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기대가 아니라 진짜 나로 살아서 행복해요”
“타인의 기대가 아니라 진짜 나로 살아서 행복해요”
  • 강나리 기자
  • heonjukk@naver.com
  • 승인 2019.11.14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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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라이프 60편] 진정한 자신감을 회복한 윤영미 씨

항상 듬직한 딸이자, 회사에서는 책임감 있게 일을 해내는 유능한 사원으로 살아왔던 윤영미(54세) 씨는 지금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홀가분한 삶을 즐긴다.

“앞장서서 뭔가를 결정하고 사람들을 교육하며 밝게 웃으며 씩씩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제가 자신감이 넘친다고 여겼죠. 저도 그렇게 알았고요. 하지만 그게 어머니가 만들어주고, 회사가 키워준 갑옷이더군요. 누군가 기대하는 모습이 제 모습인줄 알다가 그걸 벗고 나니 매사에 주눅이 들었죠. 이제야 남이 만들어준 자신감이 아니라 진짜 자신감을 찾았어요.”

윤영미 씨는
윤영미 씨는 "누군가 기대하는 모습을 자신으로 알고 살았죠. 뇌교육명상을 통해 이제야 남이 만들어준 자신감이 아니라 진짜 자신감을 찾았어요."라고 한다. [사진=김경아 기자]

윤영미 씨는 진짜 자신감을 깨워준 비결로 ‘뇌교육 명상’을 꼽았다. “사회에서는 늘 성공 아니면 실패라는 잣대로 평가하잖아요. 뇌교육명상에서는 ‘괜찮다. 있는 그대로 괜찮다.’라고 합니다. 비로소 편안해졌죠. 전에는 잘하고 싶어서 완벽하게 해낼 것 같지 않으면 포기하고 물러섰죠. 지금은 내가 좀 못해도 저를 이해해주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하나에 집중하니까 ‘이건 할 수 있어요.’라고 자신있게 말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영미 씨는 어머니와 애착관계가 남달랐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어머니가 보험회사 생활설계사로 나섰고, 집안 살림을 영미 씨가 맡았다. “오빠도 있었지만, 엄마는 늘 제게 집안일을 의논하고, 형제 중에서도 저를 세워주셨어요. 빨리 어른이 되어서 엄마에게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었죠.”

영미 씨는 “제 안에는 사실 두려움이 있었어요. ‘엄마마저 없으면 안 된다. 엄마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에 하기 싫은 일에도 씩씩하게 해내며 남자처럼 살려고 했죠. 제가 딸이었지만 남편 같은 보호자 역할을 자처했던 거죠. 그게 어머니의 기대였고요.”라며 “제 세상의 기준이 엄마였습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사회에 진출해 회사 경리업무를 했다. 어머니는 영미 씨가 대학을 다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직장생활과 병행하며 어렵게 방송통신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또한 28살에 어머니의 권유로 대기업 생명보험회사에 생활설계사로 입사했다. “당시 30대가 되면 기술직이 아닌 이상 회사생활을 하기 어려웠어요.”

영미 씨는 영업보다 생활설계사를 교육하는 역할에 더 관심이 끌렸고, 1년 후 육성지도장이 되었다. 회사에서는 대기업이라는 브랜드와 자부심을 심어 주었고, 그는 24시간 회사만 생각하며 불도저처럼 일했다.

그때 회사는 친인척이나 지인을 위주로 영업을 하는 ‘보험아줌마’라는 이미지를 탈피해서 인생설계(라이프 플랜)을 제시하는 전문가로 전환하는 초창기여서 이를 지도하는 역할이 중요했다.

꼼꼼하게 일을 잘 하는 그는 거절을 잘 못하는 성격 때문에 늘 많은 책임을 떠안았다. 그의 몫이 아니어도 “잘 하니까 맡기는 거야. 잘 해낼 거라 믿어”라는 기대에 어떻게든 해내려 애썼다. 하지만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 그의 탓으로 돌아왔다. 삶이 버거워지기 시작했다.

“제가 원리원칙을 밀어붙이다보니 잘못된 관행을 못 봐주고 주장이 강했죠. 사람들 마음을 헤아리는 데는 부족했어요. 좌충우돌하는 면도 있었죠. 새로운 것을 시작할 때면 두려움이 많은데 표현은 못하고 자신감이 떨어졌어요. 추진력이 좋지만 어느 순간 무기력에 빠지더군요.”

압력밥솥 증기처럼 스트레스가 차오르다보니, 계속 두통에 시달렸고 욱하고 감정이 올라오는 일이 잦아졌다. 감정기복이 있다 보니 ‘럭비공’이란 말도 들었다. 어머니는 “너는 힘든 일은 다 참고 해내다가 아무 일도 아닌 것에 화를 벌컥 낸다.”고 했다. 화병으로 가슴을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던 때, 그는 단월드 서울역센터에서 뇌교육명상을 시작했다. “늘 돈을 벌어야 한다고 동동거렸지 제 자신을 돌보게 된 건 처음이었죠.”

