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어수선하고 답답한 때가 있었던가. 한마디로 괘씸한 시대다. 국회의원이란 자가 말을 함부로 내뱉고 지껄이고 신문기자가 그것을 그대로 받아쓰는 시대이다. 과거에도 이런 시대가 있었을까. 아마 있었을 것이다. 옛날 사람들은 상상하건대 청학동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마음을 달랬을 것이다. 지리산의 청학동은 한국의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뜻이나 한국 사람들은 옛날부터 청학동을 통해 쉽게 유토피아와 접할 수 있었다. 다른 나라에는 아무 데도 없다는 유토피아를 우리나라에서는 지리산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얼마나 좋은 나라에 살았던가.

청학동 이외에도 이상향이 많다. 설명하려면 책 한 권으로 부족하다. 참으로 한국은 청학동의 나라 청학이 날아다니는 꿈의 나라다. 그걸 모르고 싸움박질만 하는 정치인들의 행태는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신문보도에 따르면 몇 해 전 한국에서 세계미래학회가 열렸는데 거기에 참가한 외국인학자들이 청학동을 방문하였다고 한다. 미래와 과거의 대화가 역사라 하였으니 그들은 청학동에 가서 과거와 미래를 본 것이다. 그런 귀중한 자리에 지금 갱정유도更定儒道란 신흥종교단체가 열심히 이상향을 재현하려 노력하고 있다. 과연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청학동은 그 옛날 신라의 석학 고운 최치원 선생이 찾아갔다가 끝내 못 찾은 곳이다.  최치원 선생은 신라에 화랑도가 쇠퇴하여 망해가는 것을 알고 청학동을 찾은 것이다. 그 뒤에 청학동을 찾은 학자들도 한결같이 나라가 위태롭다고 생각하고 찾아갔다. 16세기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조여적趙汝籍이 『청학집』을 지어 상고사를 복원하고 오늘의 한국인에게 선도 또는 신교를 선사하였다. 그런 청학동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을 남겨주고 있다. 

첫째 그들은 청학동에 무릉도원(武陵桃源) 이상향이 있다고 가르쳐 주었다. 무릉도원이란 어떤 나라인가. 첫째 나라도 작고 인구도 적다. 노자가 말한 소국과민(小國寡民)의 나라다. 큰 나라를 자랑하는 대국들은 이상향이 될 자격이 없다. 바닷가에 큰 배가 닿아도 가보지 않는다. 가서 타보지 않는다. 그리고 수례 즉 자동차를 갖다 대고 타라 해도 타지 않는다. 배와 차를 타는 순간 인간은 연옥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기가 있어도 절대 갖지 않는다. 칼, 총, 대포, 원자탄 어떤 살상무기도 싫다고 한다. 또 멀리 바다 건너 이웃 나라가 바라보이고 거기서 닭이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리더라도 절대 가보지 않는다. 그러니 임금님이나 대통령은 할 일이 없다. 매일 낮잠을 자는 무위이치(無爲而治)하는 나라가 무릉도원이다. 이 사상은 중국에서 들어 온 외래사상임에 틀림이 없다.  

둘째로 대동세(大同世) 이상향이 있다. 이것도 외래 사상이다. 유교에서 말하는 이상향으로 현세에서도 이룰 수 있는 사회, 요즘의 복지사회다. 대동세에서는 개인의 집은 없고 누구나 다 같이 노인정에서 산다. 식사도 다 같이 하는데 날마다 큰 파티를 연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서는 기계가 음식을 날라다 준다. 받아먹기만 하면 된다. 귀천이 없고 남녀의 구별도 없다. 모두 똑같은 옷을 입는다. 누구나 20년간 정부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고 그에 보답하기 위해 20년간 일하여야 한다. 다만 소수의 엘리트를 뽑아 사회발전을 도모하도록 한다. 이런 대동세는 인간이 더 이상 태어나지도 않고 죽지 않는다. 더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그런 나라에서 사람들이 크게 하나(大同)가 되는 것이다. 

셋째로 미륵정토(淨土)의 이상향이 있다. 이 사상은 불교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여기에 환웅이 신시(神市)를 세워 이상향을 이룬다. 불교와 우리 고유사상이 결합해서 꾸민 유토피아이다. 미륵이라면 반가사유상(半跏思惟像)으로 유명하다. 무엇을 골똘히 생각하며 고민하는 듯한 미륵은 환웅의 후손이다. 그런데 불교신자들은 미륵을 불교 신자로 만들어 믿도록 만들었다. 환웅은 태백산 아래 신단수에서 내려 오셨고 3,000명의 의병을 이끌고 배달국을 건국하였다. 환웅이 세운 나라는 부처의 나라와 다른 환인의 나라 환국(桓國)을 본뜬 것이었다. 이 사실을 후세에 전한 사람이 바로 『삼국유사』를 쓴 일연이었다. 일연이 고기를 인용하면서 우리에게 전한 신시는 우리가 죽어서 돌아가야 할 이상향이다. 우리에게는 돌아갈 수 있는 유토피아가 있는 것이다.   

