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관에 경비행기가 있었다.

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지 사흘째 되는 날 나는 생각지 않았던 사람의 방문을 받았다. 안중근 의사였다. 여자 관리인이 안중근 의사가 찾아오셨다고  서재로 와서 전했을 때, 나는 눈이 아파서 쉬고 있었다. 나는 안중근 의사가 혼으로 왔는지, 쿼크로 왔는지, 홀로그램으로 왔는지, 알 수 없어서 궁금하였다. 

“서재로 안내할까요? 아니면 밖으로 나가서 맞으시겠어요?”
 
관리인 여자가 물었다.
 
“들어오시라고 하세요.”
 
안중근 의사가 약간 뻣뻣한 걸음걸이로 집안으로 들어왔다. 동상의 걸음걸이였다. 부천에 있는 안중근공원에서 온 것으로 보였다. 나는 책상 앞에서 일어나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십시오. 안 의사님이 오시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귀신의 방문이란 그런 것일세. 예고가 없지.”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내가 공원에서 보니, 그대가 눈이 아파서 고생을 하더군. 그래서 안약을 가지고 겸사겸사 왔네.”
 
안중근 의사가 안약 병을 하나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내가 성주산에 갔더니, 격암 선생이 생명수가 솟는 우물이라고 해서 그 우물물을 떠온 것일세. 눈에 넣어봐. 눈이 편안해질 테니.”
“고맙습니다.”
 
나는 약병을 열어 약물을 한 방울 눈에 넣었다. 그러자 눈이 시원해졌고 사물이 깨끗하게 보였다. 
 
“성주산에 놀라운 치료수治療水가 있었군요.”
 
나는 감탄하였다.
 
“눈이 상할 정도로 무얼 하고 있었나?”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책상 위에 읽던 책들과 메모지와 볼펜과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내가 도울 일은 없는가? 내가 도울 일이 있으면 돕겠네.”
 
나는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안 의사님이 옥살이를 하신 곳에 가서 현장체험을 했으면 합니다. 제가 안 의사님이 겪으신 사실들을 볼 수 있게요.”
“나와 함께 있으려면 한동안 인간세상을 잊어야 하네.”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겠지요.” 
“그런 청이라면 들어주지 못할 것이 없지.”
“감사합니다.”
“필기도구나 챙겨 가지고 이곳을 떠나세.”
 
나는 노트북과 노트 1권과 볼펜을 챙겨 안중군 의사를 따라 나섰다.
  
“나를 따라다니려면 지금의 몸으론 불가능하네. 자네가 인간의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야.”
“그럼 어떻게 하죠?”
“좋은 수가 있네. 자네의 몸을 축소시키는 거야.”
“어떻게요?”
“초과학을 이용하는 것이지.”
“초과학이요?”
“문자 그대로 과학을 초월한다는 뜻이야. 내가 가져다 준 안약도 따지고 보면 초과학의 산물이지.”
 
나는 초과학이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과학관이 있었지. 지금은 없어졌지만 말이야.”
“있었지요.”
“그리로 가세. 거기에 가면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
 
과학관은 내가 사는 집에서 멀지 않았다. 마당에 화약을 뺀 어뢰가 놓여 있고, 표를 사고 안으로 들어가면 강당처럼 넓은 공간에 나비처럼 생긴 경비행기가 놓여 있었다. 누구든지 조종석에 타는 것을 막지 않는 경비행기였다. 그 외엔 광물표본, 곤충표본, 동물표본이 있었다. 그런데 6.25사변이 이 과학관을 없애버렸다. 그래서 나의 기억 속에나 존재하는 과학관이 되어 버렸다.
 
▲ 대한국인 최초로 안창남 비행사가 탔던 경비행기
 
“자네가 그 비행기를 탈 수만 있다면 우리는 여행이 가능할 거야.”
“현실적으론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불가능하지.”
“그런데 어떻게?”
“내가 보니까 자네가 부리는 동자가 하나 있더군. 그 동자에게 부탁해봐. 가능할 거야.”
“그건 언제 보셨어요?”
 
안중근 의사가 말하는 동자는 나의 집단무의식 안에 있는 아니마를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필요할 때마다 아니마의 도움을 받아왔다. 아니마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굳이 경비행기를 탈 필요가 없었다. 아니마의 도움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시험 삼아 경비행기를 타보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할 거야? 아니마의 신세를 질 것인가?”
“아뇨. 비행기를 타지요.”
“그럼 출발하자고.”
 
우리는 귀신 호텔을 나와서 과학관으로 갔다. 과학관은 제국주의시대에 지은 건물이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모조품이나 박제품처럼 보였다. 하나도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비행기에 타지.”
 
안중근 의사가 비행기 위로 성큼 올라갔다. 조종석에 비행사가 대기하고 있었다. 
 
“어서 오시오. 2분 안중근 선생. 나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행사 안창남이요.”
 
안창남 비행사를 이곳에서 만나다니 경이로운 일이었다. 그도 과학관에 배속되어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우리가 비행기를 타기는 탔지만 과학관의 지붕을 뚫고 날아서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날아야 한다는 일이 예삿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니마에게 의지하여 그렇게 해 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출발합니다. 눈을 감아요.”
 
아니마가 말했다. 나는 눈을 감았다. 이제부터 비행을 하게 될 것이다. 엔진 소리가 나는 것 같더니, 비행기가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아마 이건 나의 상상이었을 것이다. 현실적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