입회원이 한 달에 4명도 채 오지 않는 열악한 환경의 센터를 자원했다. “어느 날 제가 제자리걸음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달리는 것보다 제자리걸음이 더 힘들잖아요. 그래서 제 자신을 벼랑 끝에 세워서 던져보고 싶었죠.”

그는 브레인명상을 알리고 싶어 센터 앞에서 시민들의 지친 어깨와 등을 풀어주고 건강법을 알려주는 ‘러브핸즈’ 행사를 했다. 또한 인근 상가를 다니며 홍보지를 전달했다. “러브핸즈 행사를 2~3시간 씩 했죠. 그곳에 고가도로가 있어 차가 많이 다녔는데 하루는 얼굴을 쓱 닦으니 그을음이 묻어나더군요. 그리고 상가 등에 홍보지를 매일 전달해서 곳곳에 있어야 했어요. 그게 에너지 벨트라고 생각했거든요.”

많은 노력덕분에 침체되었던 센터가 어느 순간 신입회원이 북적이고 활기차서 전국에서 신입회원이 많은 센터가 되기도 했다. 그가 구의센터 원장으로 활동한 지는 3년 차가 되었다.

정 원장은 회원들의 의식성장을 돕는 다양한 교육과정의 트레이너에 도전하고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제가 그냥 회사를 다녔다면 주변에 미칠 수 있는 영향력이 그리 크지 않았을 겁니다. 지금은 예전의 제가 그랬던 것처럼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바꿀 수 있도록 선택의 힘을 키워주는 역할을 하게 된 게 감사하죠. 그런 뜻을 같이 하는 인재가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 컸는데 그런 분들이 찾아오더군요.”

토요일까지 근무해야 해서 주말에 열리는 파워브레인메소드 교육을 오랫동안 가지 못했던 간호조무사 회원은 금요일과 토요일 아르바이트생을 구해 일을 맡기고 다녀왔다. 그 회원은 자신의 인생에서 처음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했고 계속 성장했다. 또한 마트에서 채소포장을 하던 50대 회원은 설득력과 추진력이 남달라 뇌교육 강사로 성장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 자신 안에 늘 꿈틀거리는 소망과 가능성을 알아준 것이 감사하다며 그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정적으로 생활하며 꿈을 이루어가고 있다.

정미경 원장은 “자기 인생의 주인공으로서 당당히 서서 지금까지와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습니다. 오랫동안 닦여 온 길처럼 뇌에 시냅스가 형성되어 자꾸 예전으로 끌어당기니까요. 습관이라고 하죠. 그럴 때 저는 그 사람의 단점보다 좋은 기질과 장점을 계속 이야기하고 용기를 북돋우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으로 가라’고 이야기합니다. 외부로 향하면 주변상황은 항상 바뀌기 때문에 두렵죠. 자신의 내면을 믿고 자신을 느끼는 감각을 키우는 게 중요합니다.”라고 했다.

그는 지난 10년간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인생에서 한 번도 에너지를 끝까지 써본 적이 없었는데 뇌교육 지도자가 되어 여한 없이 에너지를 써봤고 성공드라마를 경험했습니다. 낯을 가리고 사람들을 기피했던 제가 사람들과 세상 속에서 행복합니다.”라고 밝혔다.

정미경 원장의 꿈은 동반자들의 휴식처와 같은 힐링센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정미경 원장의 꿈은 동반자들의 휴식처와 같은 힐링센터를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지난해 그와 센터회원들은 광진구 공원 등에서 시민들에게 꾸준히 자가힐링 건강법 BHP봉사활동을 했고, 올해는 어르신 건강을 돕기 위해 노인정 건강교실 등을 활발하게 전개할 계획이다.

정미경 원장은 “제가 있는 구의센터를 의식성장이 특별한 게 아니라 누구나 하는 일상이 되는 센터로 만들고 싶습니다.”라고 밝히고 “제가 좀 더 성장해서 의식성장과 인간완성이라는 목표를 가진 동반자들의 휴식처와 같은 힐링센터를 운영하고 싶습니다. 인생에서 수많은 굴곡이 닥칠 때 조언이 아니라 따뜻하게 공명하고 보듬어서 힐링해주고 싶습니다.”라고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