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마을 집으로 내려가서, 밥도 얻고, 길도 물어 올 것이니, 숲 속에 숨어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시오.”

 
나는 말을 하고 인가로 내려갔네. 그러나 그 집은 일본 병정의 파출소였네. 일본 병정들이 횃불을 들고 나오므로 급히 몸을 피하여 산속으로 돌아왔지. 
 
“일본 병정이 지키는 파출소였소.”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네. 우리는 어서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였지. 그러나 기력이 다하여 나는 정신이 혼미하여 땅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났네. 나는 정신을 차리고 하늘에 빌었네.
 
“죽어도 속히 죽고 살아도 속히 살게 해 주소서.”
 
기도를 마치고 냇물을 찾아가 배가 부르도록 물을 마신 후에 나무 아래에 누워 밤을 지새웠어. 다음 날도 너무 괴로워 대원들의 탄식이 그치지 않았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매인 것이니 걱정할 것 없소. 사람은 비상한 곤란을 겪은 후에야 살아가는 것이요. 이와 같이 낙심한다고 해서 무슨 유익이 있겠소. 천명을 기다릴 따름이요.”
 
말인즉슨 큰소리를 쳤으나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어쩔 수 없었네. 우리는 죽고 사는 것을 돌아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대낮에 인가를 찾아 헤매다가 다행히 산속 두메산골에 외로이 서있는 집 한 채를 만나 주인을 불렀네. 주인이 나왔어. 
 
“밥 한 그릇 적선 하십시오.”
 
몰골이 말씀이 아닌 우리를 보자, 주인은 의병임을 알아차리고 얼른 부엌으로 들어가서 밥 한 사발을 내왔어. 조밥이었네. 
 
“당신들은 머뭇거리지 말고 어서 가시오. 어제 아랫마을에 일본 병정이 와서 죄 없는 양민을 5사람이나 묶어 가지고 가서 의병들에게 밥을 주었다는 구실 로 쏘아 죽이고 갔소. 때때로 와서 뒤지니까 꾸짖지 마시고 어서 가시오.”
 
주인이 말했어. 우리는 더 말하지 않고 밥을 싸가지고 산으로 올라와 갈라 먹었지. 6일 만에 입에 넣은 밥맛이 별미였지. 우리는 다시 산을 넘고 내를 건넜어. 낮에는 숨고 밤에만 걸었네. 장맛비가 그치지 않아 고초가 심했지. 며칠 뒤 길가에서 또 한 집을 만나 문을 두드리며 주인을 불렀네. 주인이 문을 열고 나왔지. 내가 의병임을 알아차린 그가,
 
“너는 필시 러시아에 입적한 자일 것이니 일본 군대에 묶어 보내겠다.”
 
하더니, 몽둥이로 때리고 같은 패거리를 불러 묶으려 하였네. 나는 도망쳤네. 마침 한 좁은 골목을 지나다가 일본 병정과 딱 마주쳤네. 거기가 일본병이 파수를 보는 곳이었네. 일본병이 나를 향하여 총을 쏘았네. 그러나 날이 어두워 총알은 비껴나갔네. 급히 산 속으로 들어가서 그 다음부터 큰길로 나오지 못했네. 5일 동안 밥을 얻어먹지 못하여 춥고 주림이 전보다 심했네. 
 
다행히 깊은 산 외진 곳에서 집 한 채를 만나 문을 두들겨 주인을 불렀어. 한 늙은이가 나와서 우리를 방안으로 불러들였네. 밥을 달라고 하였더니, 한 사내아이를 시켜서 상을 차려오게 하였네. 염치불구하고 한바탕 배부르게 먹고 나서 생각하니, 12일 동안 단 2끼의 밥을 먹은 것이 고작이었네. 주인 늙은이에게 감사한 뒤에 그동안 겪은 고초를 모두 이야기해 주었네. 
 
“이렇게 나라가 위급한 때를 만나 국민의 의무로 그 같은 곤란을 겪은 것이니, 흥이 다하면 슬픔이 오고, 쓴맛이 끝나면 단맛이 온다는 말이 있지 않소. 걱정하지 마시오. 그런데 일본 병정이 곳곳을 뒤지고 있으니 참으로 길 가기가 어려울 것이요. 그러니 꼭 내가 시키는 대로 하시오.”
 
노인이 두만강으로 가는 길을 일러주었네. 
 
“어르신 고맙습니다.”
“내가 가르쳐준 대로 가면 여기에서 두만강이 멀지 않고 가기에도 쉬울 것이오. 속히 건너가서 뒷날 좋은 기회를 타서 큰일을 도모하도록 하시오.”
 
참으로 훌륭한 노인이었네. 나는 노인이 고마웠네. 세상에 그런 사람만 있다면 나라가 지금과 같은 꼴은 되지 않았을 것일세. 
 
“함자라도 가르쳐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나 같은 산간 노인을 알아서 무엇 하겠소. 깊이 물을 것 없소.”
 
노인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았네. 나는 노인에게 감사하고 작별한 뒤에 그가 가르쳐준 대로 방향을 잡아 나아갔네. 며칠 뒤에 무사히 두만강을 건널 수 있었네. 한 마을 집에 들어 편히 쉬며 옷을 벗을 수 있었네. 옷은 썩었고, 이가 득시글거려 잡을 수조차 없었네. 우리는 드디어 엥치우에 도착했네. 친구들을 보았어도 피골이 상접하여 알아보지 못했네. 이곳에서 묵으며 10여일을 치료한 후에 블라디보스토크로 떠났네. 그곳 동료들이 환영회를 베풀어 주었어. 
 
“패군 장수가 무슨 면목으로 여러분들의 환영을 받을 수 있겠소.”
 
나는 사양하였지.
 
“한번 이기고 지는 것은 군사상 언제나 있는 일이니,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요. 더구나 그렇게 위험한 데에서 무사히 돌아왔으니 환영을 받아 마땅하오.”
 
여러 사람이 진심으로 말했어. 참으로 감사하게 동족애를 받아들일 수 있었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