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족韓族을 단군대황족檀君大皇族이라 한 한인신보韓人新報. 한인신보는 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한 한인신문이다.

나는 약지를 끊어낸 사람들이 평범한 사람들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신분이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1909년 3월에 포푸라치나야에 간 적이 있었네. 포푸라치나야는 수분하綏芬河로 알려진 곳이야. 그 후에 나는 한국러시아국경 가까운 곳의 각지를 돌아다니며 동포의 교육에 힘쓰고, 강연에 힘쓰며 국민을 단합하려 애썼지. 당시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신보韓人新報’라는 동포신문이 발행되고 있었는데, 한민족을 단군대황족檀君大皇族이라 하였어. 조선족이나 한민족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아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야.” 
“의문 나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활동비라 할까 경비는 어떻게 충당했습니까?”
“그야 동포들이 부담해 주었지. 독지가들이 있었으니까.”
“예를 하나만 들어 주시지요.”    
그림  한족韓族을 단군대황족檀君大皇族이라 한 한인신보韓人新報. 한인신보는 러시아 극동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한 한인신문이다. 
 
“1909년 3월, 포브라치나야에 살고 있는 친구 정대호鄭大鎬로부터 고향에 다녀왔다는 연락을 받았어, 그는 1908년 9월부터 포브라치나야 청국세관에 근무했던 사람이야. 돈이나 벌어서 편안하게 살 궁리나 하는 사람으로 나와 생각이 근본적으로 다른 사람이었지. 그러나 동향 친구로서 왕래하며 그곳에 살고 있었어. 그가 내가 무위도식하는 듯싶어 보였는지 충고했네.”
“세상엔 그런 사람들 천지이지요.”
“나를 위한답시고 뭐라고 그랬는지 아나? 나에게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돈이나 벌게. 독립이니 뭐니 하는 것은 다 부질없는 짓이야. 일본에 아부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기에 여념이 없는 대관나리들을 보게나. 그대가 무슨 힘이 있다고 그 야단인가? 돈이나 벌어서 편안하게 집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전통인데 공연히 사서 고생하지 말게.”
“그때의 심정이 참담했겠군요. 면박을 주진 않았나요?”
“그러지 않았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해서 나무랄 생각은 없었어.”
 
▲ 수분하 위치도
 
“하긴 그렇지요.”
 
내가 동조해 주었다. 
 
“정대호는 고향에 가족이 잘 있다고 전해 주었어. 내가 이번에 고향에 가는데, 가족을 데려다 줄까?” 
 
어느 날 그가 내게 물었어. 
 
“그렇게 해 주게.”
 
나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대답했네. 정대호가 진남포로 떠났지. 나는 엥치우에 머무르고 있었지. 갑작스럽게 마음이 울적해져 초조함을 금할 수 없었네. 스스로 진정하기 어려웠어. 기이한 일이었지. 나의 머리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야 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어. 나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가고 싶었네. 시간이 갈수록 그 생각이 간절해졌지. 무슨 이유로 그토록 가고 싶었는지 내 자신이 납득이 가지 않았어. 
 
“나는 지금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려 하오.”
 
나는 친구 몇 사람에게 말했네. 아무 기약 없이 졸지에 간다고 하므로 친구들이 의아해 하였네. 
 
“거기에 가서 할 일이 있소?”
 
한 친구가 물었어. 
 
“가족이 오는데 마중을 가려는 것이요.”
“여기에 있어도 가족은 올 것이 아니요? 비용을 써가면서 가야 할 이유가 없소.”
 
친구가 말했어.
 
“나는 왜 가고 싶은지 까닭을 모르겠소. 저절로 마음에 번민이 일어나서, 도저히 이곳에 더 머물고 있을 생각이 없어서 떠나려는 것이요. 가족을 보지 못한지 3년이나 되었지만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상한 일이요...”
 
나는 내 심정을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지.
 
“이제 가면 언제 올 거요?”
“다시 안 돌아오겠소.”
 
나는 불쑥 이 말을 하였네. 지금 생각해 보면 친구에게 영원한 작별인사를 한 셈이 되었네. 
 
“잘 생각했어. 이제부터 안정적인 생활을 해야지.”
 
친구가 말하더군. 나는 친구들을 작별하고 보로실로프(목구항穆口港)에서 기선을 만나 승선하였지. 이 항구에서 매주 1회 기선이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나는 기선이었어.
 
“안 의사님, 혹시 운명이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나는 불쑥 물었다.
 
“그것은 아마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존재로부터 받게 되는 명령일 것일세.”
“그 어떤 존재가 누구입니까?”
“모르겠어.”
“설마 꿈에 나타나신 마리아는 아니겠지요?”
“아니야.”
“만약에 마리아께서 명령하셨다면 전쟁의 신으로 추앙을 받으셔야 하겠지요.”
 
▲ 수분하 위치도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
 
“글쎄.”
“혹시 이등이 모시는 신이 있다면 그 신이겠지요.”
“이등이 모시는 신이라...”
 
나는 이등이 모시는 신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등이 모시는 신이라면 그의 조상신일 것이고, 그의 조상신이라면 우리의 조상신일 수도 있었다. 우리의 조상신이라면 그가 누구일까? 어처구니없는 상상이었다. 
 
“그 신이 내게 이등을 저격하라고 명령한다?”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되었다. 이등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면 조상으로서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다. 요는 안중근이 조상신으로부터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개연성이 것이 중요했다. 
 
▲ 안중근 의사의 가족
 
“강박관념을 치유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가능하지 않겠어요? 이등을 천방지축으로 날뛰게 놓아두면 치유가 불가능한 상처가 될지 모르니까.”
 
이등이 모시는 조상신이 이등의 행위를 저지시키려면 그런 방법 이외에 달리 마땅한 방법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런 쓸데없는 생각을 접기로 하였다.
 
“이야기 계속하시지요.”
“나는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하여 개척리開拓里에 있는 이치권李致權의 집으로 갔네. 이치권의 집은 계동학교啓東學校 앞에 있었지. 그는 건축업에 종사하는 사람이었어, 당시에 그가 했던 일은 학교 청부공사에 감독으로 나가는 일이었어.”
 
이치권은 내게 10월 9일자 ‘대동공보大東共報’를 내어 밀었네. 이 신문에 이등이 하얼빈에 온다는 기사가 실려 있더군. 나는 신문을 읽자, 내가 왜 그토록 블라디보스토크에 오고 싶어졌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어. 이등이 모시는 조상신이 안중근 의사에게 의탁하여 이등을 제거하려 했다는 생각이 맞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
 
▲ “일인 이등이 한인이 쏜 총에 맞았다”고 보도한 1910년 10월 8일자 대동공보. 대동공보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들이 발행하던 한인신문이었다.
 
“예지력이 상당하시군요.”
“사람이 무엇엔가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면 아마 촉觸이 발달하는 때문일 것일세.”
 
- 내가 알기로, 그것은 우리의 집단 무의식 가운데 상처를 치유해야 할 어떤 신화원형神話原形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영토상실領土喪失 콤플렉스가 있는데, 국가가 멸망하여 영토를 상실하면서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을 갖게 되는 일종의 정신병과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고구려 사람들이 가
졌던 다물과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이 콤플렉스를 치유하려면 싸워서 영토를 되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치유해야만 가능한 것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이런 강박관념을 이등을 사살함으로써 치유하려 하였다. 그의 행위를 도와준 것이 조상신개입설祖上神介入說이라 할 수 있다. 이상은 칼융의 집단무의식集團無意識과 신화원형론神話原形論에 기초하여 해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