일연 스님의 증언은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머리에 무엇인가를 이고 날개를 펴고 하늘로 올라가는 선녀(仙女)가 누구냐 아마도 웅녀일 것이다. 아니 아만일지 모른다. 신라의 왕릉벽화에도 천마상(天馬像)이 있다. 천마는 하늘에서 박혁거세를 모시고 온 신라를 건국하게 하고 한 말이다. 하늘이 보낸 말이다. 우리 고고미술학자들은 이렇게 귀중한 그림의 진가를 모르고 있다.  필자는 선녀의 그림과 천마의 그림을 국보 1호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그림은 세계에 자랑할 환국의 문화재다. 역사 문화에 대한 열등감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목포에 가면 신안 앞바다에서 건진 큰 선박의 뼈대를 우리 것이라 하지 않고 중국 것이라 하면서 전시하고 있다. 우리 역사를 남이 훼손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파괴하여 남에게 준 것이 하나 둘인가. 단재 신채호의 말인데 모두 일제식민사관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미륵정토에는 갖가지 아름다운 꽃과 새들이 노래하고 곡물과 과일이 풍부하여 사람들이 굳이 노동할 필요가 없었다. 기후는 온난하여 절대 흉년이 들지 않는다. 옛날에는 흉년이 가장 무서운 재난이었다. 미륵정토에는 또 도둑이 없고 전쟁과 재난 그리고 질병이 없었다. 화내는 사람이 없고 욕심이 없고 서로 공경하고 한 가족처럼 살았다. 요즘의 대한민국과 다르다. 대한민국에는 목소리가 크고 성내는 사람이 잘 살고 입을 다물고 하늘의 명을 공손히 받아들이는 사람은 살 수 없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삼신산(三神山)형의 이상향이 있다. 순수한 우리 이상향이다. 이 이상향을 중국의 사마천이 『사기』에서 남겼다. 그 덕에 중국인들 머릿속에는 동방에 선약이 있고 또 귀중한 문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한국은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 등의 삼신산의 나라다. 지금도 한국을 찾는 중국의 관광객은 어렴풋이 한국을 산삼의 나라 삼신의 나라로 알고 있다. 서복의 전설을 통해 한국을 청학동의 이상향으로도 보고 있는 것이다. 제주도에 서복이 왔다가 돌아갔다는 서귀포가 있다. 

첫째 한국에는 불로초와 불사약이 난다. 한국의 산삼을 사먹으면 사람들이 모두 늙지 않고 오래 산다. 둘째 사람들이 이슬을 먹고도 살 수 있으니 굶주리는 사람이 없다. 셋째 모든 사람이 신선(神仙)이 된다. 그러나 넷째로 수련을 하여야 한다. 수련을 하지 않으면 신선이 될 수 없다. 중국의 쿵푸만 가지고는 도를 닦아 신선이 될 수 없다. 반드시 한국에 가서 선도를 배워야 한다. 헌원(황제)이 동방의 태백산 아래 풍산에 와서 자부선생에게 선도를 배워 치우를 물리쳤다는 전설을 중국인들은 잘 알고 있다. 

우리나라 고유의 청학동 사상이 있고 중국이나 인도에서 들어온 외래 사상도 있다. 그리고 내외가 서로 뒤섞인 혼합형 이야기도 있다. 얼마나 답답했길래 청학동 이야기가 이렇게도 많아졌는가. 청학동은 지리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백두산에서 한라산에 이르기까지 금강산, 묘향산, 태백산, 덕유사에 많이 전해지고 있다. 우리 역사가 답답하니 청학동 이야기나 듣고 살아보자는 것인가.

우리나라 말의 다스린다는 것은 모두 다 잘 살게 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잘 살게 한다는 말은 쉽지만 실제로는 매우 어려운 것이다. 딸을 시집보내면서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면서 “가서 잘 살아라” 하는 바로 그 말이 이상향을 이루어 잘 살아란 말이다. 그 속에는 생로병사 일생의 온갖 일들이 다 들어있다. 시집가서는 잘 먹고 마셔야 하고 아기를 낳아 잘 키워야 하고 시부모를 잘 모셔야 하고 심지어 죽을 때도 잘 죽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지금도 청학이 날아오는 유토피아의 나라다. 기차를 타고 서울을 떠나 보면 푸른 벼가 자라는 논이 보이고 어김없이 하얀 학이 날아간다. 그 하얀 학이 바로 청학이다. 이 광경을 우리는 늘 보면서도 고마운 줄 모르고 산다. 굳이 지리산에 가지 않아도 논에서 청학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거기다 검은 갓에 하얀 한복을 차려입은 노인이 씩씩하게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우리의 조국 환국이 아닌가 하고 착각한다. 겉으로는 우리가 콘크리트 숲속에 살고 있으나 마음속으로는 푸른 학이 나는 청학동에 살고 있는 것이다. 아니 그런 여유를 되찾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멋이 없다면 그 사람은 한국인이 아니다. 

지금도 필자에게는 한국인에게 어딘지 모르지만 유유히 청학동으로 걸어가는 뒷모습이 보인다. 아니 이따금은 그런 사람을 만난다. 모두가 무엇인가에 쫓기어 정신없이 달려가는 사람들 속에서 하얀 선비가 보이는 것이다. 바로 그 사람이 옳은 한국인이다. 아니 최치원의 후손 환국인(桓國人)이다.  

 

▲ 박성수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박성수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역사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였다. 성균관대학교 문과대 부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실장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장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 「독립운동사 연구」, 「역사학개론」,「일본 역사 교과서와 한국사 왜곡」, 「단군문화기행」, 「한국독립운동사론」, 「독립운동의 아버지 나철」 ,「한국인의 역사정신」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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