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명상을 하면서 제게 가장 의미 있는 건 젊은 시절에도 없던 인생목표가 생겼다는 겁니다. 사람들과 더불어 행복해지는 길을 찾았죠.”

브레인명상을 통해 인생의 목표를 찾은 배한우 광진구국학기공협회 회장. [사진=김경아 기자]
브레인명상을 통해 인생의 목표를 찾은 배한우 광진구국학기공협회 회장. [사진=김경아 기자]

배한우 광진구국학기공회장(48)의 청년시절은 무척 힘겨웠다. 20대에 포항에서 용접공으로 일하다 29살에 가스폭발사고로 두 팔과 다리 등 몸의 45%가 화상을 입었고 직장도 잃었다. 1년 간 치료를 했지만 흉터가 있어 반팔이나 반바지는 꿈도 못 꾸고 목까지 가린 옷을 입었다.

이후 30대 시절에는 식당에 물수건을 세탁해 납품하는 자영업을 했는데, 늘 무거운 짐을 날라야 했기에 어깨가 많이 아팠다. “가스폭발사고가 내 과실이라는 생각에 만회하려고 무리할 정도로 일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살았는데 어려움이 많아 세상을 원망했었죠.”

그는 형의 권유로 2001년 브레인명상을 시작했다. 매일 기체조와 명상으로 어깨통증이 나은 것은 물론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그런 그에게 큰 변화가 온 것은 심성교육을 받고 나서였다.

“제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만큼 온 게 나 혼자 힘이 아니었구나.’라는 걸 깨달았죠. 가스폭발사고 당시 인근 17개 가구가 유리창, 벽 등에 피해를 입었고 제 과실 때문이라 보상을 해야 했어요. 그때 용기를 내서 제가 가진 전부인 350만 원을 들고 가서 ‘살려 달라’고 했죠. 그때 주민들이 ‘젊은 사람 하나 살리자’며 ‘빨리 나아서 잘 살라’고 해주셨죠. 당시에는 앞길이 막막하고 사는 게 바빠 잊고 있던 게 기억나더군요. 내가 많은 사랑을 받고 있었구나 하는 마음에 울컥 눈물이 나더군요.”

그는 교육 후 곧바로 인근 간데메공원에 나가 주민에게 본인이 배운 기체조와 호흡, 명상법을 전했다. 국학기공 강사로 첫 걸음을 떼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러웠고 책임감이 앞섰다. “18살부터 우슈와 태권도를 배워 군대에서 태권도를 지도해 봤지만, 국학기공은 처음이라 배운 걸 전하는데 바빴죠. 잘해야 되고 새로운 해야 된다는 생각에 지식적인 공부를 많이 하려고도 했습니다.”

꾸준히 수련지도를 하면서 차츰 회원들을 보살피고 소통할 줄 알게 되었다. 다음해 5월 스승의 날, 그는 처음 카네이션을 받았다. “너무나 행복했어요. 10년, 20년이 지나도 누군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듣고 살 수 있을까 생각했죠.”

힘겨운 청년시절을 지나 온 배한우 회장은 심성교육에서 자신이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을 받고 있었음을 느꼈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힘겨운 청년시절을 지나 온 배한우 회장은 심성교육에서 자신이 주변 사람들의 배려와 사랑을 받고 있었음을 느꼈다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배한우 씨는 파워브레인메소드 교육을 받고 사랑의 개념이 바뀌었다고 한다. “너와 내가 다르지 않다는 걸 체험했죠. 상대방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건 줄 알았는데 서로 다르지 않은 ‘하나’라는 걸 아는 게 사랑이더군요.”

그는 공장을 차려 운영을 하면서 잠시 중단했던 국학기공 일은 2006년 광진구국학기공협회 사무국장을 맡으면서 다시 시작했다. 당시 광진구에는 클럽이 2개뿐으로, 구에서 지원하는 생활체육지원금을 받고 현상유지애 머물러있었다.

배한우 씨는 함께 브레인명상을 하면서 국학기공 공원지도 경험이 있는 강사들을 모아 의기투합했다. 강사들이 새롭게 5개의 클럽을 만들었고, 그도 한강둔치 공원과 장안중학교, 동사무소 등 5개의 클럽을 개설해 총 12개 클럽으로 늘었다. 오랫동안 중단되었던 협회장기 대회와 구청장기 대회도 300명 규모로 치를 수 있었고, 회원들과 서울시장기 국학기공대회에 출전했다.

그는 새벽과 점심시간, 퇴근 후 수련지도를 했다. 그러던 중 서울시장기 대회 출전을 참관한 장안중학교 선생님이 “집중력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기공이 도움이 되겠다.”는 제안을 했다. 중학교 2학년 15개 반 꼴찌 1,2등 총 30명을 대상으로 수업 전 30분씩 수련지도를 하기로 했다.

