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7일부터 8월 5일, 필리핀 루손섬 북서지방 도시인 ‘바기오’라는 지역으로 해외봉사를 갔다 왔다. 작년까지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던 나는 올해부터 자유학년제 대안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를 다니고 있는데, 벤자민학교 선생님께서 사회참여프로젝트로 여성가족부에서 주최하는 해외봉사를 추천해주셨다. 중‧고등학교 시절, 학업 때문에 바빴던 나에게 해외봉사는 꼭 해보고 싶은 활동이었고, 새로운 경험을 통해 나를 성장시킬 수 있을 것 같아 고민 없이 바로 신청했다.
 

나는 7월 27일부터 8월 5일, 필리핀 루손섬 북서지방 도시인 ‘바기오’라는 지역에서 노력봉사와 교육봉사, 문화교류 등 해외자원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사진=최서연]
나는 7월 27일부터 8월 5일, 필리핀 루손섬 북서지방 도시인 ‘바기오’라는 지역에서 노력봉사와 교육봉사, 문화교류 등 해외자원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사진=최서연]

최종합격 문자를 받고는 기쁜 마음과 동시에 걱정되는 마음이 있었다. 일반학교에서는 봉사시간 채우기 위한 봉사를 했으나, 진정한 의미의 봉사를 하려니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발대식과 2차례의 사전준비를 하면서 걱정은 점점 자신감으로 바뀌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사전준비를 해야 하니, 낯설고 힘들었지만 준비과정에서 친해져서 편해졌고 즐기면서 준비할 수 있었다.

우리는 7월 27일 새벽에 비행기를 타고 필리핀으로 갔다. 클락국제공항에 도착해 그곳에서 4시간 동안 차를 타고 바기오로 이동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쉬었다 노력봉사를 진행할 ‘Country Club Village Day Care Center’ 라는 곳의 환경개선을 위한 봉사를 하러 갔다. 이곳 데이케어센터는 3~4세 유아들이 교육을 받고, 마을 어르신 분들이 오셔서 쉬는 곳이었는데, 작고 허름했다. 다행히 선발대로 가신 기술자들이 기초 작업을 다 해두어 우리는 안전하게 봉사활동을 할 수 있었다.

데이케어센터는 2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인데 1층은 어르신들이, 2층은 3~4세 아이들이 사용했었다. 센터 측에서는 1.2층을 바꾸어서 아이들이 1층을 사용하길 원했다. 아이들이어서 계단을 올라가기 힘든 점 등을 고려해 우리는 센터에서 원하는 대로 바꾸기로 결정했다. 우리가 도착했었을 때 실외에 계단은 이미 설치가 완료되었고, 지붕을 설치할 준비가 한창이었다. 바기오는 비가 자주 내리는 지역이라 궂은 날씨에도 아이들이 실외활동을 할 수 있게 지붕을 만들기로 했다.
 

필리핀에서 진행한 노력봉사는 ‘Country Club Village Day Care Center’라는 곳의 환경개선을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사진=최서연]
필리핀에서 진행한 노력봉사는 ‘Country Club Village Day Care Center’라는 곳의 환경개선을 위한 활동을 진행했다. [사진=최서연]

원래 일정대로라면 노력봉사는 28일 사전작업부터 8월 2일 노력봉사 마무리까지 6일 동안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노력봉사를 할 수 있는 시간은 4일 정도였다. 이후에 진행할 다른 프로그램들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짧은 시간 안에 이곳을 변화 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 시작해보았다.

나는 실내페인트 담당이여서 퍼티 작업부터 시작했다. 살면서 ‘퍼티’라는 단어를 처음 들어봤다. 벽면이 평평하게 될 수 있도록 금이 간 부분이나 파인 부분에 퍼티를 발랐다. 천장에 퍼티작업을 할 땐 어깨가 무척 아팠지만 다른 친구에게 넘기면 그 친구 또한 힘들테니 최선을 다해서 했다. 처음엔 어려웠지만 하다 보니 차츰 적응이 되었고,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 퍼티작업을 하고 밖으로 가서 아이들이 사용하는 책상과 의자를 사포질 했다. 1일차 봉사를 마치고 지프니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는데 생각보다 일이 많고, 내가 더 엄청난 걸 하고 있는 거 같아서 책임감이 생겼다.

2일차 노력봉사 전에는 바기오 시청에 들렸다. 많은 공무원분들과 경찰, 군인, 그리고 바기오 시장님이 참석해 우리를 환영하는 웰컴세레머니를 열어주었다. 우리는 이때 ‘오늘밤에’ 노래에 맞춘 퍼포먼스를 하며 화답했다. 사전교육 때 수없이 연습한 춤이어서 즐기면서 출 수 있었다.
 