기체조와 이완명상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힘이 생겼고 조금씩 건강해졌다. 한 달 후 심성교육을 받은 영미 씨는 자신의 삶을 다각도로 돌아보게 되었다. “교육 과정에서 손해 보지 않으려 저절로 이해타산을 하는 습관도 보았고, 여러 피해의식을 갖고 살았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동생들은 저보고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고 하는데, 저는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죠. 오류투성이의 인생이더라고요. 무엇보다 제가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려하면서 제 자신을 막상 놓치고 있었다는 걸 발견했어요. 서럽기도 했고 진짜 나를 찾아야겠다는 마음에 가슴이 뭉클하고 울컥 눈물이 나더군요.”

그는 뇌교육명상을 평생토록 하겠다고 결심했고, 곧이어 파워브레인메소드(PBM)교육을 받았다. “제 안에 자격지심과 죄의식이 있더군요. 명상 중에 감정을 하나씩 씻어내는데 용서라는 것에서는 걸려서 잘 안 되었는데 그것도 비울 수 있었어요. PBM교육에서 세상의 잣대와 관념의 틀에서 벗어나 무아無我를 체험했는데, 정말 자유롭더군요.”

얼마 후 그는 같은 계열의 타회사로 이직을 했고, 연수원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로 활동했다. 힘든 일이 많았지만 버텨나갔다. 바빠서 매일 뇌교육명상 정규수련을 하지 못하고 뇌교육 전문과정인 마스터힐러 교육에서 뇌교육 5단계를 깊이 체험했다.

윤영미 씨는 뇌교육 지도사범으로 단월드 강촌센터에서 회원들을 지도한다. [사진=본인 제공]
윤영미 씨는 뇌교육 지도사범으로 단월드 강촌센터에서 회원들을 지도한다. [사진=본인 제공]

“남들 눈에는 활달해보이지만, 제가 다른 사람 눈을 잘 마주치지 못했는데 바뀌었어요. 자신감이 있는 척이 아니라 내 안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을 느꼈어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 세상에 나가서 힐링하는 리더로 성장하겠다는 결심을 했죠. 사람들과 관계 속에서 힐링을 실천하고 싶었습니다.” 그는 교육받은 후 회사에서 힘들어 보이는 동료들을 보면 누구나 어깨와 등을 풀어주었다.

얼마 후 큰 시련이 왔다. 어머니가 뇌종양 수술을 받았고, 그 후 치매증상이 시작되었다. 그는 요양병원 대신 직접 간병을 했다. “항상 교양이 넘치던 엄마가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게 너무나 힘들고 삶이 피폐해지는 것 같았죠. 엄마와의 애착이 강했기 때문에 돌아가시고도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나마 자신을 통찰하고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뇌교육명상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가 아픈 이후로 뇌교육명상을 하지 못했던 그는 최근 다시 뇌교육명상 정규수련을 시작했다. “마스터힐러 교육을 받은 지가 꽤 오래되었는데, ‘타오(TAO)’강의를 들으면서 다시 되살아나더군요. 그때 미처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까지 세포에 각인이 되어 있다가 깨어나 마치 꽃이 만개하는 것처럼 살아났어요. 제게는 제2의 인생이 새로 시작된 것이죠.”

윤영미 씨는 뇌교육 지도사범으로 단월드 강촌센터에서 회원지도를 하고, 사람들에게 뇌신경자극 자가힐링건강법을 전하는 BHP봉사단으로 활동한다. 매일 뇌교육명상으로 자신을 깨우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면서 점점 더 당당해지고 밝아졌다.

“돌아보면 제가 고집이 세고 외골수라 한번 내뱉은 말을 지키려 애쓰다 지치곤 했는데, 이제는 저를 궁지로 몰아넣지 않아요.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그럴 수도 있다.’라고 인정하는 순간 긴장과 얽힌 감정이 풀리죠. 50여 년간 뇌를 써온 습관이 있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옛 습관대로 뇌가 작동하는 걸 발견합니다. 이제는 금방 알아차리고 돌아옵니다.”

윤영미 씨는 매일 뇌교육명상으로 자신을 깨우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면서 점점 더 당당해지고 밝아졌다. [사진=김경아 기자]
윤영미 씨는 매일 뇌교육명상으로 자신을 깨우고, 깨달은 것을 실천하면서 점점 더 당당해지고 밝아졌다. [사진=김경아 기자]

그는 마스터힐러 과정을 “본인이 원하는 인생을 살고 싶고, 현재와 다른 삶을 꿈꾼다면 꼭 받았으면 합니다. 변화의 씨앗이 심어집니다.”라며 “씨앗이 싹트는 시간이 각자 달라도 자신이 깨달은 것을 행동하면 활짝 꽃이 핍니다. 지금은 제 뿌리가 튼튼해지는 시기입니다.”라고 소개했다.

인생에서 늘 자신을 보호하던 호두 껍데기처럼 단단한 겉면이 깨지고 여린 속살이 드러날 때가 있다. 윤영미 씨는 이제 누군가 부여해준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이 찾아낸 진짜 자신감으로 새 인생설계를 하고 있다. “뇌교육을 통해 계속 성장하면 좋은 영향력을 세상에 펼치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제가 있는 곳에서 뇌교육 코칭으로 몸과 마음을 치유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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