“본인의 선택이 중요했기 때문에 희망하지 않는 아이들은 빠지고 최종 19명을 1년 간 지도했죠. 5월 대회이후 학생들을 관찰해보니 체형이 틀어진 아이가 많더군요. 바른 몸이 되었을 때 바르게 바라보고 바른 생각을 할 수 있죠. 그래서 국학기공 기본 5동작으로 체형을 바로잡아 나갔습니다.”

2학기 중반이 되자 아이들은 “아침에 와서 매일 잤는데 이제 졸지 않아요.” “전에는 누가 이야기해도 잘 안 들렸는데 이제 들려요.” “수업시간에 몇 분만 지나도 좀이 쑤셨는데, 이제 수업에 집중하게 돼서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했다. 브레인명상을 한 선생님은 주중 아이들에게 뇌교육 특별활동을 지도해주었다.

“저는 아이들을 1년만 지도했는데, 선생님이 아이들의 변화를 꾸준히 데이터로 작성하셨더군요. 3학년이 된 아이들은 평균 35점씩 성적이 올랐고, 그중 한 아이가 전교 1등을 했더군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기공대회에서 특별상을 받은 이야기를 졸업할 때까지 했다고 하셨어요. 꼴찌를 했기 때문에 무대에서 박수를 받아 본 적이 없던 아이들에게 큰 자랑이었고, 자신감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배한우 회장은
배한우 회장은 "각 반에서 꼴찌 1,2등인 아이들을 지도하며 틀어진 체형을 바로잡아주었다. 아이들은 성적이 평균 35점이 오르고, 그 중에는 전교 1등을 한 아이도 있다."고 했다. [사진=김경아 기자]

2007년 그는 광진구국학기공회장으로 추대되고 나서도 공원지도를 했다. 그의 아내도 어린이대공원에서 새벽수련지도를 하면서 만났다. “건강이 나빠 걸으러 나왔다가 어르신들에게 수련지도 하는 걸 매일 따라 하더군요. 어르신들이 회원가입 할 때 도움을 요청하니 기꺼이 돕는 모습이 예뻤습니다. 제 권유로 브레인명상을 시작했죠. 결혼할 때 아내와 같이 평생 동반자로 성장하고 싶어서 결혼경비를 아껴 아내도 마스터힐러 교육을 받았죠.”

그는 몇 년 간 사무국장 없이 협회 일을 맡아 고군분투했다. 그러다 정체기가 찾아왔다. “제가 직접 지도를 하다보니 각 클럽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보지 못하더군요. 그래서 클럽의 회원을 강사교육에 참가시켜 각 클럽을 맡도록 하고, 저는 클럽들을 매월 정기적으로 찾아가 지원했죠.”

배한우 회장은 수련 지도하는 모습을 관찰하고 주민 건강을 위해 노력하는 강사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체조순서와 수련 멘트, 전하는 메시지 등에 관해 꼼꼼히 기록해 전하기도 하고, 시범지도를 통해 국학기공의 원리와 기본바탕인 홍익정신을 전했다.

“수련지도를 하다보면 난관을 끊임없이 헤쳐 나가야 하는 데 모두 가르쳐 주진 못하죠. 경험을 전할 수 있지만 본인의 신념이 중요하기 때문에 강사들이 꾸준히 성장하도록 방향과 과정을 제시하는 게 중요하죠. 다양한 생활체육이 있지만 회원들의 마음을 안아주고 울고 웃을 수 있는 건 국학기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올해 노인건강관리사업에 참여해 지역 내 어르신 대상 국학기공 클럽을 확장할 계획이다. 배한우 회장은 “어르신들이 건강과 함께 활기차게 자신의 가치를 실현하는 120세의 꿈을 갖도록 돕고자 합니다. 제 노하우를 알려드리고 강사들과 함께 비전을 논의하고 싶습니다. 건강해진 회원들이 누군가 아프다고 하면 당연하게 ‘공원에 가서 수련 받자’고 하는 문화를 만들어야죠.”라고 포부를 밝혔다.

배 회장은 “제가 큰 꿈을 그릴 수 있었던 건 주변 분들의 도움 덕입니다. 제가 일을 벌이고 실행하는 건 잘하지만 꼼꼼하게 챙기는 부분이 미흡했죠. 경영학과 출신인 이명섭 강사님이 체계적으로 잘 관리해주어서 제가 마음껏 일할 수 있습니다.”라고 감사를 전했다.

배한우 광진구국학기공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강사로 공원에 나가 사람들에게 건강과 홍익의 가치를 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배한우 광진구국학기공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나면 다시 강사로 공원에 나가 사람들에게 건강과 홍익의 가치를 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오랫동안 광진구국학기공회장을 맡아 왔는데 규모를 키우고 강사양성에 주력하는 것과 동시에 다음 회장이 선출되었을 때 파일 하나만 보고도 그동안의 과정과 체계를 금방 파악할 수 있도록 준비하려고 합니다.”라고 했다.

기자가 그 다음을 묻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국학기공강사로 돌아갈 겁니다. 저는 평생 체육인이었고, 공원에서 사람들에게 건강을 전하며 홍익을 실천하려고 합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