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 신한촌 개척리(출처=수원대 박환 교수 다음 블로그 영영모)

나는 청년회가 들어있는 한 러시사식으로 지은 건물로 들어갔네. 몇 사람의 젊은이들이 한 방에 모여 있었지. 청년들은 이 고장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들이거나 조국이 일본과 을사5조약과 정미7조약을 맺은 후에 망명해 온 사람들이야. 

“한국에서 온 안중근이라 합니다. 청년회에 가입하고 싶습니다.”
 
나는 나의 이름과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을 밝혔지.
 
“청년들이 매일 밤에 모이니, 그때 오면 가입이 가능할 것입니다.”
 
누군가 말했어.  
 
“안중근 씨는 자기소개를 하시오.”
 
청년회 회장이 말했네. 나는 간단하게 나를 소개하였네. 그리고 내가 여기에 온 목적도 밝혔지. 그러나 의병을 조직하고 싶다는 말은 시기상조時機尙早라 생각하여 말하지 않았네. 나는 의병조직에 관하여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레 시국토론으로 들어갔네. 나의 의도가 시국토론에서 들어났지. 나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도 있었네. 회의장은 잡담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무질서하였지. 며칠이 지나갔지.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하여 젊은이들이 임시감찰臨時監察을 뽑았네. 내가 임시감찰에 뽑혔네. 나는 즉각 감찰업무에 들어갔어.
 
“회의 중에 사담을 금합니다.” 
 
나는 회장의 허락을 받지 않고 잡담하는 사람에게 주위를 주었지. 젊은이들은 나의 말에 따랐지. 그래서 질서가 잡혀갔지. 그러나 어느 단체고 잘난 척하고 자존심을 세우는 이가 있게 마련이라 번연히 제멋대로 잡담하는 사람이 있어서 나는 그에게 예외를 두지 않고 주의를 주었지. 
 
“굴러들어온 돌이 주인 노릇을 한다고. 어디에서 온 것이 건방지게.”
 
그자가 내 뺨을 때렸네. 나는 뺨을 때린 자를 단숨에 제압해 버릴 수 있었지만 여러 사람을 위하여 참았네. 다른 이들이 내게 화를 내지 않도록 만류했네. 나는 웃으며 말하였네. 
 
“오늘날 이른바 사회는 여러 사람의 힘을 모으는 곳으로 주장을 삼는 것인데, 이 같이 서로 다투면 어찌 남의 웃음거리가 아니겠는가? 옳고 그름을 물을 것 없고 서로 화목하는 것이 어떤가?”
 
다른 젊은이들이 모두 좋은 일이라고 찬동했네. 그러나 나는 그 일로 귓병을 얻어 몹시 앓다가 달포 뒤에야 차도가 있었네. 나는 이러한 일로 한인 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네. 나는 신한촌에 거처를 옮겨 온 이범윤을 찾아갔지. 나는 그에게 절하며, 
 
“해주에서 온 안중근이라 합니다.”
 
나를 소개하였네.
 
“그대가 안중근이로구먼. 청년회를 통해서 그대에 대한 말을 들었소.”
“연추에서 각하를 찾아뵙고자 했으나 이리로 떠나셨다고 해서 만나 뵙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았소.”
“하시려는 일은 잘 되어 갑니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네.”
 
이범윤은 의기소침意氣銷沈해 보였지.
 
“현재 이등박문이 건방지게 망녕되이 눈앞에서 아무도 없는 듯이 교만하고 극악해져서, 위로 임금을 속이고 백성을 함부로 죽이며, 이웃나라의 의를 끊고 세계의 신의를 저버리니, 그야말로 하늘을 반역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원컨대 각하께서는 속히 큰일을 일으키시어 시기를 놓치지 마십시오.”
“말인즉슨 옳네 만은 재정이나 군기軍器를 전혀 마련할 길이 없으니 어찌할 것인가.”
“각하께서 의거를 일으키기를 결심만 한다면 제가 비록 재주야 없을망정 만분의 하나라도 힘이 되겠습니다.”
 
이범윤이 머뭇거리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였네. 나는 이범윤과 헤어져 달리 방도를 찾을 생각으로 다른 동지를 찾아 나섰네. 안중근이 일을 꾀하고 있다는 말이 여기저기 퍼져나갔어. 엄인섭嚴仁燮과 김기룡金起龍을 그렇게 해서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만나게 되었네. 
 
“가히 지사들이 여기에 있었군요.”
 
내가 그들을 만나자 크게 말했네. 우리는 첫 만남에서 뜻을 함께 하기로 하고 의형제를 맺어 엄인섭이 형이 되고 내가 둘째가 되고 김기룡이 막내가 되었지. 우리는 연해주의 한인촌을 찾아다니며 연설하고 설득했네. 많은 사람이 자원하고 무기도 내고 의금義金도 걷히어서 소수 나마 의병부대를 만들 만 했지. 
 
이범윤은 나를 만난 후로 창의회彰義會를 조직하여 모금과 모병운동에 들어갔네. 나는 이범윤의 막하로 들어갔네. 나의 합류로 의병부대가 활기를 띠기 시작했네. 동포들이 호응하여 4천명의 지원자가 몰렸네. 성금 30만 원이 걷혔네. 이범윤은 5백 명의 젊은이를 의병에 편성하였네. 
 
총대장은 이범윤이었고, 군자금은 엥치우의 갑부 최재형崔在亨이 담당했고,  나는 의병부대의 참모중장參謀中將의 직책을 맡았네. 최재형은 러시아에 귀화한 사람이었네. 나는 이때부터 나의 이름 안중근을 안응칠로 바꾸었지. 응칠은 나의 부친이 나의 배에 7개의 점이 있다고 하여 지어준 자字였네. 응칠은 칠요七曜의 정기를 타고났다는 의미야. 
 
우리는 러시아의 무기상을 통하여 무기를 구입했고, 우리가 구입한 무기는 대부분이 단발 소총이었으나 14연발과 5연발 소총도 섞여 있었지. 의병들은 1인당 1백발에서 150발로 무장했네. 러시아군 예비역 장교들과 유대를 맺자, 그들은 자원하여 의병의 훈련을 맡아 주었네.             
 
나는 일제와 싸우기 위하여 첫발을 내딛었네. 우리는 곧 합숙에 들어갔네. 우리는 엥치우를 후방기지로, 노만국경露滿國境에 있는 합습마구를 전초기지로 하여 국내 침공 작전을 전개하기로 하였네.”
 
- 엥치우를 근거지로 활동하게 되는 이범윤, 최재형, 전재덕, 엄인섭, 안응칠이 이끈 의병을 해방 이후에 학자들이 무장항일의병파라 불렀다. (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