바기오 시에서 열어준 우리를 환영하는 웰컴세레머니에서 '오늘밤에' 노래에 맞춘 퍼포먼스를 했다. [사진=최서연]
바기오 시에서 열어준 우리를 환영하는 웰컴세레머니에서 '오늘밤에' 노래에 맞춘 퍼포먼스를 했다. [사진=최서연]

이번 봉사활동 인솔단체인 가톨릭아동청소년재단은 바기오 시와 MOU를 체결하고 있어 우리의 일정에 공무원이 동행한다. 총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필리핀이지만, 덕분에 안전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오후에는 비가 오는 바람에 다 같이 실내에서 페인트를 칠했다. 실내 천장과 벽면에 바르는 페인트의 색이 둘 다 흰색이지만 종류가 달라서 처음에는 헷갈렸다. 나는 주로 벽면을 칠했고, 롤러로 칠하기 힘든 부분은 붓으로 꼼꼼하게 메꾸는 작업을 했다. 이날부터 점점 옷에 페인트가 묻기 시작했다. 벽면과 천장은 마르면 덧칠하고 또 마르면 덧칠했다.

3일차인 29일에는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노력봉사를 했다. 나는 건물 옆쪽에 있는 창틀을 남색페인트로 칠했다. 먼저 먼지가 쌓인 창틀을 닦아내고 구석구석 페인트칠을 했다. 굉장히 좁고 낮은 곳 이였는데 페인트칠을 하면서 도마뱀도 보고, 개미떼도 봤다. 그때마다 크게 놀랐지만 정신을 차리고 집중력을 발휘해 페인트칠을 했다.

이후에는 첫 날에 사포질을 해둔 의자와 책상에 페인트칠을 했다. 연두색, 레몬색 ,연보라색 ,파랑색 등 총 4가지 색상으로 의자와 책상을 칠했다. 계속 흰색페인트만 보다가 이렇게 다양한 색상의 페인트들을 보니까 좋았고, 특히 연두색과 레몬색이 정말 예뻤다. 붓의 개수가 넉넉하지 못해서 색깔 하나당 1개, 많아봤자 2개 정도의 붓이 투입되어서 빨리 진행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한 색깔 당 6~7개 정도의 의자를 칠했다. 30여 개의 의자와 커다란 책상 5개를 열심히 페인트칠 했다. 4일차에도 의자와 책상을 칠했고, 거의 마무리가 되어가는 날이었다. 외벽을 칠하려 했지만 아직 덜 말라서 못 칠하고, 칠판테두리를 칠했다.
 

미리 사포질을 해둔 책상과 의자에 각양각색으로 페인트를 칠했다. [사진=최서연]
미리 사포질을 해둔 책상과 의자에 각양각색으로 페인트를 칠했다. [사진=최서연]

이후에는 실내로 들어가 바닥에 묻은 페인트 자국을 떼어냈다. 날씨가 좋지 않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나와 다른 몇 명은 노력봉사를 일찍 마무리하고 교육봉사와 문화교류 준비를 했다. 다른 몇몇 친구들과 선생님, 기술자분은 밤까지 일을 하시면서 작업을 마무리 하셨다.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했고, 고생한분들에게 감사했다.

필리핀에 도착한지 6일 째, 8월 1일에는 교육봉사를 했다. 우리가 바꿔 놓은 데이케어센터에서 우리가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수업을 했다. 손 씻기 교육, 비눗방울 놀이, 볼클레이 순으로 진행했는데 나는 비눗방울 놀이 팀이었다. 다른 팀이 진행할 때는 아이들을 도와주었다. 집중을 잘 못하고 산만한 3~4세 애기들이라서 1:1로 봐주어야 했다. 손 씻기 팀은 노래와 귀여운 율동을 하면서 손 씻는 방법을 가르쳐줬고 나는 아이들이 율동을 따라 할 수 있게 도왔다. 직접 비누를 사용해서 손을 씻기고, 손세정제를 한명씩 선물로 주었다.

그다음 비눗방울 놀이를 했다. 아이들에게 작은 비눗방울 병을 하나 씩 선물로 줬고, 내가 큰 비눗방울을 만들면 아이들이 달려와서 열심히 터트렸다. 작은 것에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도 동심으로 돌아간 기분이었다. 이 날도 비가 와서 비눗방울 놀이를 짧게 한 것이 아쉽다. 점심을 먹고는 볼클레이 놀이를 했다. 앵무새 도안이 있는 종이에 볼클레이를 붙이고 바람을 넣어주면 입체적인 앵무새가 되는 놀이였다. 나는 최대한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척척 하는 모습을 보면서 오늘 처음 본 아이들이지만 정말 대견했다. 뭘 해도 예쁜 아이들이여서 내 입에서는 칭찬만 나왔다.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면서 나도 좋은 에너지를 받으며 교육봉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비눗방울 놀이를 하면서 작은 것에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같이 흥겹게 놀 수 있었다. [사진=최서연]
비눗방울 놀이를 하면서 작은 것에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며 나도 같이 흥겹게 놀 수 있었다. [사진=최서연]

다음 날에는 바자회와 문화교류 활동을 했다. 바자회는 'Baguio Country Club village Elementary School'에서 진행했다. 나는 문구류와 칫솔치약세트를 맡아 판매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가격으로 이 나라 물가에 맞춰서 싸게 팔았다. 칫솔치약세트를 20페소, 한화로 450원 정도에 팔고, 모기약을 10페소, 한화로 200원 정도에 팔았다. 각종 문구류도 비싸봐야 100페소인 2,000원 정도였는데 사람들이 사지 않아 가격을 더 낮추었다. 두 시간 동안 꼼짝 못하고 열심히 영어를 써가면서 물건을 팔았다.

