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회 일우 김한종의사 추모제 거행
제11회 일우 김한종의사 추모제 거행
  • 문현진 기자
  • moon_pt@naver.com
  • 승인 2018.11.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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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 일제의 폭압적인 무단정치에 항거한 일우 김한종 의사의 넋 기려

김한종의사기념사업회(회장 김만식) 주관으로 일우(一宇) 김한종(1883∼1921) 의사(義士) 제11회 추모제가 11월 6일(화) 오전 9시 충남 예산 김한종의사기념관에서 거행되었다.

이날 추모식에는 박종덕 충남서부보훈지청장과 황선봉 예산군수를 비롯한 독립운동 관련 단체 대표와 회원,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제는 개회사, 추모사, 추모시 낭송, 평양예술단 공연, 폐회사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독립투사인 일우 김한종 의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는 제11회 김한종의사추모제가 11월 6일 예산군 김한종의사기념관에서 열렸다. [사진=예산군청]
독립투사인 일우 김한종 의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는 제11회 김한종의사추모제가 11월 6일 예산군 김한종의사기념관에서 열렸다. [사진=예산군청]

김만식 기념사업회장은 추모사에서 “이번 행사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라를 되찾기 위한 김한종 의사의 독립정신과 역사를 바로 알고 기억하게 되길 바란다."며, "김한종 의사의 굳센 용기와 백절불굴의 투지가 대한독립군의 힘과 뿌리가 되어 이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고 추모했다. 

박종덕 충남서부보훈지청장은 "일우 김한종 의사는 풍파에 휘청이는 나라를 걱정하여 무장독립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를 조직해 독립군자금을 모집하고 만주에 무관학교를 건립하는 등 목숨을 걸고 이 나라를 지켜오셨다."며, "1918년 일경에 피체되어 1921년 순국하기까지 김한종 의사의 삶은 오직 광복이고 독립이었다."고 말했다.    

황선봉 예산군수가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예산군청]
황선봉 예산군수가 추모사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예산군청]

이어서 한국문인협회 예산지부 시인들이 '애국의 등불'을 낭송했고, 탈북자 출신 예능인들이 결성한 평양예술단이 합창과 무용 공연을 했다. 

충남 예산이 고향인 김한종 의사는 1883년 태어났다. 김 의사의 집안은 충효의 전통을 지닌 전형적인 사대부 집안이었기 때문에 선생은 어려서부터 부친에게 충효사상을 전수 받았다. 이 무렵에 나라는 개항 이후 노골적인 외세의 침탈에 시달리고 있었고 선생과 부친은 국권을 회복해야 한다는 강렬한 열망을 품게 되었다. 

선생은 부친과 함께 1906년 홍주(현 충남 홍성)에서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 민종식의 홍주의진에 종군하였으나 일본군에 패하여 항전을 이어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선생은 1917년 풍기광복단과 조선국권회복단이 통합된 혁명단체 대한광복회에 가입하여 충청도 지부장으로 활약하였다. 의사는 주로 군자금을 조달하여 만주의 독립군기지와 무관학교를 지원했다. 또한 국내에서도 혁명군을 양성하여 적시에 봉기해 독립을 쟁취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때 행동지침은 비밀·폭동·암살·명령의 4대 강령이었고, 각처에 곡물상을 설립하여 혁명기지로 삼았다.

김한종 의사는 충청남도 예산 출신으로 ‘대한광복회’의 중추 역할을 하며 독립군자금 모집, 친일부호 처단, 만주 무관학교 건립 등 조국독립에 헌신하였다. [사진=국가보훈처]
김한종 의사는 충청남도 예산 출신으로 ‘대한광복회’의 중추 역할을 하며 독립군자금 모집, 친일부호 처단, 만주 무관학교 건립 등 조국독립에 헌신하였다. [사진=국가보훈처]

한편 의협 투쟁으로서의 총독처단, 친일부호 처단 등의 계획을 했다. 친일부호 처단을 위해 장두환·엄정섭 등과 함께 지방 부호들의 명단을 작성하여 1917년 11월 경북 칠곡의 부호 장승원과 아산군의 장용숙을 처단할 때 참여하였다. 이후 조직이 일제에 발각됨으로써 그는 1918년 일경에 피체되어 옥고를 치르다가 1921년 8월 대구형무소에서 순국하였다. 

일우 김한종 의사는 1916년 대구 달성공원에서 2백여 동지들과 함께 “우리는 대한 광복을 위해 우리의 목숨을 바침은 물론 우리 생애에 뜻을 이루지 못할 때는 자자손손이 뜻을 이어 원수 일본을 몰아내고 국권을 회복할 것을 맹세한다.”고 피로써 하늘에 다짐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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