오후에는 'Baguio City National High School'에서 문화교류를 진행했다. 이곳에서는 공연과 부스를 진행했다. 나는 필리핀 동요 팀이어서 제일 먼저 공연 무대에 섰다. 나와 또래인 고등학생을 상대로 동요를 불러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따갈로그어’로 되어있는 가사를 다 외워서 부른 거라 뿌듯하기도 했다. 다른 친구들은 태권도, K-POP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다. 친구들이 열심히 연습하는 걸 봐서 그런지 연습한 결과를 보여주는 무대에서 더 빛나보였다.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오늘밤에’ 퍼포먼스를 했다. 마지막으로 춘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다. 필리핀 친구들도 답례공연으로 우리나라 전통놀이, 댄스, 비트박스 등 다양한 공연을 선보였다. 마지막에는 한국친구들과 필리핀 친구들이 다 같이 춤을 추면서 서로 하나가 되었다.

공연을 마무리 하고는 문화부스를 준비했다. 내가 운영하는 부스는 손거울과 책갈피 만들기 부스였다. 문화부스에서 내가 조장을 맡고 있어서 더욱 신경을 썼다. 손거울은 한국 전통문양이 그려져 있어서 색칠하는 것이었고, 책갈피는 한글을 사용해서 꾸미는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등 간단한 문장으로 꾸미거나, 필리핀 친구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우리가 써주면 그걸 이용해 책갈피를 꾸몄다.
 

문화부스에서는 우리가 필리핀 친구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써주면 책갈피로 만드는 활동을 진행했다. [사진=최서연]
문화부스에서는 우리가 필리핀 친구들의 이름을 한국어로 써주면 책갈피로 만드는 활동을 진행했다. [사진=최서연]

처음에는 사람들이 과연 ‘이걸 하러올까’, ‘한글이름에 관심이 있을까’ 라는 걱정이 들었는데 부스를 시작하고 나서는 걱정이 싹 사라졌다. 준비해둔 의자가 부족해서 의자를 더 들고 왔을 만큼 인기가 많았고, 다들 엄청 열심히 했다. 손거울은 색칠하는데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다들 열심히 칠하는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 두 시간 정도 부스를 하고 마쳤는데 아쉽고 그동안 준비했던 걸 모두 다 끝내서 가뿐했고 한편으로는 섭섭했다.

이번 봉사활동에서 우리를 인솔하셨던 신부님께서는 사전교육 때 “우리가 일방적으로 해주는 봉사가 아닌, 그 쪽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도와주자”고 하셨다. 나는 이번 봉사를 통해 봉사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봉사는 내가 도와주는 만큼 나 또한 성장하는 일 인 것 같다. 노력봉사를 하면서 건물이 근사해지는 모습을 보고 뿌듯함을 느꼈고, 교육봉사를 하면서 아이들의 밝은 모습을 보고 나도 뿌듯했다. 또한, 문화부스를 운영하면서 한글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을 보고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내가 봉사를 한 것보다 더 많은 걸 얻은 8박 10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봉사를 하면서 감사한 사람이 많다. 기술자들이 야간까지 일하면서 희생해준 덕분에 노력봉사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고, 신부님과 선생님들의 많은 고생과 노력으로 안전하게 봉사를 할 수 있었다. 의료진 팀이 있었기에 든든하게 필리핀생활을 할 수 있었고, 현지 관계자분이 숙소와 교통 등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을 척척 해결해주셔서 편하게 지낼 수 있었다.

신부님께서는 청소년인 우리가 주연이고, 본인들은 조연이라 하셨다. 조연이 있기에 주연이 빛날 수 있고, 주연보다 더 고생하고 힘 쓴 사람들은 조연이란 걸 잘 알게 되었다. 봉사를 하면서 느낀 것도 많지만 다른 나라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것도 있다. 바기오라는 도시는 물이 귀한 도시다. 그래서 샤워할 때 마다 물이 끊기진 않을까 긴장하면서 했었다. 물이 종종 끊길 때는 꼼짝도 못하고 다시 물이 나오길 기다렸다. 우리나라도 물 부족 국가인데, 내가 한국에서 물을 낭비하며 사용한 게 생각이 나서 반성했다.

내가 벤자민학교에 오지 않고 계속해서 학업에 치여 살았다면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회참여프로젝트를 하며 진정한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던 이번 봉사활동을 통해 더욱 성장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신청서를 제출한 순간부터 봉사가 마치는 시점까지 스스로 해낸 경험이기에 하나하나 해나갈 때마다 더욱 성장하는 것 같다. 이번 해외봉사는 살면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고, 내 삶을 더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